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뼉은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손발의 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것 없이 닿기도 싫은 사람도 있다.
삶이 살고 죽는 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듯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닿고 싶지 않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면야 피하고 싶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마주치기 마련인 것이 또 현실이다.
그런 때가 오면 이상하게도 난 내 맘을 남 보듯 무심하게 대하곤 했다.
그것은 '객관화'라는 것에 도움을 받았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종의 '보호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여러 방이 있다고들 했다. 물론 내게도 몇 가지 종류의 방은 존재했다. 나는 그 속에 있는 것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실체를 확인하려 했다.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은 상황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다. 때로는 인정은커녕 사실을 보는 것조차 힘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은 여러 번 경험한 일이기도 했다.
'보호 본능'이 발동 걸리면 나는 끄집어낸 사실들에 인정, 긍정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리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모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결국 어느 지점에 다다르게 되었다.
긍정적인 사고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CE 헬스케어 아시아 이채욱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이 일의 좋은 점이 뭔지를 쭉 메모한다. 나는 그것을 ‘백지와의 대화’라고 부른다. 백지 위에 좋은 점을 나열하다 보면 더 좋은 점이 나오고 그것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 일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다 보면 당연히 열정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또다시 긍정적인 행운아 마인드가 나오는 선순환 구조가 계속되는데, 그런 노력을 하다 보니까, 열정과 긍정적 사고가 몸에 배었다고 생각한다.”
긍정은 어떻게 보면 인정의 또 다른 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있는 상태 그대로를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긍정'이 아닐까? 스스로 말을 걸다 무심코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긍정이 인정과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과연 인정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 '인정할 부분에 대해 의문이 없는지'의 확신과 같은 내 기준으로 나름의 판단을 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인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계', 그 지점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스스로 그어버린 일종의 심리적 경계선을 넘는 일, 다시 말해 현재를 직시하고 긍정하는 것은 먼저 내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심리적 요소들을 인정해야 가능해지는 중요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넘지 못하는 그 경계선에서 발을 내딛지 못한 채, 머리를 굴리고 마음을 헤집다가 어떠한 이유로든 결국, '생긴 대로 살자'가 되기도 했다. 이것도 긍정이라면 긍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것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냥 부딪혀보자'는 오기가 발동한 적도 있었다. 어디서 생긴 용기인지, 아니면 열정이었는지, 부딪혔던 그 속에서 운 좋게 차선책이라도 찾게 된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은 날것으로 체득한 소중한 지혜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 또 심리적 경계선 앞에 서게 된다. 어떻게 보면, 누구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 내게 주어진, 내가 선택한 내 몫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다들 사는 일'이라는 혹자의 말을 너무도 이해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영화 <베놈 2 : 렛 데어 비 카니지>에서 "사실은 진실의 적이다."라는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나도 공감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정을 지나 심리적 경계를 넘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심리적 경계선 앞에서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긍정하지 못하는 그 실체를 알 수 있을까?
불현듯, 체조선수가 뜀틀을 뛰어넘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히는 과정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앞에 선 뜀틀을 뛰어넘는 일, 내가 선택해서 누군가 시키지도 않은 이 순간을 자꾸만 반복하게 되는 것은 마음에도 일정의 양분을 섭취하고 근육을 키워야 하는 필요한 준비과정, 다시 말해 자연을 닮은 어떤 섭리가 작용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정답이 없다'는 것이 인생계(人生界)의 통설(通說)일 테니, 내 방식의 걸음을 따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뜀틀을 돌아서 갈 수도 있는 일은 아닐까? '긍정'이라는 것이 이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평화로운 현상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