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기싸움을 하던 템플스테이
쉬 변하지 않는 현실을 챙기며 안간힘으로 매일을 버티다 보면 멘탈이 '바사삭' 무너지는 걸 느낀다. ‘이러다 오래 못 가지’ 싶어 허겁지겁 날 돌보려 하지만 힐링도 마음 먹기 바쁘다. 그때 나는 물가나 숲길로 나를 데리고 가서 일단 몸을 누인다. 이국적인 풍광이 가득한 여행지도 좋지만 인파로 가득한 관광지는 매번 참신한 방법으로 날 괴롭히는 상사만큼이나 피곤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템플스테이였다.
범종소리가 시끄러운 도시 소음을 지긋이 짓눌렀다. 하지만 대웅전 안의 부처는 세상 모든 이의 시름을 받아주느라 곤해서인지 입을 다문 채 일그러져 있었고, 템플 스테이 담당 스님도 왠일인지 불친절했다. 왜, 절이 절답지가 않은 건데? 왜?
"템플 스테이는 생각을 끊는 겁니다.”
“절에 오면 뭘 준비해 가야 하나요?”
“다 놔두고 오세요. 무엇을 얻어가야겠다, 무엇을 배워 가야겠다, ‘~해야 한다’라는 마음도.
길을 떠나기 전 한 통화에서 스님은 아예 생각을 끊고 오라고 했다.
“생각을 하지 마세요. 템플 스테이는 생각을 끊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 생각 없이 온 것일까.
“절에서 그런 옷을 입으면 안돼!” 주지스님의 호통이 등에 날아와 꽂힌다.
놀란 가슴을 안정시킨 뒤 사찰용 의상으로 갈아입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뒤이어 또 정수리에 꽂히는 호통. “스님을 만나면 합장부터 해야지!”
내가 무술 배우러 소림사에 온 것인가. 템플스테이학과라도 있는 것인가. 갑작스런 호통에 뜨악하기도 전에 절하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템플스테이에 대한 약간 호기심, 쉼을 따라 온 사람에게 다소 야박하다 싶게 느껴진 스님의 불호령은 그러나 나중에 듣고 보니 외지인의 경계를 풀기 위한 일종의 장난스러운 인사였다.
스님의 강렬한 호통이 오히려 입안의 혀처럼 굴던 주변 사람들이 입힌 상처보다 되려 아프지 않다.
단아한 경내에 오후 햇살이 들이치자 수많은 이들의 삼배로 반들반들해진 마룻바닥이 얼굴을 든다. 말이 적어지고 자연히 마음이 열린다. 도시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예민하게 출렁거렸던 감정이 경내에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차담(차를 앞에 두고 스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위해 다시 스님과 마주앉았다. 달큰한 맛이 남는 황차였다.
“절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나)“몸과 마음을 쉬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집게를 쥐고 뜨거운 물에 찻잔을 씻던 총무스님은 집게를 내팽개치고 손으로 다기를 잡았다.
“에이, 내 스타일대로 해야지.”
귀로는 찻물 끓이는 소리를, 코로는 차의 향기를, 눈으로는 찻잔에 비치는 차의 빛깔을, 손으로는 차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차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괴로운 문제들은 사량문 밖에 밀어두게 된다.
(나)“스님,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다면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 죽는 것은 왜인가요?”
(스님)“인간의 그릇된 욕망 때문이죠. 모든 욕망은 또한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나)“모든 인간은 욕망을 가지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은가요.”
(스님)“집착을 버리는 방법이 바로 도(道)입니다.”
(나)“집착은 어떻게 버리나요?”
(스님)“자연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늘 깨어있어야 하죠.”
“카메라 놓고 와서 흙이나 좀 일궈봐”
차담을 마치고 종일 공을 차다 잠든 아이처럼 눕자마자 쓰러졌던가. 새벽 4시, 범종소리에 머리가 맑아졌다. 안개 낀 산사의 아침은 비질하는 소리와 새 소리로 시작된다. 베게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새벽 예불엔 늦지 않았지만 술과 야근에 찌든 과거의 내 몸은 스스로 움직여지기까지 더 시간이 걸린다. 예불을 마치고 뒷마당으로 갔더니 스님이 날 부른다.
“카메라 놓고 와서 흙이나 좀 일궈봐!”
스님의 말에 호미질을 시작했다. 땀이 흐른다.
산이라면 환장을 한다는 스님이 오늘도 나뭇가지로 뒷짐을 진 채 성큼성큼 산을 오른다. 꽃말을 외우는 것이 취미였다는 스님은 어느 날 산에서 길을 헤매다가 발견한 들꽃을 보고 화두에 대한 답을 얻는다.
“그동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름알이 식으로만 알았지 가슴으로 느끼지를 못했어요.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들꽃에서 자연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요.”
길섶에 우뚝 선 나뭇잎이 살랑대고 목이 긴 갈대숲이 흔들린다. 땀으로 젖은 살갗에 바람이 닿았을 때 바람은 비로소 바람이 된다. 이제는 알겠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고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며 지레 겁먹고, 사람을 쉬 믿지 못하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어수룩하게 계속했던 나 자신과의 선문답은 그렇게 끝이 났다.
스님은 절을 떠나는 내게 따스한 글을 쥐어주며, 그런 나를 보듬어주었다. 글이 꽃이 되어 내 어깨에 앉았다.
“야점사양(野店斜陽)에 길 가다가 술을 사는 사람을 만나거든,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가 다정히 인사하고,
아예 가고 오는 세상 시름일랑 묻지 않아도 좋다.“
-<좋은 사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