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의대는 못 갈 것 같은데..
어영부영 3월이 되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학비는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신청을 했더니 꽤 많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학비 부담을 덜게 된 건 굉장히 기쁜 일이었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국가장학금은 가구 소득과 재산에 따라 다른 금액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도 처음 알았다. 부모님은 1년에 최대 570만 원의 국가장학금을 받게 되니 학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와 1년에 최대 570만 원이면 반값도 안 되는 금액만 내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혜택이 많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최대 570만 원의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한 조건을 찾아봤다. 월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한다는데 계산식은 복잡해서 넘기고 간단히 정리되어 있는 표를 찾았다. 총 10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있었고, 구간에 따라 장학금이 달라지는 방식인가 보다.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고 마이페이지 메뉴로 들어갔다. 적혀있는 우리 집 학자금 지원구간은 3구간이었다. 계산법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월 4,268,441원 이하의 소득 조건에 해당했다. 잘 사는 친구들에 비하면 학원을 적게 다니기는 했어도 대략 영어, 수학학원비가 얼마인 지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 한 분은 파트타임으로 일하시긴 했어도 두 분 다 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 집이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된 동생의 학원비도 고려했을 때 매달 적자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수능 날 조금만 더 잘했다면 인서울 대학교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반수 생각에 대학 생활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다. 부모님에게 반수 학원비 이야기를 꺼내보려 했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에게 6개월 더 지원을 받아서 얼마나 더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의대는 무리겠지? 수능 다음날부터 재수를 시작한 친구에게 인스타그램 DM을 보냈다.
"야 재수학원 가서 성적 좀 올랐냐?"
"수능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데 안 오르면 큰일 나지" 학원이 늦게 끝나는지 밤에 답장이 왔다.
"학원 계속 다니면 어디까지 지원 가능함?"
"지금 페이스로 계속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수능날 찍은 문제 다 맞으면 지방 의대까지 어떻게 넣어볼 순 있을 거 같은데 모르겠다."
"나도 반수 고민하고 있는데 될 거 같아?"
"할 거면 빨리 시작하는 게 낫지. 나 모의고사 준비해야 된다 또 연락하자." 친구의 메시지로 대화는 금방 끝났다.
고민 끝에 부모님 몰래 반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대학 수업은 적당히 듣고 학점도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정도로만 관리한 뒤 나머지 시간은 수능 공부에 집중하는 계획이다. 그 계획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망한 거다. 이대로라면 국가장학금이 위험했다. 결국 남은 학기에는 중간고사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과제도 신경 쓰고 기말고사 공부도 밤새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가장학금 학점 커트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니 바로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학기 중에 못한 공부량을 채우기 위해 스터디카페 정액권을 끊을까 고민에 빠졌다. 방학기간에 경쟁자를 따라잡지 못하면 기회가 없을까 봐 초초한 마음도 생겼다. 결제를 고민하다 짐을 싸서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방학기간이라 그런지 도서관에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왠지 스터디카페보다 집중이 잘 안 되는 느낌이다. 괜히 목표하는 수능 등급과 쓸데없는 상상만 자꾸 노트에 끄적이게 된다.
'수능 반수한다고 의대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꼭 해야 될까?'
'삼수 사수까지 하면 의대 갈 수 있을까?'
'서울대, 카이스트 애들도 의대 가려고 재수한다는데 나는 이번생에는 가망 없는 건 아닐까?'
'의대만 가면 내 인생은 활짝 피는 걸까?'
'의대 학비가 비싸다던데 우리 집 형편으로 가능할까?'
'형편은 무슨, 지금 모의고사 등급을 좀 봐라.'
'지금부터 한다고 결과가 잘 나올까? 친구한테 반수 한다고 이야기하지 말 걸.'
그렇게 시간만 흘러 어느덧 수능날이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