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심

서로 크는 이야기

by 난나J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은 물음을 던지는 쪽은, 아이라기 보단 실은 나 자신일 때가 많다.

그건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일 때가 많다.


"내가 지금 이토록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내가 가장 행복해할 때는 언제이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일과 가족 중에서 난 무엇을 선택했을 때 결국 후회하지 않을까?"


부끄럽게도 일에 빠져 허우적 대며 살고 있을 땐,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고

나의 인생을 생각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었다.

일이 나를 몰아붙였지만, 사실 육아를 할 때만큼 내 정신이 몰아붙여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이 든 나의 육체 때문일까.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나의 일상은 대부분 아이들. 아니 지금 나의 일상은 육아로도 버거우므로

당연히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타인이 나의 삶을 들여다볼 유일한 통로인 인스타그램이

아이들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을 때의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나에게 찔리는 그 느낌. 나는 어디 갔는가?

나는 여기 그대로 있는데,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나'는 사라진 느낌. 그 허탈함이 때론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난 철저히 나의 상황을 부정하던 과거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다.

완전한 극복은 아니다. 요즘 나는 무엇인가를 '사는 행위'로 나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운동화, 나의 스커트, 나의 티셔츠, 나의 가방 등 그것은 나를 꾸미는 의복에 집중되어 있다.

난 알고 있다. 이것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비상식적인 소비라는 것을. 때론 그것에 죄책감까지 느낀다.

그런데 그것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그렇게라도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정말 큰 우울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생활의 모든 부분들이 아이들에 맞춰져 버리니, 정작 나는 남아있지 않은 느낌. 그것을 나를 치장하는 무엇인가로 채우고자 하는 결핍에서 비롯된 소비. 그게 지금 나의 상황이다. 나의 신랑은 그것을 느낌으로 아는 듯, 나의 소비에 대해 크게 무어라 하지 않는다. 아마 말하는 순간, 나의 스트레스가 펑하고 자신에게 터질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듯. 그런데 내심 그 마음이 고맙다. 난 나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 싶지는 않기에.


존재의 의심.


난 육체적인 고됨보다도 엄마들을 극으로 모는 것은 자기 존재를 자기 자신이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키우는 육아라는 사실은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도, 아이들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또 다른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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