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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Jul 14. 2020

겹겹의 일상

귀촌일지_사진편

대부분 라이카 미니, 코닥 필름. 몇몇 선명한 사진은 아이폰. 



겨울을 지나, 거짓말처럼 미지근한 날씨

지난 사진들을 가끔 들여다본다. 먼 미래에 이 사진들을 보며 슬프고 또 기뻐하겠지. 녹아버린 봄, 더위는 올 듯 안 오고 어느새 7월. 이번엔 카메라를 자주 들지 않았는데도 세 롤이 고였다. 


벌써 3년째, 부지런히 디지털카메라부터 필름 카메라, 틈틈이 찍는 영상까지 이곳의 이것저것을 담다 보니 교집합이 생긴다. 사진들에 기억이 묻어 페스츄리처럼 켜켜이 쌓여였다. 데워졌던 봄부터 더워지기 전의 여름이 담겼다. 


마당의 꽃이 다 지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어둬야지. 비가 길게 올 수록 잠을 챙겨자고 끼니를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건강하게, 식물만큼만 살자. 





양귀비 꽃. 왼쪽은 필름이고, 아직 덜 피었을 때. 오른쪽은 만개했을 적, 핸드폰 사진. 빨간 창틀, 문과 쎄뚜 쎄뚜. 




다 질 무렵, 꽂아두었다가 그림으로 남긴다. 파스텔과 색연필을 사용했다. 키워보면 알겠지만 꽃은 노력에 비해 정말 빨리 진다. 캔디에 앤소니 엄마의 대사 중 하나,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란다.' 정말이에요. 





재작년의 한 송이와 올해의 여러 송이

재작년 한 송이 피었던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처음 왔을 때는 나와 키가 같았는데, 이제는 만세를 해도 끝이 안 닿는다. 아직도 가느댕댕한 가지를 휘청거리지만 고양이들의 손톱자국에도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지붕 위를 덮기! 이랴이랴. 




마른 가지에 조명을 매다는 게 미안하지만, 벚꽃의 묘미는 밤이지. 고기 구워 먹을 때 보기만 해도 배부른 풍경이 되어준다. 물론 고기도 먹어야 배부름. 




집의 앞쪽과 뒤쪽에 방부목으로 데크를 덧댔다. 창문 마감도 나무로 했는데, 해가 지나니 색이 바랬다. 꽉 닫아두었던 스테인 뚜껑을 끌로 꺼내 붓으로 다시 칠했다. 다음날 손이 욱신거려 수저질도 힘들었다. 주먹을 꼭 쥐고 자서 손이 아픈 줄 알았는데, 원인은 스테인칠.



 

최근의 마당. 페트병과 옷걸이로 만든 바람개비는 두더지를 쫓기 위해 고구마밭에 달았다. 길에 새로 깐 야자매트. 아빠 왈, 나는 우리 집의 잔디야... 요샌 야자 매트로 레벨 업했다. 좀 더 고급진 느낌만 가져가기. 길 양쪽엔  백리향이 과하게 피었다. 봄에 일 센티만 남기고 베어냈는데 미친 듯이 컸다. 저 길을 지나가려면 담력체험 수준. 벌이 시끄러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페튜니아와 심지 않았는데 자란 배롱나무가 어느새 허리 넘어까지 컸다. 사진 속은 아직 만개 전. 농작물 사이사이 노는 땅에도 페튜니아. 


작년 이맘때의 사진. 이때도 페튜니아와 토마토, 가지를 함께 심었다.








양귀비, 봉숭아와 고양이들. 더워지니 여기저기 픽픽 눕는다. 

현실 ver. 갱스터들

밥 때가 되면 떼로 모여 지나갈 때마다 쳐다본다. 그래도 모른척 하면 각기 다른 목소리로 울며 어필한다. 어쩔 땐 마냥 귀엽지 않다.  




해맑고 철없는 버터. 새벽마다 깨워 엄마가 고통받고 있다.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장난모드.  저 꼬리에서 힘찬 장난의 의지가 느껴진다. 







작년 5월의 청소년 자작나무, 눈보다 비가 많이온 겨울을 지나

그리고 다시 올해. 

몰랐는데, 찍힌 사진을 보면 수양 자작나무가 아주아주 많다. 이런 마음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겨울이 끝날 쯤, 손톱만 한 데다가 만지면 탈 것처럼 부드러운 잎을 밀어낸다. 점점 빽빽해지고 짙어지면 비로소 태양의 계절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가지에 매달린 잎사귀끼리 부딪히며 소리가 나는데, 바삭거리는 밀도에 따라 지나온 시간을 가늠한다. 겹겹의 일상이 내는 속삭임이 이 나무에 있다. 





올해는 무려 작약을 '꺾었다'. 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한 송이 핀 것에 감격해서 조금이라도 세찬 비에 넘어지면 벌벌 떨었었는데, 마당러 4년 차. 가위로 툭툭 잘라 꽂아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 겨울 싹이 나서 5월쯤 고개가 떨어질 때까지 많은 위로를 준다. 지켜보는 뿌듯함이 있어 초보자들도 키우기 좋은 꽃. 꽃은 얼굴이 클수록 빨리 진다. 작약도 그렇다. 



재작년 피었던 작약. 지금 보니 얼굴이 작다. 






약으로 먹는 칡순과 처음 먹어본 죽순. 처음 산에서 자라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꽥 소리를 질렀다.니가 왜 여기서나와. 초 흥분 상태로 삽을 가지고 와서 채취. 맛은 아무 맛도 없지만, 식감이 오묘하다. 젤리와 고기 사이 어딘가...



하우스에서 버린다 해서 아빠가 따온 끝물 딸기. 만든 딸기잼은 아직도 아침마다 빵에 발라먹는다. 




현실 ver.


 죽순의 엽기적인 생김새와 황당할 정도로 많은 딸기의 양이 가늠이 가시나요. 슈퍼에서 딸기 사온 날, 마당의 딸기 두 바가지를 봤을 때의 마음을 서술하시오. 정답, 기쁨 반 한숨 반, 잼에 대한 기대 한 꼬집. 봄에는 마를 날이 없는 빨간 바구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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