'반야심경'과 '에티카'

by 김준식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반야경般若經, Prajnaparamita)는 1세기경 성립된 불교 대승 경전으로 당나라 현장玄裝법사께서 660년부터 663년에 걸쳐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이 반야경의 요점(흐르다야), 즉 심장이 되는 내용만을 설명한 짧은 경전으로, 역시 현장玄裝이 번역하였는데 260자로 되어 있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


수상행식이란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순서다. 즉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에 우리의 정신이 반응하는 순서를 나타낸 것으로서 '수受'는 대상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다. 상想은 그 느낌으로부터 일어나는 '생각'이다.


‘생각’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는 참으로 많다. 대부분 '념念', '사思', '유惟', '상想'에서 파생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념念’은 이제 ‘금今’과 마음 ‘심心’이 합쳐져 있으니 지금 일어나는 마음, 이를테면 휘발성이 강한 생각을 표현한 말이다. 잡념雜念, 유념留念(여기서 留는 머무르라는 것이니 '념'의 휘발성이 충분히 이해된다.) 상념常念 등이 있다.


‘思’는 정수리(머리)를 뜻하는 ‘신囟’과 ‘심心’이 합쳐져 머리의 판단, 이를테면 머리에서 비롯되는 논리가 부가된 생각이 된다. ‘념’보다는 조금 오래 유지되는 생각이다.


‘惟’는 마음 심과 높을 ‘최崔’가 합쳐지니 높은 수준의 생각이다. ‘사유思惟’라는 말이 이 상황을 대변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반가사유상'에서 그 주인공의 마음자리가 바로 ‘사유’다. 깊은 ‘사유’의 경지는 곧 ‘선禪’으로 이어진다.


‘상想’은 상대를 뜻하는 ‘상相’이 있는 생각이다. 즉 생각을 서로 나누고 교환해서 두터워지고 정제된 생각이다. 당연히 위에 있는 ‘념念’과 ‘사思’보다는 상대적으로 길고 다양한 생각을 말한다. ‘사상思想’은 그렇게 해서 나온 단어다.


'행行'은 이러한 생각(想)을 통해 일어나는 의지로써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그 의지로부터 유래되는 판단과 그 판단이 우리에게 머물러서 인연이 되는 단계를 '식識'이라 부른다.


즉 '수상행식'은 외부의 사태로부터 그것을 받아들여 우리에게 내면화되는 과정을 순서대로 표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에티카』제3 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리 1의 내용과 비교해 본다.


PROP. I. Our mind is in certain cases active, and in certain cases passive. In so far as it has adequate ideas it is necessarily active, and in so far as it has inadequate ideas, it is necessarily passive.


정리 1. 우리의 정신은 어떤 점에서는 작용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작용을 받는다. 즉 정신이 타당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하고, 타당하지 못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을 받는다.


스피노자는 수상행식의 과정을 조금 반대하는 뉘앙스다. 이를테면 '작용' 하는 것을 타당하다고 보는데 '작용' 한다라는 것은 우리 정신의 본질을 완벽한 신의 본질로 파악하여 정신의 작용을 신의 작용으로 파악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타당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즉 우리 내부의 필연적 타당성은 신의 본성에 의해 ‘작용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 모든 것을 ‘역부여시亦復如是’라고 판단한다. 즉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오온개공五蘊皆空'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외부의 사태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내부의 사태는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 '공空'의 상태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이렇게 방향을 틀어버린다.


정신은 타당하지 못한 관념을 많이 지니면 지닐수록 더욱더 많이 작용을 받으며, 반대로 타당한 관념을 많이 지니면 지닐수록 더욱더 많이 작용한다. 『에티카』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역, 서광사, 2018. 155쪽


참고로 라틴어 버전은 이러하다.


COROLLARIUM : Hinc sequitur mentem eo pluribus passionibus esse obnoxiam quo plures ideas inadæquatas habet et contra eo plura agere quo plures habet adæquatas.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것이 훨씬 모호하다.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신의 본질인 우리의 정신이 잘못되면 잘 못 될수록(타당하지 못한 관념을 많이 지녀서) 신의 본성으로 회복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져 본래 우리의 마음, 즉 신의 본질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스피노자가 살았던 세계에서 정신이 잘못된다는 것은 신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겨우 페스트의 공포에서 벗어난 유럽 사람들에게 신의 본성을 잃는 것은 다시 거대한 환란으로 가는 것과 같았다. 다만 스피노자의 '신'은 당시 유럽 사람들의 신과는 조금 다른 '신'이라는 것을 에티카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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