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9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엄마도 모르시고, 엄마는 평생 못 만나실 며느리도 모른다. 이런 걸 꼭 알 필요는 없지만, 이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알아버렸다. 초고를 쓰는 2022년 9월 4일 기준 그날은 4개월 후의 ‘아무 날’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버린 이상 이제 ‘무슨 날’이 되었다. 그날, 누군가의 죽기 전 떡볶이처럼 뼈다귀해장국을 먹을 것이다. 뼈다귀해장국을 먹은 지 1년 되는 날이다.
뼈다귀해장국은 불친절하다. 내 돈 내고 사먹는데, 내 손으로 일일이 살을 발라야 하는 수고가 떠넘긴다. 삼계탕은 보양식이니 한 수 접어주지만, 국밥이 뭐라고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건방지다. 국밥계 큰 어르신 설렁탕께서도 손님의 품을 덜어주는 겸양을 안다. 나는 새우는 머리 떼는 게 성가셔 대가리째 먹고, 된장찌개에 들어간 게도 살 발라 먹기 귀찮아서 안 먹고, 생선도 가시 바르는 게 번거로워 거의 안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뼈다귀해장국은 나트륨 핵폭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물까지 다 먹으면 1일 영양소 기준치 나트륨 154%를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밥을 남기면 안 되는 동방예의지국의 식탁에서 국물까지 비우는 것이 국‘밥’의 도리다. 여기에 김치까지 더해지니 도리는 하늘에 닿는다. 아저씨 음식 같지만, 정작 나이 마흔 넘은 아저씨들은 다들 혈관 건강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지기 시작할 때라서 멀리해야 한다. 뼈다귀해장국을 향한 의사(意思)는 의사(醫師)를 부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맛 to the 있 to the 다.
뼈다귀해장국은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처럼, 거꾸로 해도 뼈다귀해장국이다. 이만큼 맛있으면 그렇게 우겨도 우영우 엄마가 와도 변호 못한다. 안 되면 뼈다귀로 뚝배기(머리통입니다)를 깨버려도 무죄다. 뚝배기를 삐져나온 통뼈는 오래 고아져 물러졌지만, 한 손에 움켜쥐고 가격하면 사람 머리통에 흠집 낼 정도로 튼실하다. 국물 한 바다에 태산처럼 솟은 뼈다귀의 우람한 자태가 탐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 가격이 저렴하다. 그 뼈다귀에 그 살코기가 붙어 있으므로 순대국밥보다 1,000원 더 비싼 것이 납득된다.
뼈다귀 해장국이라 띄어쓰기보다는 뼈다귀해장국으로 붙여 쓰고 싶다. 해장국의 한 부류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나는 대학생 때 처음 먹었고, 친구들과 먹을 때 뼈다귀해장국을 우선 선택했다. 혹은 남자들과만 밥을 먹은 모양이었다. 식사 선택권은 대체로 여자가 가져가므로 남녀 섞인 무리가 뼈다귀해장국을 먹을 일은 드물었다. 나는 감자탕으로 먼저 접했다. 내가 이해한 뼈다귀해장국은 감자탕에서 채소 감자가 빠진 1인용 감자탕이다. 약간의 매운맛과 칼칼함이 구수함으로 일통되었고, 구수함은 살에서 우러난 점성을 품어 묵직해졌다. 모교 옆에는 20여 년 전에 회원카드를 만든 가게가 아직도 영업 중이다. 카드에 포인트가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요즘 대학생 취향은 아닌가 보았다. 하긴, 나 때에 비하면 파스타, 라멘, 쌀국수, 마라탕 등 메뉴가 다양해지기도 했다. 현재 대학가에 살고 있는데, 뼈다귀해장국 가게 두 개 중 하나가 폐점했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가)는 아침부터 어제를 끝내지 못한 손님들로 제법 북적댔다. 돈은 저렇게 긁어모으는구나 하며 나도 소소하게 갖다 바쳤다. 어느 날 (가)가 문을 닫더니, 그 자리에 간판을 갈아 끼운 (나)가 등장했다. (가)는 본래 자리에서 220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정황상 건물주 갑질이겠거니 하며 퇴근길에 30여 미터를 더 걸어도 (가)만 이용했다. 두 가게는 몇 년 공존했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나)가 먼저 문을 닫았다. (나)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날, 축하의 의미로 한 그릇 했다.
다이어트 전에는 퇴근길에 한 그릇씩 하곤 했다. 든든하기로는 첫 손에 꼽히는 1인 외식 메뉴이기도 하거니와 나트륨만 빼면 영양학적으로 나무랄 데 없었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영양소로 손꼽히는 칼슘, 비타민C, 철, 베타카로틴, 셀레늄, 그러니까 영양제 광고에서 본 이름들이 한 뚝배기에 압도적으로 담겨 있다. 함께 들어가는 풀떼기가 우거지인지 시래기인지 몰라도, 뭐가 됐든 식이섬유도 풍부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식전에 물 두 컵을 마시고, 김치 대신 칼륨이 풍부한 양파와 고추를 먹어 나트륨에 대한 나름의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음식은 아니다. 애초에 특별한 사람과 먹기도 힘들다. 시작하는 연인들이 뼈다귀해장국으로 저녁을 함께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데이트 초창기라면, 나조차도 차라리 공짜로 줘도 안 먹을 크림파스타를 먹고 만다. 뼈다귀해장국은 젓가락만으로 살을 바를 수 없어 반드시 손을 써야 하거니와 뼈에 달라붙은 척수를 쪽쪽 빨아 먹는 모습을 보이기 남사스럽다. 혼자 먹거나 절친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익숙한 사람과 함께 하기 적절하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먹겠지만, 나는 한 가지 방식만 고수했다. 빈 그릇에 뼈를 덜어 살부터 발랐다. 왼손 엄지와 검지로 고깃덩이를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놀렸다. 이 작업에 우영우처럼 편집증적으로 굴지는 않는다. 뼈다귀해장국을 먹는 세금에 성실했다가는 제풀에 지친다. 살코기는 젓가락으로 적당히 바르면 그만이다. 한두 조각은 냉이고추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에 다 넣었다. 냉이고추 소스를 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찍어 먹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통 국밥충이다. 모든 건더기는 숟가락질로 입에 퍼 넣는 것이 ‘국밥’의 본질을 수행하는 일이거니와 뼈를 바르는 시간 동안 펄펄 끓는 뚝배기가 식으므로 숟가락질의 속도를 높일 수 있으니 1석2조다.
올 봄 콩나물 국밥, 올 여름 물회가 주 외식 메뉴로서 구체적인 식욕을 유발했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뼈다귀해장국이 왔다. 날씨 때문이라기보다는 시리얼 때문이다. 우유에 만 시리얼의 달달한 맛이 ‘단짠단짠’의 짝으로서 나트륨의 짜릿한 기억을 소환한 모양이었다. 단, 다이어트 기간이라 식욕을 지연할 뿐이다. 올해 안에 표준 체중을 달성할 것 같지만 그냥 기념일을 만들고 싶었다. 2023년 1월 9일 오후 6시 30분, 젓가락으로 깨작대는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전자 한 귀퉁이에 남았을 원시의 본능대로, 한 손에 뼈를 들고 야만스럽게 플렉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