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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May 15. 2018

닮은 듯 다른 우리

유럽 자동차 여행, 피렌체


 쾌청한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 여유로운 사람들과 고풍스러운 거리. 아주 완벽한 때에 유럽에 도착했다. 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도착한 유럽은 갑자기 모든 것이 쾌적해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몇 달간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는 동안 늘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던 아잔 소리 대신에 성당의 종소리가 들렸고, 그토록 먹고 싶었던 돼지고기를 맛볼 수도 있었다. 도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유산, 편리한 대중교통, 입에 착 달라붙는 음식들 덕분에 꼬질꼬질한 배낭여행자 부부는 잠시나마 관광객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빠듯한 장기 여행자가 감당하기에 유럽의 물가는 꽤나 가혹했다.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유럽과 북미 일정이 전체 예산을 좌지우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한 여행지를 어찌 허투루 지나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쉥겐 조약으로 인해 90일 이상 머물 수도 없기에 가능하면 적은 예산으로 완벽하게 여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자동차를 리스해서 교통비를 절약하고, 캠핑장을 활용하여 숙식비를 아끼기로 했다.


 파리에서 차를 인수받아서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에 반납할 때까지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유럽 대륙의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자동차 여행이었기에 어디든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기간만큼 머물 수 있었다. 날씨가 안 좋거나 기대보다 별로였던 곳은 계획보다 일찍 떠나기도 하고, 예상외로 만족스러웠던 도시에서는 조금 길게 머물면서 쉬어가기도 했다. 여름 성수기임에도 자유롭게 일정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차가 있었던 덕분이었고, 차가 있음으로 무거운 짐의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 캠핑용품과 식재료를 구비하고 캠핑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캠핑 여행의 매력에 빠져서 폭우가 내렸던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캠핑장의 상쾌한 공기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었다.


사과가 떨어지는 소리에 종종 놀랬던 프라하의 캠핑장


 여가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훌륭한 캠핑장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예약 없이 어느 캠핑장을 가도 여유로운 공간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었다. 대게의 캠핑장은 도시 근교의 녹지구역에 위치하고 있기에 캠핑장에 도착하면 대충 자리를 잡고 차는 놔둔 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 관광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 식사 거리를 사서 들어와 노을빛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빛 아래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숙박비도 아끼고 자유롭게 일정을 조율하고 싶어서 시작한 캠핑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마친 지금 떠올려보면 화려한 문화유산으로 가득했던 여행 명소보다 캠핑장에서 보냈던 시간이 더 많이 그리울 정도로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새소리에 일어나 안개가 내려앉은 호수변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해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잠드는 하루하루가 꿈같은 일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캠핑 생활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비록 어깨에 살림살이를 메고 사흘이 멀다 하고 이동하는 장기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밝고 따뜻한 공간, 편안한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실내에서 쉴 수 있었는데, 캠핑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편안함이나 안락함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숙소에 도착하면 내 침대를 찾아 짐을 던져 놓는 것으로 체크인이 끝났었지만, 캠핑장에서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땅을 고르고 텐트를 치고 주방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뉘울 수 있었다. 아침 일찍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날이면 아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부자리와 텐트를 정리하고, 교대로 세면과 식사를 하면서 모든 짐을 차곡차곡 다시 차에 실어야 하는 부지런함도 필요했다. 며칠 써보지도 못하고 터져버린 에어매트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마트에서 구한 종이박스를 깔고 누운 텐트의 잠자리는 늘 등이 배겼고, 홑겹의 천으로 안과 밖은 나눠놓은 텐트 벽은 단지 내 눈만을 속일 수 있었을 뿐 다른 모든 감각들은 이곳이 실내인지 야외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의 거리에는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한 여름에도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던 유럽의 밤공기에서 샤워를 하고도 마땅히 몸을 녹일 곳이 없다는 사실과 차가운 아침 이슬이 내려앉은 잔디를 걸을 때마다 발가락이 얼어서 사라지 듯한 감각까지는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지하에 호텔 수준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 지역의 캠핑장


 아무리 자연 속에서의 낭만적인 밤을 노래한다고 해도 앞서 말한 캠핑의 현실적인 불편함까지 미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두 달을 넘게 했던 캠핑이었기에 불편함은 생활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계획한 고생길임에도 불구하고 캠핑 여행 초반에 나는 참 많이도 투덜거렸었다. '이게 무슨 궁상인가?', '이 멀리 유럽 땅까지 와서 왜 이렇게 고생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캠핑을 접고 숙소를 예약할까?' 그런데 그때마다 아내는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고 자연 속에서 일부가 되어보는 게 얼마냐 좋냐며 나를 타일렀다. 어쩌면 여자로서 캠핑 생활을 하는 아내가 나보다도 더 불편했을 텐데 아내는 정말로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생활상의 불편함이 생기면 바로바로 제거할 수 있었기에 잘 몰랐었는데,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편함 앞에서 아내는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대처해가는 서로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적응할 수 있는지, 어떤 태도로 상황을 극복하는지 인내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서로 그 바닥의 깊이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기에 서로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반복되는 시험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좀 더 알아야 했다. 함께 살면서도 일상적인 일과 우리와는 사실상 크게 상관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홀했었다. 해가 진 캠핑장의 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해가 지면 TV도 인터넷도 없는 텐트 안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풀벌레 소리를 배경으로 끝없는 대화뿐이었다. 그동안 같이 살면서도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먼 미래의 계획까지, 매일 밤 불 꺼진 작은 텐트 안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잘 몰랐던 와 너를 잘 몰랐던 는 새로운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시끄러운 음악도 삼겹살 굽는 연기도 없었던 유럽 캠핑장의 밤


 오랜 시간을 거쳐 여러 번 함께 여행을 했었고 이번 세계 여행도 함께 계획해서 떠난 여행이었기에 적어도 여행의 취향은 닮았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닮은 듯 다른 우리라는 것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여행이 벨기에와 독일을 거쳐 동유럽과 발칸반도를 지나 이탈리아에 이르렀다. 이탈리아는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곳이었기에 입국을 할 때부터 결혼 초반의 애틋한 감정이 떠올랐다. 게다가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연인들의 도시' 피렌체에 도착하자 마치 다시 신혼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거대한 두오모의 첨탑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일 것이다. 나 역시 영화 속의 그 장면처럼 아내와 함께 두오모의 쿠폴라에 올라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커플의 성지 피렌체에서 우리 부부는 함께 다니지 않았다.


지오토의 종탑에 올라 피렌체의 두오모를 감상하는 동안 아내는 저 아래 광장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여행지에 도착하면 높은 곳에서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을 좋아했기에 전망대라고 적혀있는 곳을 발견하면 홀린 듯이 올라가고는 했고, 아내는 높이 올라가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며 남들이 찾지 않는 비좁은 골목길을 헤매기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취향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충돌한 곳이 바로 피렌체였다. 나의 취향을 사로잡은 포인트들은 거대한 두오모의 돔 전망대, 두오모의 전경이 보이는 지오토의 종루,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이었지만, 아내는 고풍스러운 피렌체의 골목과 궁전, 미술관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사코 두오모를 오르지 않겠다는 아내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결국 연인들이 꼭 함께 가보고 싶은 장소로 꼽는 두오모의 쿠폴라에 혼자 올라가 다정한 커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서로 닮았다고 생각했기에 항상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었는데,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부터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게 되었다. '피렌체까지 갔으면 당연히 같이 두오모에 올라가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각자 취향에 맞는 여행을 해보자'로 계획을 수정했다. 무려 커플 천국 피렌체에서 말이다. 도심 광장에서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고 헤어진 후에 나는 두오모와 종탑을 올랐고 아내는 미술관과 도서관을 순례하고 다시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도 나는 언덕 위 전망대를 향했고 아내는 강변의 산책길을 걸었다. 나는 두오모 위에서 광장을 내려다보았고 아내는 광장에서 두오모를 올려다보았다. 취향의 차이는 관점의 차이를 만들었고, 우리는 같은 날 서로 다른 피렌체를 여행했다. 비록 함께 피렌체를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저녁 식사를 하며 냉정한 피렌체를 느낀 나와 열정적인 피렌체를 느꼈던 아내는 각자의 하루를 서로에게 자랑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내는 이런 거리를 걸으면서 그들의 일상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수년간의 연애를 하면서 성격, 사고방식, 가치관이 서로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을 결심했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다소 충돌은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큰 다툼은 없었다. 우리는 비슷한 성격이라 판단했기에 내가 힘든 상황은 너도 버티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에 네가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던 것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낸 10여 년간 우리는 서로가 닮은 점을 확인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 시간 동안 서로를 닮기 위해서 노력해왔었나 보다. 여행을 통해 낯선 환경에 던져진 서로를 관찰하면서 우리가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처음에는 불편했던 캠핑 여행이 별빛 아래에 자는 낭만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함께 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배려했던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함께 찍은 사진 한장 없지만 피렌체가 로맨틱한 도시로 기억에 남는 것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느꼈던 애틋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닮은 듯 다른 우리는 서서히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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