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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기에 이 힘듦을 누린다.

by 정안




잠들기 전 <내면의 그림자>의 2부를 읽다가 나를 힘들 게 하는 건 이 상황 자체가 아니라 나의 피해자적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상황이나 직장 상사 탓을 하며 '나는 피해자야'라고 생각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나는 선택한다'로 바꾼다면?


불합리한 상황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거기에 스스로 선택한 부분이 하나도 없을까?


"요즘 등산 가면 러브버그 많지 않아요?"

"저 새끼 저거 부러워서 그래."


미팅을 준비하던 도 중 상사가 '흐흐-' 웃으며 이런 농담을 할 때, '히히'하고 같이 웃어버린 건 나의 무의식적 반응이자 선택이다. 웃지 않고 침묵을 택할 수도 있었는데, 웃어버린 나 때문에 더 괴로웠다. 그게 내 선택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피하고 싶고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상황이더라도, 다른 선택도 분명히 있었다는 걸 아니까.





오늘 출근길에 '나는 선택한다'라는 의도를 세웠다. 인사이동으로 엄청난 업무가 쏟아지고 회의가 3건이나 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기로 했다. 무려 4명 분의 인수인계서를 받고, 연이은 미팅에 의도가 흐려지기도 했다. 난 못해, 내가 왜 해야 해,라는 생각을 하면 더 진이 빠졌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라고 생각하니 힘이 훨씬 덜 들었다.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렇다고 말하면 된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자.


머리가 핑 돌만큼 바쁜 하루였지만 돌아오는 지하철, 내 마음은 개운했다.


나는 살아있기에 이 힘듦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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