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그 아이의 엄마가 생각했던대로 참 똑똑한 아이였다. 그런데 너무나 전형적인, 내가 교과서에서 읽었던 대표적인 난독증상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도와주기가 수월했는지도 모르겠다. 난독증 전문가 과정에서 배웠던 도움이 되는 많은 방법과 나만의 방법이 M을 정말 빠른 속도로 변화시켰다. M은 첫 번째 주부터 내가 하는 말들을 잘 이해했으며 잘 따라왔다. 그리고 한 달쯤 되었을 때는 읽기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가능'은 해졌다. 그리고 6주쯤 되었을 때는 읽기가 꽤 수월해져서 M의 어머님께 수업을 계속하길 원하시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읽기만 하면 좋겠어요..."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당연히! 계속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나는 읽기 수업과 일반 영어 학습을 병행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와 그 가족의 휴가가 어긋나는 바람에 두 달 반 이상을 쉬었다. 그리고 9월에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전 나는 '과연 M은 많은 것을 잊어버렸을까',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까'하는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첫 수업을 하던 나는 그 모든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M은 이전에 배웠던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속도마저 훨씬 더 빨리진 듯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 두 번째 수업에서 나는 M의 읽기에서 스피드와 자신감을 느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계신 분이라면 자녀가, 혹은 자신이, 아니면 가르치는 학생이 난독증으로 경미하거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M에게 가르쳤던 방법들을 여기에 글로나마 조금 공유해볼까 한다.
우선 난독증이 있는 경우에는 음소인식(여기서는 한국어는 두고 영어에 관해서만 설명을 하자면), 즉, big라는 단어를 보고 'b-i-g'라는 각각의 세 가지의 소리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그럼 가장 먼저 해야 되는 일은 각각의 음소의 소리를 인식시켜 주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b는 ㅂ, i는 이, g는 ㄱ처럼 말이다.
그다음엔 음소들이 합쳐져서 어떤 덩어리의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걸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형광펜으로 음절끼리 나누어 준 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즉, computer라는 단어를 보면 너무 길어 읽어내기가 정말 힘들다. 하지만 computer 라고표시를 해주면 훨씬 읽기를 수월해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한참동안 빠르게 쉽게는 읽지 못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는 나오고, 그걸 매번 음절 단위로 소리를 내는 게 정말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주저하는 게 느껴질 때마다, "아까 읽었잖아!, 기억 못 해?!, 몇 번이나 했어?, 바보야?..."이런 류의 말은 절대 절대하면 안 된다. 아이는 정말 노력하고 있고, 정말로 아까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이럴 때마다 조용히 단어의 한 음절씩만 눈에 보이도록 해주었다. 복잡하게 computer가 다 보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com 그리고 그다음에 손가락을 움직여 pu 그다음에 ter 이런 식으로 옮겨가며 보여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거의 예외 없이 읽어내었다. 법칙을 알고 있고, 그 단어를 읽을 줄 알았지만 단어가 한꺼번에 보이면 아직은 스스로 음절별로 읽지 못했던 거였다.
이 아이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아주 잘했다. 그래서 말이 안 되는 발음이 아주 많은 영어지만 85퍼센트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니 그런 발음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훈련시켰다. 가령 a, i, u 같은 경우 알파벳으로 '애이, 아이, 유'라고 읽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짧게 '애, 이, 어'라고 소리가 난다. 즉, can의 a는 '애', fin의 i는 '이', cut의 u는 '어'라고. 하지만 이런 단어들의 끝에 e를 붙이면 이 모음들은 모두 각자의 알파벳 이름('애이, 아이, 유')으로 소리가 난다. 단어의 끝에 붙은 e는 다른 모음의 소리를 바뀌게는 하지만 자신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즉, cane의 a는 '애이' (캐인), fine의 i는 '아이'(ㅍ/하인), cute의 u는 '유'(큣)로 말이다. 이런 법칙은 영어가 한국어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이 많은 법칙들을 이해하고 기억해서 적용해야 하는데 작업기억이 너무 짧은 난독증의 경우 훨씬! 더 많은 반복과 더더욱 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의 15퍼센트는 이러한 법칙에 들어맞지 않게 발음이 난다. sign에서 g소리가 안 난다거나, gh의 소리가 단어에 따라 안 나기도, 'ㄱ'로 나기도, 'ㅍ'에 가깝게 나기도 하고, was 가 '왜스'가 아니라 '워ㅈ'로 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 중 많은 단어는 그 어원을 파고 들어가면 쉬워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일이 다 어원이나 어느 나라말에서 왔는지 설명하기 힘든 경우에는 영어가 15퍼센트 정도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발음이 제각각이다라고 알려준다. 그러니 이것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너의 탓이 아니라, 영어가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매번 주눅 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was, an, the 같은 단어는 딱히 법칙이 없어서 그냥 눈으로 많이 보고 익혀야 하는 단어인데 다행히도 엄청 자주 보게 될 거라 쉽게 외워질 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미지로 생각하는 자신의 엄청난 시각형 두뇌 파워로 어쩔 수 없는 단어들은 사진을 찍어서 외우자고 한다.
읽는 게 쉬워져 갔지만 여전히 단어의 알파벳을 외워서 글로 써내는 건 힘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M에게 필기체를 가르쳤다. 인쇄체는 단어 하나하나를 쓰니 마치 스타카토 같은 역할을 하여 작업기억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 반면 필기체는 계속 글을 연속해서 쓰기 때문에 기억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다. M은 필기체를 너무 즐거워하며 연습했다. 특히 자신의 주위에 필기체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느꼈으며, 아빠나 오빠도 못하는 것을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니 혼자 아주 열심히 연습을 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은 'b'와 'd'를 엄청나게 헷갈려한다. 다른 한 친구는 'p', 'q'도 같이 헷갈려했는데 M은 'b', 와 'd'만 유독 엄청 헷갈려했다. 나는 2가지 방법을 썼는데 하나는 내가 주먹을 진 손에서 엄지만 위로 치켜세운다. 그다음 마커로 왼손엔 'b'를, 오른손에 'd'를 그린다. 그리고 그걸 이미지화해서 헷갈릴 때마다 왼손은 'b', 오른손은 'd'라고 연결시켜 기억하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외웠던 경우가 있었다. 또한 M에게 플레이도우(고무찰흙)로 알파벳을 손으로 직접 만들게 만들었다. 여러 번 만들면서 손으로 느끼면서 기억하도록 했다. M은 그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
대부분의 난독증이 없는 아이들은 불규칙 동사라고 해서 go-went-gone, break-broke-broken... 같은 표의 단어를 백여 개 정도 외운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어렵지 않게 며칠 만에 외운다. 그런데 M은 이걸 도무지 어떻게 외워야 할지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bring-brought-brought, teach-taught-taught / blow-blew-blown, fly-flew-flown / write-wrote-written, drive-drove-driven 등에서 약간의 공통적인 패턴을 발견하고 쉽게 외운다. 그런데 M에게는 그 패턴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가 있는 글을 많이 읽으면서 개별적인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 문맥 안에서 반복해서 학습하고 물었다. saw는 현재일 때 뭐라고 했더라? 그렇지, see. found의 현재형은? flew의 현재형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게 M에게는 잘 통했다. M은 그렇게 학습한 단어의 현재와 과거형은 모조리 다 기억했다. 하지만 표를 보고 맥락없이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M에게 단어의 목록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서 외우기가 정말 힘들다.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는 단어의 목록이 선형적 사고자들에게는 어떤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M에게는 아무런 규칙도 없는 정말 랜덤의 글자 뭉치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런 M이 학교 시험에서 백점을 받았던 것은 모든 단어를 사진처럼 찍어서 단기 기억으로 저장한 후, 그대로 베껴 썼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그림을 그대로 보고 그리듯이)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남김없이 모조리 그 단기 기억 속의 '사진'은 지워버렸을 것이다. 내가 종종 핸드폰으로 특정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화면을 캡쳐해서 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몇 분 후 그 정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면 바로 지워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M의 경우는 자동적으로 그 과정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M에게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밖으로 가지를 만들어 확장해 나가면서 관련된 단어들을 가르쳐주면 훨씬 더 잘 기억했다. 또한, 난독증이 없는 사람들이 동물을 분류할 때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하면서 분류를 한다면 난독증이 있는 사람은 몸이 갈색인 종류, 발톱이 뾰족한 종류, 줄무늬가 있는 종류 등등으로 시각적인 분류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의 장점도 있지만 기억의 용량이 훨씬 더 커야한다는 단점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M도 최대한 읽기를 자동화에 가까운 속도로 올리기를 원했다. 그래야 읽기가 작업기억의 공간을 다 차지하지 않을 것이니까.
M은 이제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고, 아주 빨리졌으며 유창해졌다. 그럼 이제 M은 난독증이 아닌가? 아니다. M은 영원히 난독증일 것이다. 다른 언어를 새롭게 배우면 또 다시 막대한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읽기는 되었지만 아직도 문법과 독해와 엄청난 어휘가 남아있다. 이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학과목으로써의 외국어를 공부해야만 한다면 M은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정말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