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

서로 크는 이야기

by 난나J

결혼 전에 나란 사람은,


혼자서 보름간 동유럽 여행도 떠날 만큼 용감했고, 밤샘 작업 끝에 아침방송을 끝내고 집에 바로 돌아가기가 아까워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려고 혼자 오전 11시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집에 가서 잠이 들만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혼자서라도 충분히 해낼만큼 자유로웠으며, 또 잠은 하루 종일 누가 깨우지 않으면 깼다, 다시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잘만큼 잠도 많았었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죄책감 없이 살 수 있었고, 배우고 싶은게 있다면 내가 번 돈으로 충분히 배울 수도 있었다. 없었던 것이 있다면 바쁘게 일한만큼 내가 그것들을 할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있을 때 내가 누렸던 모든 생활들 중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위에 열거한 나의 생활 중에서 지금 내게 가능한 것이라고는. 사실 하나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그 상황이 내게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그런데 정말 나는 그만큼 포기해야하는 것들만 많아진 걸까?



문득, 지금 내가 얻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부분만 생각하고, 그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내게 얻어지는 것들, 그 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생겨난 부분들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지금의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라도 이런 성찰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얻은 것들>


1. (누가 뭐래도) 아이들


'서'와 '로' 두 아이가 생긴 것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축복이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비로소 내 인생의 가치가 재조정되는 전환을 맞이했다. 일에 빠져 살 때는 사실 일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가치인 양 살았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집은 다시 일을 나가기 위해 잠시 머물다 잠을 자고, 씻고, 쉬어가는 곳으로만 기능했었다. 사실 엄마, 언니와 함께 여자들만의 여행을 처음으로 갔던 것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난 뒤였으니. 난 일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던 셈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사회생활을 잠시 접고 두 아이의 엄마, 남편의 아내, 그리고 부모님의 자녀로 살다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들과의 조화로운 관계에서 꽤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오로지 일만 했다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아이들이 내게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 뿐이 아니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날 시험에 들게 한다. 두 아이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일, 한 아이가 이유없이 내게 짜증을 부렸을 때 내가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하는 일, 내가 그 와중에 너무너무 화가 났을 때,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물론, 이미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 상황이긴 함.) 등 나에 대한 성찰은 물론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 같은 것들을 나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아이들이 내게 해주고 있다. 이건 내가 '서'와 '로'를 키우는 것과 동시에 내가 아이들과 서로 크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내가 보내는 시간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성숙하게 하고 내 마음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이 시간이 내게도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건 모두 아이들이 내게 준 것들이다.


2. 남편과의 동지의식?


남편과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 데이트를 하며 설레는 감정들을 느끼던 그 순간들이 종종 그리워질 때가 있다. 연애할 때는 신랑이 내게 오롯이 집중해주었고, 난 그런 신랑의 애정표현이 좋아서 결혼을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여러가지 일에 모두 최선을 다 하기가 어렵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생기니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 (나 역시 그럴거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신랑에게 서운할 때도 물론 생긴다. 그런데 이것과 반대급부로 생겨나는 감정이 바로 '동지의식', '의리' 같은 것들이다.


고생을 같이 한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 난 '서'만 태어났을 때는 나의 모든 상황들이 억울하기만 했다. 아이를 낳았는데 신랑은 그대로고, 내 인생만 송두리째 달라져 있었다. 나의 10년 넘은 경력은 아이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허무해지기 이를데 없었다. 그래서 나만 억울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아이가 둘이 생기니, 하나씩 아이들을 커버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들이 생기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은 생각에 남편을 조금 더 배려해 행동하게 되었다. 물론 신랑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하.


예를 들면 쓰레기 버리는 당번은 신랑으로 정해놓았고, 설겆이 당번도 역시 신랑의 몫으로 신혼 때부터 정해놓은 터라 신랑 퇴근 후에 그건 빼놓지 않고 신랑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쌓여 있는 집안일을 처리하고 정신없이 잠들 신랑의 고단함도 조금은 배려할 마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같이 고생하는 신랑의 마음도 내가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둘째 '로'가 생기면서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과 신랑, 그리고 나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고 우리 중 누군가가 조난 당한다면 모두의 불행이 초래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서로를 신경쓰게 되었다. 같은 동지의식과 함께 사랑에 의리를 몇 방울 더 섞고 있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사랑을 놓고 싶진 않지만.


3. 나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가능해졌다.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나에 대한 고민을 쉴 새 없이 했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이를 낳은 후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왔던 나의 일, 그리고 내가 한 공부,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하는게 좋으며, 난 어떤 일에 걸맞는 사람이며,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을지 등등...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건 일을 할 때는 오히려 마음 저 뒷켠에 미뤄두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다.


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은 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기도 하고, 내가 처한 상황으로 절망할 때도 있지만, 제로베이스에서 날 시작하게 하다보니 날 재단하는 제약 등에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오히려 내 인생을 꿈꾸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성공하는 사례들이 많은 이유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이건 분명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4. 재테크에 좀 더 눈을 뜨게 됨


이건 현실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전업주부로 살다보면 여러가지 회의감이 드는데 그 중 하나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겪는 금전적 쪼들림이다. 평생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살았다면 모르겠으나 일을 하다가 하지 않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경제적 이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그것은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재테크게 원래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일을 할 때는 그만큼 그 관심을 실행시키며 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틈틈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내가 가능한 선에서 기사를 보고 정보를 얻으며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집을 통해 경제적 이득이 발생했다. 일을했다면 그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건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판단하고 실행할, 시간적 여유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얻은 부분이다.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가 내가 현 상황에서 느끼는 중요한 몇 가지의 장점들이다. 생각보다 큰 부분이고,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데는 어쩌면 꼭 필요했던 부분들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적어보니 나의 현 상황의 장단점이 좀 더 명확히 보이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건,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의 주인인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서'가 태어났을 때는 그 시간을 힘들어만 했다면 '로'까지 태어나고 나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좀 더 고민하게 된 것 같다. 내 상황을 한탄만 하기에는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며 이 시간들을 보내야겠다. 티끌만큼 주어진다면 티끌만큼을 해내고, 부족하다고 부족한 것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어진 나머지 시간에 감사하는 마음... 좀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을 감사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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