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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Feb 10. 2024

green green day

짧은 소설 연재

"김동명 선생님 계신가요?"

아이는 할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이 없다.

혹시 못 들었나 싶어 몇 번 되물었지만 내 질문은 물론 내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눈빛이었다.


'난 어쨌든 대답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그저 뒷마당 쪽의 정원을 바라보는 것뿐 딱히 뭘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소년은 정말 내 존재를 잊은 듯 원래 앉았던 방향을 향해 아예 등을 돌렸다.

언뜻 봐서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열 일곱 정도? 아니면 스물둘이나 셋?


가라고 한 건 아니니 잠깐 다른 가족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당 쪽으로 난 툇마루 끝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다 혹시 말을 못 하는 아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답하지 않는 아이를 바라봤던 내 구겨진 표정이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상처받은 표정이라기엔 무척이나 담담했지만, 적어도 무례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금세 '아니, 무시당한 건 나인데!'라고 속으로 외쳤다.


햇빛이 더없이 반짝이는 날이다.

오래되었지만 정갈한 한옥은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작은 숲으로 난 길을 옮겨놓은 듯한 정원에는 온갖 초록이 일렁였다. 이름 모를 여름 꽃들 속에

때죽나무 새하얀 꽃들이 연둣빛 나뭇잎 아래로 일제히 땅을 바라보며 펼쳐져 있었다. 저렇게도 예쁜 꽃이 위로 얼굴을 뽐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특이해서 외우고 있는 꽃 이름이었다.


'선생님 손자일까?'

문득 뒷마당에는 뭐가 있길래 하염없이 보고 있나 궁금했다.


선생님의 행방을 알려줄 다른 가족을 기다려보자 생각했지만 30분 만에 생각을 바꿨다.

이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일들이 또 쌓여 있으니 이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가서 보고할 답은 있어야 하는데...


가방 속에서 작은 노트와 펜을 꺼냈다.

'선생님 병원에 계신가요?'라고 써 들고 소년 쪽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기척을 느낀 아이가 바라보았다. 역시나 아무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작게,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노환이 와도 이상하지 않으실 나이였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시니 가장 먼저는 아프신가 싶었고 두 번째는 혹시 더 좋지 않은 소식이면 어쩌나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에 보고할 한 마디를 간신히 얻어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다시 올게요. 선생님 쾌차하시길 기도할게요!"

마지막 인사는 노트에 쓰지 않고 그냥 말로 했다.


말없는 소년이 보고 다시 고개를 끄덕했다.

그 모습에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한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는데 그 사이 마치 친해진 것 마냥 더 이상 소년이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김동명 선생님 병원에 계시대요. 간병하시는지 사모님도 안 계시고 집에 손자가 혼자 있더라고요."


"그래? 딸 하나 있으신 걸로 아는데 외국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딸이랑 외손자가 같이 들어왔나?"


"그런가 봐요."


외손자였구나. 외국에서 살다와 한국어를 못하는 거였나?


"선생님 기념전에 들어갈 작품 연대순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선생님 사진도 크로스체크해 줘!"


"네!"


건네받은 파일을 넘기다가 익숙한 풍경의 사진 앞에 시선이 멈췄다.


정갈한 한옥집, 초록이 일렁이는 정원, 뒷마당을 향해 앉은 시인의 옆모습.

열일곱 즈음 같기도 하고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 같기도 한.



새침한 듯 예민한 그 옆얼굴이 왠지 살짝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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