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우씨, 오늘 팀장이 열받게 했잖아. ‘팍’ 승인을 계속 미루잖아. ‘퍽’ 에잇! 열받아. ‘파박’
l : 으윽. 말투 정말 짜증 나. ‘팍’ 그래, 이젠 나도 모르겠다. ‘퍽’ 오늘 정말 기분 별로야. ‘파박’
그녀가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 앞에 섰다. 평소보다 늦게 복싱 체육관에 온 그녀는 오늘 팀장 때문에 퇴근이 늦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이 답답하다며 글러브를 낀 손을 샌드백에 '퍽'하고 박았다. “우씨, 오늘 팀장이 열받게 했잖아.” '팍.' “승인을 계속 미루잖아.” '퍽.' “에잇! 열받아.” '파박.' 그녀의 열받음이 샌드백 때리는 소리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퍽퍽팍팍. 팍팍퍽퍽. 파박파박. “휴우-. 이제 속이 좀 편하네.” 샌드백 치기를 끝낸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다 편해 보였다.
"어떻게 스트레스가 좀 풀려요?"
"어,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
스트레스 받을 때 샌드백이 필요해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확실히 열받을 때 샌드백을 치면 개운해지겠네. 나중에 나도 스트레스받을 때 샌드백을 쳐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아주 가볍게 했었다. 열받고 스트레스받는 일이야 언제나 존재하니깐. 그런데 의외로 “우이씨. 오늘은 샌드백 좀 쳐야 해!” 이런 상황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었다. 아니다, 이 정도로 뇌정지가 오고, 불기둥이 쭉쭉 뻗을 정도까지의 일은 없었다. 적어도 복싱 2개월 차를 꽉 채울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은? 휴우, 말해 뭐 할까요? 속이 속이… 내 속이… 속이 아닙니다.
그 열받는 스토리가 털어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 그냥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한 말이다. 절대 일부러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 아니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사과는 했었다. 그럼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그저 무릎이 불편해서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혹시 같이 운동을 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했습니다. 네, 매번 무릎이 불편한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운동 얘기를 꺼낸 게 잘못이었습니다. 이 깜박하는 기억력. 근데 왜 내 기분이 나빠지는 걸까. 아직까지도… 그건 바로.
말투. 그 말투 때문이다. 한숨을 푸욱 쉬면서 오만가지 나쁜 감정이 다 들어간 그 말투. “내가 언제까지 이 말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무릎이 아파서 ~” 뒷부분은 쓰고 있으면 쓰다가 열받을 듯싶어 컷 했습니다. 밥 먹다가 맞은 뒷 통수. 감정을 상하게 했다니. 일단 사과부터 했는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투 때문에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여기서 끝이면 그래도 좋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미 나빠진 감정은 계속 커져갔다. 하지만 수습은 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속은 시끄럽고 내 몸에 염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염증이 철철 넘쳐서 몸이 아파 죽겠는데.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쁜 감정을 버리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려 염증 수치를 내릴 방법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글러브를 잡는다. AND....
시끄러운 속을 품고 글러브를 꼈다. 링 위에서 미트 연습을 하기 전까지 샌드백 연습을 해야 한다. 샌드백? 그래 샌드백이 있지. 그녀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던 샌드백이 내 앞에 있었다. 일주일 동안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 어디다 풀지도 못하고 혼자서만 껴안고 있던 그 스트레스. 샌드백아 좀 받아줄래? 이젠 너밖에 없어. 울기도 싫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시콜콜 속을 보이기도 싫어. 더는 내 감정이 더러워지는 것도 싫어. 그저 샌드백 너로 인해 가슴에 쌓인 답답함이 좀 뚫렸으면 좋겠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야.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깨끗하게 해결할 힘도 사실은 없어. 나는 샌드백 네가. 내 주먹을 받아줬으면 좋겠어. 글러브를 낀 주먹을 꽉 쥐고. 샌드백을 퍽퍽팍팍 치는 그 시간만이라도 내 답답한 감정이 좀 얇아지고 잠시라도 뚫렸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휴우. 이런 절절한 고백을 샌드백에게 하다니.
두 주먹을 꽉 지고 샌드백 앞에 섰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았다. 원투원투원투원투. 원투원투원투원투. 훅훅훅훅. 훅훅훅훅. 어퍼어퍼어퍼어퍼. 어퍼어퍼어퍼어퍼. 휴유-. 숨차다. 다시 원투원투원투원투. 그녀처럼 속상했던 것을 밖으로 뱉어내지는 못했다. 아직 말까지 하는 단계까지는 못 갔다. 그래도 속으로만 끙끙거리던 단계에서 한 발 나갔으니. 이것도 괜찮은 발전이다. 샌드백이 받아줘서 땀이 좀 났다. 거친 숨이 점점 더 올라왔다. 내 뇌 속에 원투 펀치만 가득했다. 샌드백을 치고 있으니 저절로 "에고, 힘들어." "윽, 물 마셔야겠다. " "샌드백 소리 너무 개운한데." "휴우, 살겠다."는 말이 가득했다. 그리고 샌드백을 안았다. 두 팔을 벌리고 꽈악. 음, 이 편안함. 안정감. 의지가 된다. 당분간 샌드백을 자주 찾을 듯싶은데. 샌드백아, 그때도 내 주먹을 좀 받아줘. 두 팔 벌리고 꽉 안아줄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