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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4. 2018

선셋 아래 디너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먹고 즐기고 놀아라.

  작정하고 떠났다. 코타키나발루로.

  그런 것들이 있다.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순위가 매겨져 있는 것들이다. 세계의 3대 명산, 세계 3대 스키장 그런 것 말이다. 유네스코나 타임지처럼 출처라도 있는 곳들은 그나마 낫다. 입소문과 인터넷은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등수들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등수가 매겨진 장소들을 보면 상반된 감정이 생겨난다.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오히려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서는 ‘인기 넘버 원’이라고 쓰인 맛을 고를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것과 같은 심리다. 한 번 먹어 보고는 싶다. 하지만 인기 넘버 원이 꼭 내 취향에 맞는 맛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코타키나발루가 그랬다. 세계 3대 석양. 코타키나발루에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다. 산토리니. 피지. 코타키나발루 세 곳을 일컫는단다. 하지만 이 3대 석양, 아무래도 기사를 낸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변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야후 뉴스에는 일본 하코다테의 일몰을 3대 일몰로 소개하고 있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덜컥 표를 끊었다. 취향인지 아닌지, 실망할지 아닐지는 먹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설령 석양에 실망한다 해도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니깐. 말레이시아는 일단 맛있는 게 많으니깐. 석양이 실망스럽다면 배라도 두둑이 채우고 오면 되니깐 싶었다.

  한 나라의 음식이 맛있다는 걸 안다. 그것은 때때로 떠날 용기를 준다.

  코타키나발루는 보르네오 섬 Borneo I, 키나발루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사바 Sabah 주의 메인 도시인 데다 공항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들 중에는 보르네오 섬을 그냥 코타키나발루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통칭 KK라는 약칭으로 불린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날씨는 온화하다. 휴양지로서 최고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코타키나발루는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아예, 작정하고 휴양을 하러 가자 싶었다.

  여행을 여유롭게 하는 편이긴 해도, 작정하고 휴양을 하러 간 적은 없었다. 여행지에는 늘 해 보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으니깐. 나에게 여행은 늘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다.

  먹어보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고른 김에,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여행을 해 보자. 나는 코타키나발루로 떠나기 전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많이 걷지 말 것. 열한 시까지 뒹굴뒹굴 늦잠을 잘 것. 무언가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지 말 것.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날. 늦게 도착해서 바로 잤다. 둘째 날. 신나게 물놀이를 하다 선셋 보는 걸 잊어버렸다. 여행을 떠나온 목적을 잊어버리다니. 어쩐지 신이 났다. 셋째 날. 선셋을 봐야 한다는 의무감은 이미 사라졌다. 마지막 날이니 리조트를 누릴 때까지 누리리라. 떠나는 비행기는 밤 열한 시였다. 저녁은 충분히 먹을 시간이었다. 냉큼 리조트 안의 식당으로 향했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앞에 놓인 맥주가 반쯤 비어졌을 때.

  투명한 컵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피자를 집어 들다 컵에 비친 빛을 봤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바다 쪽을 봤다. 해안선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색색의 비단실이 뒤엉켰다. 색은 부드러운 비단이 되었다가, 곧 신비의 섬이 되었다. 하늘과 바다로 이어지는 금빛이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두 세계를 하나로 이어나갔다.

  세계 3대 석양이든 아니든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보며 먹은 피자는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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