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낫배드파더 May 04. 2022

아내는 주말이 싫다고 했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뭔지 알아?”     


어느 토요일 오후 유모차를 밀면서 아내와 함께 재래시장에 가던 길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아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나는 “바로 주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아내와 아들과 함께 고민거리를 잠시 미뤄놓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낼  있는 시간이라 행복해.” 이때 아내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드리웠던 것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아내는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질문을 받았는데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곱씹는 중이라는 얘기다.  박자 늦게 묵직한 어퍼컷을 날릴 때가 있다. 이날도 그랬다.


아내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나는 주말이 제일 무섭다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받고 ‘주말이란 무엇인가하고 잠시 생각해봤다고 했다. 아내는 이전에 주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먼저 떠오른  ‘해야  일들이었단. 아내에게 주말은 ‘밀린 집안일이 뭐가 있지’ ‘반찬은 뭐가 있나’ ‘새로 사야  생활용품은 없나등의 질문이 꼬리를 무는 시간이었다. 아내는 “해야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날이 주말인데, 그걸 몰아서 하려다 보니 몸도 마음도 함께 지쳐요라고 천천히 말했다. 나의 철없는 ‘주말 예찬론 아내에게는 ‘절망의 재발견이었던 셈이다.    

 

아내의 주말도 즐거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에 해본  없는 질문이었다. 아내 입에서 “주말이 제일 무섭다 답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내가 일부러 나를 탓하려고  말도 아니었다. 느낀 것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육아가 ‘제로섬 게임 되는 꼴을 두고   없었다. 나의 안락한 주말이 아내에게는 전쟁터라니. 아내의 말을 듣고는 주말에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주말에 내가 잘하지 않았던 일의 목록을 적어봤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다가 실제로 작성해보니 무엇이 문제였는지 조금 선명해졌다. 내가 손대지 않거나 손대기 싫어하는 일은 자연히 아내의 몫이 되고 있었다.


빨래

식사 준비

아이 목욕

아이 식단 짜기

아이와 놀아주기

아이 기저귀 갈기

음식쓰레기 버리기

아이 장난감 및 책장 정리

아이 놀잇감이나 그림책 준비하기


실제 목록은 아마 이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내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다면 진작 죄책감이 생겼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일부러 하지 않는 것보다는 몰라서 안 한 게 낫지 않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저 목록은 일단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1) 주말이 아닌 주중에는 아내와 분담하고 있는 일, (2) 주말이든 주중이든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일. 목록을 오래 들여다보니 아빠와 남편으로서 내가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1) 주말이 아닌 주중에 아내와 분담하는 일. 여기에는 빨래, 아이 목욕, 아이 기저귀 갈기, 음식쓰레기 버리기, 식사 준비, 아이 장난감 및 책장 정리,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기가 포함된다. 이 일들은 주중에는 했지만 주말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이 목록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요약하면 ‘현재에 집중된 일’이다.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미래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일이다. 주말에 이 같은 일에 소홀했던 이유는 아내도 집에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말없이 하니까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이다.


‘주말엔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애를 이렇게 열심히 봤는데’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말이 무섭다는 아내의 말에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주중에는 회사일에 치이고 주말에는 육아라는 기관차에 또 깔리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주중에 육아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은 (2) 주말이든 주중이든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일. 아이 다음 주 식단 짜기, 아이 놀잇감이나 그림책 준비하기 같은 일이 여기에 들어간다.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일’이라는 게 특징이다. 고급 육아 스킬이 필요한 이 대목에서 나는 ‘빵점’이었다. 빨래나 목욕, 기저귀 갈기 등은 몸으로 때우면 되는 일인, 식단 짜기나 놀잇감 준비는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의 취향, 습관, 성격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더 나아가 아이를 어떤 식으로 키워야 할지 철학이 필요한 일이었다. 공부와 고민이 뒤따라야 했다.


예컨대 아이 식단을 짤 때 제일 먼저 고민해야 할 게 무엇일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 최우선으로 중요한 건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이 뭔지 알고 있느냐다. 어린이집 식단에 알레르기 유발 음식이 포함돼 있는지 매주 체크해야 한다. 집에서 주는 음식에는 당연히 포함되면 안 된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을 최근에야 다 외웠다. 복숭아 토마토 고등어 유부 파인애플 키위. 원래는 애호박도 있었는데 첫 돌이 지나면서 알레르기 반응이 사라졌다. 아이가 유부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는 말에 놀라면서 “유부도 알레르기를 일으켜?”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아내는 아마 그걸 모르고 있던 나에게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아이 놀잇감이나 그림책을 준비하는 일은 좀 더 고급 스킬에 들어간다. 아이의 발달 단계를 알아야 하고, 발달 단계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때에 맞게 잘 사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있는 접근 방식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장난감과 놀이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계속 새로운 책을 사주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고민은 ‘나는 왜 답답해하지 않는가’로 이어졌다.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 중 어떤 것은 계속 모르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알아가는 일에서 현재에 자꾸만 안주하려 하고 있었다. 반면 아내는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답답해했고, 더 알아가기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사정을 모르는 제삼자가 볼 때는 “이 집은 주중에는 남편이 애를 보고, 주말에는 아내가 애를 보는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내와 나의 육아에는 질적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 결정적 차이였다. 내 육아가 현상 유지에 급급한 보수적 행정 관료의 모습이라면, 아내의 육아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탐험가 같았다. 아내가 나보다 더 적극적이고 피곤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싶어서 읽은 책이 있다. 영국의 심리치료사인 나오미 스테들런이 쓴 <엄마 마음 설명서>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본 부분은 ‘남편이 너무 미워요’라는 챕터였다. 아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엿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상상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다. 서둘러 읽던 중 뼈를 때리는 한 줄을 발견했다. 저자가 출판인 어설라 오언(Ursula Owen)의 말을 재인용한 문장이었다. (원문은 <Fathers, Reflections by Daughters>에 담겼다)


엄마에게 육아는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아빠에게는 취미 생활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아내와 나는 육아의 동기에서 전혀 다른 지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내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을 잔뜩 싸고 있는데, 나는 소풍 가는 마음가짐으로 ‘자전거나 타볼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가짐이 달랐으니 행동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취미 생활은 싫증 나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기분이 좋은 날은 하면 되고, 속이 뒤엉킨 날은 내팽개쳐도 된다. 의무가 아니니까. 하지만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기분을 잡쳤든 아니든, 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반드시 해야 한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관계없이.


육아를 취미 생활처럼 여기고 있 건 아닐까. ‘좋은 아빠’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 전보다 자신 있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잘 모를 때 더 자신 있었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대로 육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실제로 육아를 경험하면서 점점 말이 줄어드는 걸 느끼게 된다. 인스타그램에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사진으로 올리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 아내가 “애 보느라 사진 찍을 틈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젠 나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전 01화 오후 4시 놀이터의 불온한 아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