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서 연습하는 그녀. 그녀의 복싱 스텝을 봤다. 기본 원투 스텝 연습을 볼 때까진 아무렇지 않았다. 흠흠, 나도 기본 원투 스텝을 하고 있으니깐. 그런데 어느 순간 관장님의 미트 연습 스피드가 점점 올라가더니 복싱 스텝도 덩달아 같이 빨라졌다. 나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저 빠름.. 빠름.. 빠름. 빨라지는 스텝을 보는 내 눈은 점점 커져갔다. 와, 저걸 따라간다고. 감탄을 하고 있는 내 눈앞에서 그녀는 원투 스텝을 하고, 바로 뒷발에 힘을 주면서 순간적으로 앞으로 나가며 또 원투 스텝을 했다. 아주 가볍고 빠르게. 사뿐히.
사실은 순간적으로 앞으로 스텝을 이동하면서 원투 펀치 공격을 하는 연습은 나 역시 하고 있다. 하고는 있는데… 그녀의 스텝 느낌과 나의 스텝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내 스텝은 무겁고 느리고 꾸물거린다. 아니, 솔직하게 5번 중에 3번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한 번 상상해 보시길. 글러브를 낀 두 손은 앞으로 가면서 펀치를 날리려 하는데, 같은 몸에 존재하는 내 두 발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함께 앞으로 움직이지 않는 손과 발. 그 사이에 낀 내 몸. 어정쩡하게 앞으로 쏠려 이상한 자세를 만들고 있는 내 바디. 아, 민망하여라.
그녀의 스텝은 빠름 빠름~. 나는 느림 느림~. 그래도 나름 빠름을 따라가기 위해. 다시 한번 힘껏 뒷발에 힘을 주면서 앞으로 이동하며 원투 스텝을 해본다. 다시 해본다. 또 해본다. 으윽! 꼬였다. 이제는 뒷발에 힘주는 것도 잘 안 된다. 네, 단전에서 올라오는 열받음의 괴성이 나올 것 같지요. ‘으~으~윽.’ 나왔습니다. 그때 구원의 손길처럼 관장님의 미트가 앞으로 쭉 뻗어 나왔다. 거리를 두라는 신호다. 거리를 두면서 호흡과 리듬감을 조절하라는 것이다. 릴랙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흥분하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어깨에 힘을 풀고 가드를 올리고 다시 기본 스텝을 하면서 미트를 바라본다.
거리두기. 리듬을 찾기위해 필요해요. (사진:픽사베이)
그 뒤로 링 위 미트 연습은 계속되었다. 그녀의 스텝처럼 가볍고 빠르게는 아니지만 뭐 비슷하게 한 듯하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체력도 급하게 방전되어 갔고 숨이 거칠어져 갔다. 내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기억이 선명하게 날 수가 없다. 그래도 문득문득 관장님의 칭찬이 들렸으니. 그걸로 됐다. 스텝이 좀 느려도 그것으로 됐다. 펀치와 다른 스텝에서 칭찬을 들었으니깐. 위안이 된다. 잘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지. 안 되면 내일, 혹은 또 다른 내일… 아무튼 내일 다시 연습을 하면 되는 거니깐. 그녀의 복싱 스텝은 빠름 빠름이니깐. 나는 링 아래에서 그 빠름을 보며 즐기면 되는 것이고. 나의 복싱 스텝은 느림 느림이니깐. 링 아래에서 느림이 빠름이 될 수 있게 계속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내일은 오늘 부족했던 스텝을 연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