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선을 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는 왜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답변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면, 이 시리즈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당연히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인류학자 강주원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하며 남북관계를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그는 연구의 주된 방법이던 중국 현지조사를 가지 못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으로 인해 비로소 임진강 등 한국에 처져 있는 철조망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밖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말이죠.
* 강주원,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 눌민, 2022
한국인인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 글자를 깨우칠 무렵부터 북한의 존재를 인지하며 자랍니다. 학교에 가서는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북한과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야 함을 배우고,‘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언론을 통해 잊을만 하면 가끔씩 북한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북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분명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외로 잘 모르는 경우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외려 그동안 전혀 접한 적이 없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더욱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합니다.
북한은 한국 사회의 지난 100년을 바라보는 거울입니다. 그동안 하나 하나 짚어왔던 것처럼 북한은 좋든 싫든 지금의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데 적잖은 영향으로 작용했습니다. 부동산과 건강보험을 예로 들었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형태의 남남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잠재적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래 한국인들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될 요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껏 한국 사회가 쌓아온 문제점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문제점을 해소하며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북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내 삶과 북한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여러 방편들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지정학적 변화와 기술의 진보 사이에서 새판짜기
미래 시점에서 2020년대를 돌이켜본다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빠지지 않고 들어갈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도 많은 전문가들은 ‘설마 러시아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양국간의 대규모 전면전이 발생하고 수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참화가 일어났습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주석직을 세 번째로 연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미중간의 갈등은 구소련 몰락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탈냉전 시기의 종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한편, 경제계는 블록체인과 Web 3.0이라는 새로운 기술 환경을 만나고 있습니다. 90년대 인터넷과 함께 시작된 포털 중심의 Web 1.0, 2000년대 모바일로의 전환과 함께 등장한 SNS 기반의 Web 2.0에 이어 Web 3.0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우리의 온라인 환경을 새롭게 개편할 것이라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빠르게 바뀌어갑니다. 빅테크들과 스타트업들은 신기술을 지렛대삼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오늘도 분투중입니다. 누가 새로운 판을 주도하느냐를 두고 정치, 경제, 기술 영역에서 치열한 경쟁이 진행중입니다.
언뜻 보면 북한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70년간 겪은 경험을 되짚어 보면, 우리가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1922-1991)보다 더 오랜 기간 존속하고 있는 북한(1948-현재)이 만들어낸 모순적인 상황을 만든 건 결국 북한을 이끌고 있는 계층과 사회이며,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사회가 특정한 상황 놓였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 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교본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북한의 경험을 통해 무결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속성을 봅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하향식으로 전달하며 계획을 완수하고자 했을 때 일어나는 참사를 만나기도 합니다. 신용에 근거한 사회가 무한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때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는 것 역시 북한의 과거사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단순히 인적 자원과 기술 역량을 가진 것만으로 최선의 결과를 낼 수는 없다는 사실 역시 북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3. 다음 100년, 선을 넘는 상상력의 필요성
한국 사람들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이 짧게는 1987년으로부터 30년, 길게는 1919년으로부터의 100년간 짜여져 온 판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30년,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다’는 익숙한 착각에서 벗어나 갓난아이처럼 모든 것들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때론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더 말랑말랑한 머리로 날카롭게 질문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자 밖 사고 (Outside the box thinking) 말이지요.
북한 공부는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기 위한 좋은 사고실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왜 우리는 꼭 해외에 갈 때 비행기를 타야 하나? 고속철도로는 갈 수 없는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고, 한편으로는 왜 꼭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어냐 하나?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 아닌 평화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가? 이런 생각에서부터 출발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크게 의심을 품어오지 않았던 사실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의 틀을 좁게 만들어두었던 무의식적 굴레들을 걷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북한 공부는 미래를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체제 홍보에 활용하기 시작한지 꽤 되었습니다. 심지어 북한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필요한 데 이전과 다른 형태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얼마나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판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느냐에 따라 한국과 한국 사람들의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4. 맺으며
북한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이야기를 다뤘지만, 여전히 다루지 못한 영역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북한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런 주제들 중 하나입니다.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분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글을 쓰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전공영역을 넘어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 시리즈였다는 점에서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더 많이 배운 부분이 컸습니다. 행여 잘못된 표현이나 서술이 있다면, 감사히 지적받고 수정해나가고자 합니다.
이번 시리즈가 북한문제에 대해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나마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