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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Oct 19. 2024

2-13. 가을비는 낭만복싱을 싣고~

미친 몸무게라 복싱 시작합니다:2

복싱일지:24.10.18. 금


가을비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가을비는 가슴에
낭만복싱을
심어줍니다.


드디어 금요일 오전이다. 오늘만 복싱 운동을 하면 주말이 온다. 언제나 금요일에 하는 복싱 운동은 기분이 좋다. 왜? 주말에 운동을 공식적으로 쉴 수 있으니깐. 몸은 찌뿌둥 하지만 기쁜 좋게 복싱 가방을 들고 체육관으로 출발했다. 5분 거리에 있는 복싱 체육관에 도착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운동을 끝낸 분이 관장님께 인사를 하고 가신다. 벌써 운동을 끝내고 가시다니. 엄청 부지런하시다. 체육관에 들어오니 이상하게 오늘은 운동 중인 분이 없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아니면 금요일 오전이라서일까. 뭐 줄넘기를 하다 보면 한 분, 한 분 운동하러 오시겠지. 누구라도 오셔야 하는데.



운동화로 갈아 신고 줄넘기를 챙겨 왔다. 체육관 창문 쪽에서 거울을 보면서 연습을 시작했다. 어젯밤에 운동을 하고 12시간 정도 지났다. 전날 운동으로 근육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날에는 스트레칭을 좀 더 꼼꼼히 해야 한다. 줄넘기도 여유롭게 하면 안 된다. 3분 3세트를 최대한 알차게 시용해야 한다. 발에 줄넘기가 걸리더라도 꾸물꾸물거리면 안 된다. 바로 줄넘기를 정리하고 휙휙 돌려야 한다. 물론 세트가 끝나고 30초 쉬는 시간도 알차게 써야 한다. 다리나 어깨 스트레칭을 꼭 해줘야 한다. 특히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리고 쌀쌀한 날에는 더더욱. 그리고 운동하는 동안 창문을 보면 안 된다. 건물 사이로 내리는 가을비를 보면 진짜로 안 된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가을 비바람을 맞으면 진짜 진짜 안 된다. 절. 대.로. 창문을 본 순간…


이 창문으로 가을비멍 했어요.


그대로 가을비가 주는 쓸쓸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에 이끌려 ‘비멍’을 시작하게 된다. 줄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비멍’. 원투 펀치 연습을 하다가 또 ‘비멍’. 30초 휴식 시간에 자동 ‘비멍’. 그러다 결국 창문에 몸을 기대고 ‘비멍’.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다가 ‘비멍’. 어느새 열린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가을비바람을 즐기기 시작한다. ‘아,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 ‘가을비가 오니 좋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가네.’ ‘가을 소나기인가. 어휴, 많이도 내리네.’ 복싱 체육관에 운동하고 온 건지. 아니면 비멍을 하러 온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다 결국 “어, 뭐 하십니까? 운동하셔야죠.” 비멍의 세계를 깨뜨리는 말을 듣게 된다. 하하하. 비가 와서요. 이제 연습하려고요. 관장님.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복싱 체육관에서 가을비를 보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가을비를 담기 전에는 나에게 복싱 체육관은 ‘열정 복싱’의 상징이었다. 마지막으로 몸무게를 감량할 수 있는 희망이자 기회의 장소였다. 의지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그래, 그랬다. 하지만 가을비를 본 순간. ‘열정 복싱’이 ‘낭만 복싱‘으로 바뀌었다. 죽어라 욕심껏 목표만을 채워가는 복싱 체육관이 아닌. 펀치에 낭만을 담아내는. 스텝이 곧 낭만이 되는. 글러브가 샌드백에 부딪치는 소리에 낭만이 따라오는. 아! 이런 낭만 복싱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을비 때문에 말이다.


저의 낭만복싱은요.. 보라색 복싱글러브에요. 사고 싶다~!!(사진:픽사베이)


정말이지 전혀 생각을 못해봤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복싱 체육관에서 툭하고 튀어나오다니. 최근 낭만이라는 단어를 내 삶 안에 담고 있었던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를 말하는 참 낭만적인 단어인 낭만을 나는 꽤 놓치고 살고 있었다. 낭만만을 쫓아가는 삶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낭만이 없는 삶은 깨지기 쉽다. 굳어 버리고 만다. 보여주기 인생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운치 있는 삶을 놓치고 있다면 이건 분명 잘 못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 몸무게 때문에 시작한 복싱인데. 갑자기 낭만을 찾게 되다니. 신기한 건 낭만이라는 단어를 복싱 앞에 붙이니깐.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링 위 미트 연습은 어제보다 잘했다. 스텝 리듬감이 여유로웠고, 펀치도 가볍고 간결해졌다. 관장님도 인정해 주셨다. ‘비멍’을 했으니깐. 당연히 어제 보다 잘할 수밖에 없다고. 역시, 비멍만 한 것이 없나 보다. 가끔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면 그 앞에 낭만이라는 단어를 붙여봐야겠다. 여유가 생겨 풀리지 않던 것이 스르르 풀릴 수도 있을 테니까. 오늘 복싱 일지 끝.



현실은 블랙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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