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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Oct 24. 2021

인스타는 그만 하라니까

SNS는 서브 여주일 뿐  

"갑자기 키스한다고? 안 좋아한다면서 눈은 왜 감아~" 

퇴근 후, 10시 드라마가 방영되는 TV 앞에 앉아 경건하게 맥주를 따른다. 그리고 서브 남주를 비롯해 약 3명의 남자에게 대시를 받는 드라마 여주에게 빙의하며 캔맥주를 들이 붓는다. 맥주가 내 마른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면 마른 고양이 등뼈 세우듯 겨우겨우 몸이 일으켜진다. 
친구들은 '야너두'를 외치는 광고모델처럼 내게 자주 외친다. '글쓰는 직업인데 왜 셀프 브랜딩을 안하느냐' '왜 책을 안내느냐' '퇴근 후 글써! 퍼스널 브랜딩 시대에 그러면 안된다고!'
안다. 매년 다이어리를 사면 첫 번째 줄은 늘 '책 내기'다. 매년 일정한 양의 글 아카이브를 만들자고 작심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직업으로서의 글 쓰기만으로도 퇴근길 운전석에서의 내 요추는 충분히 꼬부라드는데. 

술만 마시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세 캔을 마저 비우고 나서야 책상 앞에 앉아본다. 자, 십 년 묵은 결심, 올해는 해보는 거야. 노트북 앞 의자에 앉아 경고등처럼 반짝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핼쑥한 내 얼굴만큼 하얗게 날이 선 노트북 스크린이 날 벨 듯이 노려본다. 5분여 노트북과 서로 대치 상태에 있다가 참지 못하고 핸드폰 잠금 패턴을 푼다. 그러자 내 알고리즘을 미리 알고 움직이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인스타 속 수많은 게시물과 숏츠, 릴스 영상이 나를 위무하기 시작한다.

어떤 뇌 운동이나 창작 과정도 없이 공짜로 수많은 동영상들을 눈과 귀로 흡입한다. 쾌감에 잠긴 나는 숏츠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만큼 빠른 속도로 골치 아픈 내 현생을 잊어버린다.
방울뱀의 뱃속에서 나온 인도네시아 여인과 국방부 엑스포에 출연한 보이그룹 멤버들과 쇼미더머니에 새롭게 등장한 빌런까지 보고 나니 어느덧 새벽 3시. 


아침에 눈을 뜨자 역시 일종의 루틴처럼 인스타그램을 켠다. 내 게시물에 붙은 좋아요의 수를 확인한 후 페이스북으로 넘어간다. 이제 남의 피드로 넘어가 지인들의 새 프로젝트와 운동으로 단련된 그들의 아름다운 몸을 감상한다. 좋아요를 몇 개 누른다. 좋아요를 많이 해줘야 내 피드에도 좋아요가 잘 붙는다.

그들의 잘 꾸민 방과 셰프가 만든 듯한 음식 사진을 보며 잠시 상대적 박탈감에 잠기는 것도 잠시, 침대에 누운 채 30분이 그냥 흐른다. 각자의 오프라인 일상을 이스트처럼 부풀린 SNS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질투-우울-무력감'의 강력한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유튜브로 옮겨가자. 방탄을 봐야지. 

SNS를 줄일 수 없다면 더 재미있는 걸 해보자 
혼자 설 수 있는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공항에 혼자 운전을 해서 간다거나 차와 집을 사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SNS 속 타인의 모습을 기준 삼아 내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매일매일 단기적 이벤트로 삶을 막음 하며 사는 대신 생의 과업과 관련된 장기 이벤트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SNS를 파도 타기 하다 보면 높은 타율로 '비교'와 '질투'와 '우울'의 늪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게 된다. 혹은 어떤 뇌의 활동도 필요 없이 남이 만들어놓은 영상을 그저 눈으로 훑는다. 강박적으로 순간을 환기하고, 지금 현재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위해 SNS를 자주 켠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SNS를 그만 보자는 내 결심은 왜 이다지도 가냘프게 흔들리는 것인가. 

실제 삶과 SNS의 갭 차이로 불안해질 때는 그런 나를 미워하는데 시간을 쏟는 대신 그 물결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 맞파도를 맞지 않도록 가끔 고개를 들어 방향을 확인하고 크게 심호흡도 하며 말이다. 높은 파도를 타는 이들을 바라보며 숨을 참으며 억지로 그들을 따라하는 건 감당할 수 없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서퍼처럼 어리석다. 어차피 그들의 라인과 내 라인은 다르다. 미리 만들어놓은 라인에 함께 들어가는 것은 상도에 맞지 않고, 내가 못 탈 파도는 놓아보내고 다음 파도를 기다리면 된다.  

불안이 심하게 엄습해올 땐 갖고 다니는 시집이나 동화책을 편다. 시집이 없다면 평소 마음 가는 문장에 줄을 그어놓은 페이지를 펼쳐 응급처방을 한다. 텍스트를 확언 삼아 두 세번씩 읽어본다. 심호흡을 하거나 요가를 하는 것도 괜찮다. 내겐 그것이 별안간 벼락처럼 닥쳐오는 불안을 다스리는 CPR이자 심리적인 방탄조끼다. SNS를 당장 끊어내는 게 힘들다면, 종일 SNS에 시간을 써버리는 걸 미워하기보단 다른 활동을 늘려보자.  

드라마가 끝났다. 노트북과 핸드폰도 덮었다. 나를 다 받아주는 사람들, 혹은 SNS 속 내 거짓 진열실로 도망치는 대신 현생을 살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좋은 글, 좋은 동영상, 좋은 사람을 스크랩하는 대신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자. SNS는 절대 내 삶의 여주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살아 숨쉬는 혈관과 근육을 지닌 내 몸이 있는 한 SNS 속 부캐는 내 영원한 서브니까. 
레지나 브렛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인생을 청강하지 말자.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녀의 말을 따라 촛불을 켜고, 좋은 침대 시트를 펴고, 근사한 속옷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많은 작가들이 말했듯 엉덩이의 힘을 믿어보며. 아, 오늘도 스쿼트는 빼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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