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제도에 대한 opellie의 러브레터 3편
출근을 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납니다. 조금 더 자고 싶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싶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지각을 할 겁니다. 9시라는 출근시간을 넘기면 '지각'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거고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아마도 팀장님은 지각하지 말라며 한 마디를 할 겁니다. 출근체크가 안되었다며 인사팀 담당자가 안내메일을 보냈습니다. 출근체크가 안되었으니 시간 체크해서 승인을 받으라고 합니다. 「9시 이전에 근태관리시스템이 정한 사무실을 기준으로 하는 GPS반경 안에서」라는 근태관리제도가 사전에 정한 범위였다면 승인이라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지만 근태관리제도가 정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출근시간이 지난 상태)이므로 승인이라는 절차를 추가합니다.
출근을 해서 PC메일을 확인합니다. 분기 성과 리뷰를 하고 그 결과를 인사팀으로 제출하라는 인사팀이 보낸 메일이 도착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사팀이 만들고 경영진의 승인을 득한} 성과관리제도가 사전에 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 {인사팀이 만들고 경영진의 승인을 득한} 성과관리제도가 제공하는 양식에 맞춰 내용을 작성하고 {인사팀이 만들고 경영진의 승인을 득한} 성과관리제도가 사전에 정한 마감일 이내에 관련 결과물을 제출해야 합니다. 마감일을 넘기자 인사팀으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제출기한이 넘어갔다고 언제까지 제출되지 않으면 이러이러한 다소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사팀에서 연락을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었고 이에 따라 신고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구성원에 대해 분리조치를 시행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고자는 '괴롭힘을 당했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구성원은 '억울하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이죠. 양 당사자의 이야기와 관련된 동료들의 이야기, 구체적인 정황 등을 확인합니다. 인사팀에서 판단을 하고 사건을 종료했지만 어느 일방 당사자가 이슈를 제기합니다. 공적기관에서는 해당 사안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공적기관에서는 회사가 해당 과정을 진행하면서 절차를 지키지 않았음을 같이 지적합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역사로 들어서는 길목에 개찰구가 있고 우리는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찍고 나서야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찰구 어딘가에는 요금을 내지 않고 지하철을 탈 경우 운임의 몇 배에 해당하는 부가운임을 징수할 수 있다고 안내문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서두르다가 교통카드 인식 전에 몸이 개찰구를 향합니다. 개찰구가 막히면서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제도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매 순간 다양한 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고 그들을 활용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고, 또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 살펴본 우리들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달라진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제가 부정적인 걸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그 반대의 상황들이 좀 더 많이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Without institutions, social and organizational life would be cha otic, all social interactions would be subject to recurrent renegotiation, and large-scale social organizations requiring significant coordina tion across actors would become impossible. (Ocasio, 2023)
William Ocasio는 그의 글에서
「만일 제도가 없다면 사회/조직생활은 혼돈의 상태가 될 것이다, 모든 사회적 상호 작용은 반복적인 재협상의 대상이 될 것이고, 행위자들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조정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Ocasio, 2023)」라고 말을 합니다. 이어서 Ocasio는 이러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로서 제도를 '청사진 blueprint'으로 표현합니다.
Institutions are essential blueprints
for organizations, organizing, and social life, more generally
Institutional blueprints provide a default for organizations and organizing, a default that can be modified through the prism of individual knowledge and experience (Heugens & Lander, 2009)
본 글에서 '청사진'은 우리가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설계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청사진으로서 제도는 구성원 개개인의 조직 내에서의 지식, 경험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서로가 제로섬게임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조정하고, 나아가 제도가 추구하는 방향, 퍼즐로 보면 전체 퍼즐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각 구성원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상호작용을 명확히 하는 기준으로서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청사진으로서 제도의 특성은 일견 조직과 구성원을 통제하는 역할로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제도는 기본적으로 통제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 등의 페널티를 만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제도의 속성이 있습니다. 제도는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점, 그리고 도구로서 제도는 그 자체로서 완전무결한(flawless)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청사진으로서 제도는 공동체가 하나로 뭉쳐 나아갈 수 있도록 그 방향과 기준을 제공하는 청사진/가이드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저는 인사제도를 이야기하면서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것
제도가 목적의 자리에 있으면 그 제도는 통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반면 제도가 청사진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면 제도는 조직과 구성원이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실제로 제도가 zero상태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기업이라는 조직이 개방체계(open system)라는 점 말이죠.
영리 기업, 비영리기업 등에 상관없이 모든 '공동체'에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인사담당자로서 우리들이 일하는 다양한 기업에도 인사제도는 필요합니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처음으로 인사제도를 도입했다면 이를 통해 기업은 거의 대부분 성과가 높아지는 경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건 인사제도를 잘 설계하고 운영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아무것도 없었던 상황에서 무언가가 생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혼동할 경우 기업은 자칫 제도를 통제의 목적으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이는 제도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제도는 완벽해서 잘못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만일 그 제도에 대한 이의가 제기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잘못하거나 잘 몰라서 하는 것이다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제도가 완벽하니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그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이 만든 제도가 개선된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그 제도를 만든 것도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제도의 완성은 그 제도를 이용하는 구성원분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제도는 그 제도를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용자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Reference.
Ocasio, W. (2023). "Institutions and Their Social Construction:A Cross-Level Perspective. "
Organization Theory 4(3): 26317877231194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