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생(生)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재밌는 것을 '일'로 삼으면 힘들고, 원하던 '재미'는 어느새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다. 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의식마저 순간순간 생각을 치고 들어왔다.
'겪고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이왕이면 즐겁게 해 보자. 그 끝에 뭐가 있을지 알게 뭐람.'
이런 생각에 간혹 조심성도 잊어버리고 살짝 짓궂은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지루하면 죽는다>는 제목의 책이었다.그리고 그것에 달린 추천평을 보고는 메모장에 바쁘게 필사(筆寫)했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자양분(滋養分)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영국에서 만든 스릴러물을 좋아한다. 놀이터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뛰어들어 아기 엄마를 죽이고 도망간다. 아니면 갑자기 멀쩡하던 딸아이가 행방불명된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근데 시간이 가면서 하나하나 정체가 드러난다. 사람 간 새로운 관계도 알려진다. 나름 추측을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드라마를 본다.
이 책은 지루함에 관한 책이다. 왜 어떤 책은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고, 어떤 책은 읽히지 않는지를 살펴본다. 방법은 네 가지다. 예측 오류, 상상력 증폭시키기, 규칙 깨부수기, 마성의 캐릭터, 모호하게 흥미롭게 하기 등이다.
인간은 늘 예측하지만, 도파민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건 ‘미스터리’다.
대부분의 책은 도입부를 수수께끼로 시작한다. 단서를 조금씩 흘리며 결말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논다.
미스터리의 반대말은 뻔한 결말이다. 누구나 다음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게 하는 것이다. 미스터리는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미스터리 전략이 있다. 재미와 서스펜스이다.
여기저기 비밀을 심고, 새로워 보이는 스타일을 시도한다.
그런데 미스터리 전략의 핵심은 균형이다.
너무 많이 보여주면 지루해지고, 너무 적게 보여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규칙을 깨는 것도 방법이다. 야구에서 너무 타자들의 타율을 높이기 위해 불펜의 거리를 17미터에서 18.5미터로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모호함도 방법이다. 선명한 것은 금세 지루해진다.
반면 중독적인 콘텐츠에는 ‘매력을 더하는 모호함’이 있다.
"모호함이야말로 좋은 예술의 조건이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말이다.
영국의 소설가 존 파울즈는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절대 잊지 않는 것, 그것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미스터리만큼 수명이 긴 것도 없다."
훌륭한 작품은 한 가지 해석을 정답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수 세기를 가로질러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는다. 쉽게 잊히지 않는 전율과 감동을 선사한다.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인생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동력이며,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추론적 사고와 창의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도록 돕는 열쇠가 된다.
한스컨설팅의 한근태 대표가 ‘궁금하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조나 레러의 <지루하면 죽는다>에 대해 쓴 평이었다.
이것은 '미스터리'에 대한 그동안의 내 생각을 뒤엎었다.
'재미'에 대한 나의 '모호함'에 덧대어진 '선명함'이랄까!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인내(忍耐)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없을 비밀, 이것이영원할 수는 없어도, 있을 수는 있다.
이제 나는 의도적으로 나만의 비밀을 찾고 만들어 채워가려 한다.
이미 삶은 수수께끼다. 비밀은 넘쳐난다.
내 모호함에 미스터리를 덧대고 나의 재미를 찾아서 나를 감동시켜 주는 삶으로, 일단 아는 느낌부터 조금씩 움직인다.
지루하면 죽는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재미가 없다면 어쩐지 정말 '죽을 맛'일 것 같다.
이제는 '재미'가 무엇인지, 그 예술적인 모호함을 알아내는것이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니, 일단 살아보고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