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자전거를 탔습니다. 한 시간도 안 탔는데 숨이 어찌나 가쁘고 다리는 왜 이리 무거운지 자전거가 불량이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자전거의 기어를 오르라 내리락 만지작거렸습니다. 예전엔 그래도 운동하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조차 하지 않았고 이러한 연유로 자전거 페달 밟기조차 버거운 몸이 되었습니다.
정신을 깨우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정작 정신만큼 중요한 몸에는 무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서 더 신경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제가 읽고 있던 책에서 저에게 딱 필요한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몸으로 사는 존재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것을 잊고 산다. 그런데 몸으로 사는 존재라는 이 사실을 놀라움으로 지각하게 되는 모멘트가 있다. 몸이 아프게 될 때, 또는 나이가 들면서 몸의 상태가 변할 때다. 나이와 무관하게 또는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격렬한 ‘몸의 지각’은 타협이 불가능한 ‘자아 탐험’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이로써 자기 이해나 시간 이해, 타자와의 관계나 사회활동 등에서 심각하고 결정적인 변화들을 불러온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김영옥, 메이, 이지은, 전희경 저
이 문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감정은 일종의 '몸의 지각'이었습니다. 사실 최근에 운동 부족과는 별개로 소화 기관의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꽤나 자주 체감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의 지각을 경험할 때마다 너무나 당연해서 무심해질 수밖에 없었던 제 '몸'에 대해서도 관심이 조금씩 더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확장되어 새벽에 일어나서 정신에만 자극을 줄 게 아니라 몸에도 자극을 줘야겠다는 결심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며칠 전부터 저는 책 읽고 글쓰기와 더불어 팔 굽혀 펴기와 스쿼트를 단 10개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이 놀란 탓인지 운동을 조금만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몸 구석구석이 쑤셨는데 그게 마냥 불편하게 느껴지다가 엊그제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평소와 똑같은 아침을 맞았을 것이고 그럼 몸을 지각하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운동을 함으로써 자극을 줬기 때문에 몸을 지각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구나"
정신에 자극을 주기 위해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것처럼 몸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운동하고 자극을 줘야지 비로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몸으로 사는 존재인데 몸을 잊고 정신에만 자극을 주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모순적인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요즘 그래서 제 삶의 화두는 몸과 정신 양쪽에 적당한 자극을 골고루 주는 것입니다. 몸과 정신이 모두 적절히 살아있음을, 매일 미묘하게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각하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