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이피는섬 Jan 21. 2024

gentle rain

짧은 소설 연재

긴 산책 같은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거기 있는 동안 계속 비가 내렸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 그곳도 지금 겨울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옆에는 감기에 걸렸으면서도 연신 웃으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맛있는 걸 권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길지 않은 일정에도 기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보기도 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그 사람은 기침이 더 심해져 있었다.

웃으며 그곳에서 지내온 얘기를 해줬다. 외롭고 힘들 때도 있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이제는 이곳이 좋고 익숙해졌다고. 다행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조금은 안쓰럽고 조금은 서운했다. 그 사람이 아프고 힘들다고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그래서 나는 괜찮다는 그 말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도 여전히 비가 왔지만 쌀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의 감기는 낫지 않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초조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그냥 “안녕.”이라고 인사했다.

언제 볼지도 모르면서 나는 “다음에 봐.” 그렇게 말했고, 그 사람도 의미 없는 대답을 했다.     


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갔지만, 돌아오는 길은 내내 그 사람 생각을 했다.


힘들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런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걸 느꼈다.


그 사실이 슬프면서도 나는 다시 내 자리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더 힘 낼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멀리 내가 잘 모르는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일 테니.

아파도 씩씩하고, 늘 웃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그렇게 지낼 걸 아니까.

비가 오고 춥고 낯선 곳에서도 천천히 모험을 하며 세상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으로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닮고 싶은 그 사람이 그곳에서 그렇게 씩씩하듯, 나도 씩씩하게 더 잘 지내고 싶어졌다.



안녕.

고단한 모험을 떠난 씩씩한 왕자님.

너의 동화 속 주인공이 내가 아니어도 나는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있어.

지금 내리는 비가 너에게 너무 차갑지 않길,

언젠가 네가 찾고 싶어 했던 것들을 찾을 수 있길,

따뜻한 햇살이 머무는 곳에서 무사히 긴 여행을 끝낼 수 있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