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블루 몰타
빵과 과자로 배를 채우고
스윽~ 둘러본 라밧(Rabat)을 뒤로하고
몰타의 옛 수도 임디나(MDINA)로 간다.
늦은 오후로 다가가는 시간,
태양은 여전히 열을 뿜뿜뿜.
임디나의 입구는 멋있다.
그 옛날, 로마 시대 때 성채를 지었다 하는데
당시 조각가는 문 앞을 지키는
사자의 얼굴을 무섭게 만들었을 것이나
내게는 귀엽게 보인다.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고 싶을 정도로.
문 위에 쓰인 글월은 당연 독해 불가.
로마 시대 문자이려니 하면서
(그럼 라틴어?)
고대 도시로 들어선다.
길은 구불구불, 일직선을 찾기 힘들다.
만약 외적이 도시 안으로까지 들어왔다면
화살을 날릴 것이고,
그 화살을 피하기 위해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만들었다 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
골목과 골목 사이로
빛이 보인다.
도시 중심부로 걸아가면 보이는 성당,
'성 바울 성당'이 있다.
라밧에 있던 성 바울 성당은 church,
임디나의 성 바울 성당은 Cathedral 이다.
이것의 명확한 구분은 안 하련다.
church는 단지 프로테스탄트의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 규모의 가톨릭 성당이기도 하며
Cathedral은 가톨릭 지역 본부 규모의
대성당이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대성당' 인데
외려 수수하고 깔끔해 보인다.
뭐랄까... 사람으로 치면
명품 의류로 휘감고
반짝반짝 액세서리를 단 사람보다
상하의 컬러가 잘 어울리면서
분명 치장한 듯 하나
튀지 않고 수수해 보이는 사람 같다.
정면에 시계 두 개가 보인다.
각각의 시간이 다른데,
위 사진에 있는 시계가
현재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체코 프라하에서 본 천문 시계가 생각났다.
역시 화려했던 체코의 천문 시계보다
임디나 성 바울 성당의 시계는 수수해 보인다.
론리 플래닛에 시계 관련 설명은 없어서
뭘 더 알아보기보다는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남겨 두려 한다.
성당을 바라보고 오른쪽 건물이 뮤지엄인데
무엇을 소장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따끈따끈한 태양을 피해 들어간다.
첫 번째 홀(Hall)에서 만나는 건
은(Silver)으로 만든 조각상들.
성모 마리아와 12 사도들을
모두 은으로 만들었다. 세상에나~!
그리고 은 성배, 은 접시 등등
은으로 만든 물품들이 하나 가득이다.
뮤지엄을 나와 성당으로 가던 길에
하늘을 본다.
반듯한 하늘.
저기에 비행기 한 대 지나가 주거나
큰 새 한 마리 날아가 주면 더욱 좋을 텐데.
성당의 내부는 화려하다.
발레타의 '성 요한 대성당'보다는 덜하지만
밖에서 본 성당 외경의 수수함은
온 데 간 데 없고 화려화려 하니
마치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만난 느낌.
사람이나 성당이나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뭔가 사기당한 것 같은 쌉싸름 한 맛.
그나저나, 천정 사진 찍는 나도 힘든데
1697년 경에 천정에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보수는 제대로 받았을까?
(이 성당은 원래 있던 성당이
지진으로 파괴돼
1697년~1702년에 새로 지었다 한다)
성당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공원이 나온다.
임디나는 몰타 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하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몰타의 전경을 감상한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보긴 하나,
에잇, 별 재미없다.
카페를 찾았다.
언덕 근처에 있는 Fontanella Cafe.
몰타의 가장 높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데 위치한 카페.
라밧에서 빵과 과자를 먹긴 했으나
뭘 챙겨 먹기는 그렇고
(몰타의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높다)
커피 앤 케이크를 먹기로 한다.
먹기 전에
나도 음식 사진을 찍어 보기로 한다.
아, 진짜... ㅡ,ㅡ 어렵다...
자연광 아래서 찍으니
그림자 피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 10장 정도 찍었나 보다.
컵과 케이크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들었다가
옆으로 찍었다가...
주변 손님들은
아무도 이런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음식 앞에 놓고 사진 찍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음식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건
대한민국 젊은이들밖에 없나 보다.
뱃속을 채웠으니
오늘의 마지막 촬영으로
임디나 골목을 헤매 보기로 한다.
늦은 오후라서 그런가
은은한 빛이 보인다.
화살을 최대한 피할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구불구불 골목 사이로
직선밖에 모르는 빛이 쏟아진다.
빛은 다시 레몬 색으로 변해
중세 시대의 도시를
한 점의 유화로 만든다.
이때, 어떤 아가씨가 보인다.
이 아가씨를
남친으로 보이는 남자 애가 (어려 보임)
스맛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포지션이 이상하다.
내가 서 있는 포인트가 더 좋은 것 같은데...
내가 자리를 비켜 줘도
남자 애는 위치 이동을 안한다.
내 여친이었다면
좀 더 예쁘게 찍어 줄 수 있는데...
여친 사진 잘 찍어 줄 수 있는 나는
여친이 없고
여친 사진 잘 못 찍는 저 남자 애는
(글쎄, 어려 보인다고요...)
여친이 있고...
신은 공평하신 건지 불공평하신 건지...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장면도 있지만
한 박자 기다린 장면도 있다.
마차를 타고 오는 여행자...
골목 사이로 떨어지는 빛과
마주하기를 기다렸다.
문득... 떠올랐다.
저 빛,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빛은
사실은 과거다.
태양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8분 정도 걸린다고 배웠다.
그러니까 8분 전 과거의 빛이
지금 나의 현재와 함께 있는 것이다.
물론 몇 만 광년, 몇 억 광년 떨어져 있는
별 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현재라고 믿어 왔던 시간 속에
과거가 숨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우겨 보기로 한다.
과거의 빛이 현실에 숨어들었다면
저 마차를 비춘 빛은
중세 시대의 빛일 수도 있겠다고.
그때도 빛은 저 골목을 비췄을 것이고
어느 여행자는 마차를 타고
지나쳤을 것이라고.
부득부득 우길 것이 또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봤다.
어느 골목길에서 만난 그림자...
엉덩이 위치의 가로 선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나
영화에서 봤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처럼 느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 요한 기사단이 지킨
이 몰타가 좋으신가 보다 싶다..
아침 8시, 블루 그로토에서부터
아자르임 사원, 라밧, 임디나까지
잘도 돌아다녔다.
블루 그로토에서는 글자 그대로 블루를,
임디나에서는 다시 레몬 색을...
마치 오래된 현재 같다,
중세시대의 빛을 간직한 임디나는.
- 입장료 : 성인 EUR 10.0 / 12세 이하 무료
학생 EUR 8.0
15시~16시 45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