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8월까지의 일기
2021 절반 지나다 _1월부터 5월까지의 일기 https://brunch.co.kr/@chocowasun/97
여름 생각
2021.6.4.금 /32
며칠 간 비가 오더니 환상적인 초여름 날씨다.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깊은 잠을 자고, 잘 챙겨 먹고, 운동하고, 출근했다.
좋아하는 노래, 바람이 노크하는 풍경 소리, 선물 받은 초콜렛, 디카페인 커피, 창밖에서 팔랑대는 덜 핀 접시꽃.
음, 행복한 유월이다.
2021.6.7.일 /33
그림 그리러 오는 친구들의 말.
1. 네 잎 클로버와 다섯 잎 클로버를 잔뜩 선물한 후에
“다섯 잎 클로버는 불행을 뜻한대요. 제가 대신 가져갈게요!”
2.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수양자작 나무를 보고
“아이고 넘어지네.”
3. 아주 더웠던 날, 얼굴이 빨갛게 익어 들어오자마자
“더워서 고구마가 된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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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가 평생 소원했던 것은 작업실을 갖는 것이었지, 작업 자체가 아니었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니 더 이상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작업실과 함께 더 나은 화가가 되기는커녕 그림을 그리지 않는 화가가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작업실이 자기 예술의 종착점이자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제껏 자신이 만든 최선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아야 했다. _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이렇게 뼈를 때릴 수가 있나... 반성하며 일요일을 닫는다.
2021.6.17.목 /34
오늘 본 것
잎사귀에서 떨어져 사라처럼 수영하는 물고기
엄청 빠르게 걷는 꿩
남아있는 오디
그걸 먹는 참새
2021.6.22.화 /35
날씨 좋은 화요일. 본격 여름인 것이 실감나는 이유 중 하나가 오늘 진행 중이다.
집 뒤 쪽의 감자밭이 드디어 감자를 캔다. 언덕이라 반대 쪽으로 한참 걸어가야 나머지가 보일 정도로 넓고 큰 밭이다. 가물 땐 몇날 며칠을 물을 주는데, 올해는 비가 넉넉히 왔는지 따로 물 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용했다.
색색깔의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비장하게 버스에서 내려 작업을 시작하면, 사람 오심명 쯤 담을 만한 자루에 감자가 쌓인다. 그럼 손이 긴 기계가 와서 인형뽑기를 하듯 자루를 집어간다. 하루 나절에 밭이 휑해지고, 헤집어진 채로 한 며칠 뒀다가 트랙터가 몇 번 왔다 가면, 무를 심는다.
이 사이클에 맞춰 시간이 흐른 걸 체감한다.
바짝 깎인 수양 자작 나무가 시원하다. 조금 남겨뒀던 그림을 마무리 한 날이니, 남은 일과를 차분히 보낼 일만 남았다.
2021.6.24.목 /36
오전에 운동을 다녀오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빨래 널고, 책을 읽다가 출근! 평화로운 하루. 해야하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평화의 비결! 오늘부터는 찾아서 책을 좀 읽어야 겠다. 소소한 다짐으로 굴러가는 하루.
버스를 타고 문득 든 생각이다. 그릇 이상으로 큰 욕심을 내면 그것이 마음을 갉아먹는 지름 길. 닳고 뻔해서 와닿지 않았던 말도 이렇게 이해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본 나무의 모양까지 기억될 정도로 선명하다. 그런 이런 순간이 있었다.
2021.6.29.화 /37
여행을 잘 다녀오고, 어제 하루는 정말 푹- 쉬었다. 병든 닭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최선을 다해 가만히 있었다. 다시 기운을 내서 해피 화요일! 크게 들으려고 찜해 둔 노래를 스피커로 틀고 청소를 하는 시간. 일과가 시작된다.
올 여름은 정말 더울 것 같다. 할 수 있는 걸 찾아 조금씩, 계속 해나가길. 하던 걸 잘 하자!
2021.7.1.목 /38
폭염과 함께 온 7월! 녹는 빙하와 속절없는 시간에 대한 처절한 책을 읽고 잠들었음에도, 에어컨을 키는 손이 잽싸다. 익어서 젤리가 되고 말 것 같다.
요 며칠 '울프의 일기'에 빠져있다. 울프의 정원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읽어 사왔는데, 두께에 기가 눌려 솔직히 다 못 읽을 줄 알았다.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 조금씩, 과자를 먹듯 읽고 있다. 50살이 된 자신을 위해 남기는 일기. 역시 남의 일기 읽기는 재밌어... 거대한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남아 있을 단 한 명의 독자, 50살의 나를 위해 일기를 남긴다. 부디 건강하길!
2021.7.6.화 /39
오전에 자화상에 대해 공부했더니 빗자루를 쓸며 그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스스로를 기록하는 의미. 피카소의 도자기, 사후에 발견되는 작품들, 마이어의 필름들... 나의 즐거움은 뭐지.
슴슴한 해초국수와 단호박을 점심으로 먹고 출근했다. 제습모드로 에어컨을 돌린다.
2021.7.20.화 /41
일기장을 잃어버린 줄 알고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괜찮아 다시 쓰면 되지... + 미리 옮겨둘 껄 ... + 집착하지 말자... 순간적으로 수십개의 줄다리기!
적어두려고 생각해두었던 글들로 그 마음을 다스린다.
예술가는 비극의 시대에도 세상을 등지지 않고 다음을 위한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지금,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잃지 않고 지속해서 항해할 수 있도록 치유와 위로의 경험을 선사하기를 바란다.
세계는 끊임없이 부유하고 흔들리지만 우리는 살아있다. 이 전시를 통해 기형도의 시 구절처럼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를 노래하고자 한다.
그리고 박혜수, 올라퍼 엘리아슨, 휘도 판 베어 베르베, 이우환.
2021.7.21.수 /42
이글이글. 집으로 오는 길이 튀김기 안 같았다. 그늘에선 죽을 거 같진 않은 데, 햇살이 작살과 다름없다.
들어오는 시원한 숨, 나가는 따뜻한 숨을 의식적으로 느끼기.
2021.7.27.화 /43
어깨서기에 이어 쟁기자세(할라아사나) 엑소시스트 자세(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처음으로 성공! 내 생에 그런 자세의 시야는 처음이였다…
기쁜 마음으로 이 성취감을 원동력으로 다음 수련을 이어나가야지 생각하던 중, 마무리에서 선생님이 오늘 수련에서 느꼈던 감정을 되짚어보며 비우라고 하셨다. 아쉬웠지만 흘려보내놓고, 가벼운 마음상태로 집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되어서 허리를 펴고 다닐 수 있도록! 지금의 나야 화이팅
2021.7.29.목 /44
일주일 중 가장 한가로운 목요일. 늦은 일과가 이렇게 여유를 준다. 아침엔 부지런히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 책을 보고 운동을 다녀왔다.
주어진 일을 차분하게, 끝까지 해내길! 끝의 끝까지 집중! 올림픽의 선수들처럼!
2021.8.5.목 /45
확실히 덜 덥다. 어제는 엄두를 내서 오전에 거의 한 달 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짧지만 개운한 순간. 어제는 정말 모든 기운 소진 후에 뻗었는데 -여기까지 쓰다가 화요일이 되어버림
2021.8.10.화 /46
좋은 책의 여운으로 힘을 내보는 화요일! 책과 운동으로 마음이 가득 충전 된 상태이다.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정말 하루(일요일이었다)만에 싹 바뀐 바람의 온도에 위안을 받는다.
새로운 노래 잔뜩, 동화책 잔뜩, 그리고 큰 컵에 커피 가득! 쟁여두고 하루 화이팅.
2021.8.13.금 /47
요새 종이접기에 빠져서 한 2주 시도 때도 없이 학, 날개 달린 하트, 나비를 접었다. 유튜브 보고도 접고, 그림 그리러 오는 고수 친구들에게도 배웠다.
새로운 레시피 없나 기웃대던 중 한 친구가 팽이 접기를 알려줬다. 각 맞춰서 접느냐고 늦었더니 기다려줬다. "예쁘게 접어야 잘 나오는 거 아니에요?"
"안 예쁘게 접어도 다 접으면 예뻐요!"
용기와 위안이 되는 말!
아직 질리지 않아 더 접어보련다. 어려운 건 못 접는 초보지만... 즐거운 취미생활
2021.8.17.화 /48
책 선물을 받은 분들께 다시 책 선물을 했다. 주고 받는 따뜻한 마음! 잘 때도 문을 열고, 낮에도 에어컨 없이 문을 열어두는 귀한 계절이 왔다. 앞 뒤로 통해 부는 바람처럼, 마음도 여유롭게! 넓게!
2021.8.25.수 /49
긴 비가 계속되고 있다. 장화가 무거워 발등이 아픈 기분이다. 비가 오는 대신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문을 다 열어두었다. 빗소리와 함께 젤리 과슈를 써 보는 오후!
운동하고 밥 먹고나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마음 깊이 행복해진다. 이렇게! 여름도 가는 구나
2021.8.30.월 / memo
할라아사나라 불리는 쟁기자세가 있다. 이 자세에 대한 두 달 간의 이야기이다.
수업 중 처음 이 자세가 등장했을 때는 시도 조차 하지 못했다. 다들 다리를 휙휙 머리 위로 넘기는 걸 보며 경이로웠다. 필라테스는 무조건 코어을 잠그는 자세가 기본이다. 게다가 측만 포커브가 있는 나는 레슨 내내 과신전 동작은 한 톨도 없었다. 3년 반, 필라테스를 배운 후 요가를 배우는 요즘, 모든 사람들이 다리를 머리 위로 드는 것도 놀라웠는데, 게다가 딱 반으로! 접는다.
두번 째, 선생님의 핸즈온으로도 실패했다. 겁이 많아 그랬다.
세번 째, 도전 끝에 다왔어요! 라며 발 끝을 바닥에 콕 찍어주셔서 간신히 성공했다.
가장 소름 돋았던 건, 발가락 끝이 마루 끝에 딱 닿던 그 느낌이다.
몇 번의 시도 후 어느 날, 목 뒤에 튀어나온 목 뼈가 멍든 줄 알았다. 멍은 들지 않고 누를 때마다 욱신거렸는데 다행히 이틀 뒤 쯤 괜찮아졌다. 긴장해서 무서운 마음에, 바로 일어날 수 있게 목을 뒤로 재끼려고 해서 튀어나온 뼈가 눌렸을 것 같다. 찾아보니 등이 굽거나 거북목인 것도 영향이 있다 한다. 자세를 잡기 시작할 때 목을 한 번 더 안으로 말아 턱을 쇄골에 붙이는 느낌을 주면 전혀 아프지 않다.
그 이후로 어떨 때는 자연스럽게 성공하고, 어떨 때는 처음 도전처럼 실패했다.
그러다 또 비틀거리며 팔을 뻗어보는 자세까지 성공한 오늘.
다리의 길이가 가늠이 되면서, 배꼽 밑을 그렇게 자세히 응시하는 기분이 아직도 신기하다.
지금은 발가락 끝에 힘을 주며 다리 뒤를 쭉 뻗어주는 것 까지 가능해졌다.
한 동작의 완성에 끝이 없어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여기나보다. 할라아사나 뿐 아니라, 다른 동작들도 호흡과 함께 유창해지길 바라며 하루 하루 수련을 쌓아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