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일주일 체류해놓고 쓰는 쿠바 이야기
사실 나는 처음 쿠바를 여행지 후보에 올려놓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쿠바? 쿠바를 여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첫마디는 위험하지 않을까? 였다. 나에게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한, 여행하기엔 무서운 나라였으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내가 방문한 나라 중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나라였다. 작은 마음 소심녀인 내가 새벽에도 시내 골목을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중남미 여행 중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나라
일단 쿠바는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가 아니다.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는 총든 강도를 만날 확률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보다 높기 때문에 훨씬 위험하게 느껴진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로 관광업이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이며 경찰이나 군인들은 핵심 수입원인 관광업에 타격을 입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권력, 그러니까 경찰이나 군인의 파워가 막강하기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꽤 강력하다 주워들었다.
'정말'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쿠바를 가기 전에는 쿠바가 어떤 나라인지 정말 궁금했다.
쿠바는 뭔가 달랐다. 다른 나라들보다 여행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고, 가이드북도 론리플래닛뿐.
(3월, 서점에 가봤더니 작년 내가 여행을 준비했을 때보다 쿠바 여행서적이 월등히 많아졌더라!)
쿠바를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를 많이 읽어보면 볼수록 하나 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으니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라 자체가, 그 나라의 문화 자체가 가장 흥미로운 곳이 바로 쿠바였다.
(나의 경우에 보통은 나라가 흥미롭다기보다 어떤 특정 장소, 예를 들어 이과수 폭포라던지 우유니 소금사막이라던지.. 장소가 흥미로워서 그 나라를 방문했다)
쿠바에 부는 개방의 바람, 그래서 당장 가기로 했다.
2015년 봄, 쿠바와 미국의 국교 정상화가 54년 만에 문을 열었다는 기사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흔히 쿠바를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들 한다. 자본주의에 흐름을 따르지 않은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 그게 쿠바의 큰 매력이라고들 하는데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는 쿠바에 자본주의의 기운을 불어넣을 거라고들 예측해 더 개방되기 전에 다녀오라고들 했다. 늦기 전에 쿠바에 가보고 싶었다.
쿠바에는 두 가지 화폐가 있다.
쿠바가 다른 여행지들과 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화폐다. 쿠바에는 화폐 단위가 두 가지이다. 현지인들이 쓰는 쎄유페(CUP) 혹은 모네다(MND)와 주로 관광객들이 쓰는 쿡 또는 쎄유쎄(CUC)라고 부르는 단위이다. 화폐가 두 가지라고? 처음엔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동남아에서도 여행자 거리에서 현지 화폐와 US달러가 함께 쓰이는 것처럼 생각하면 좀 간단해진다.
쿡과 모네다는 1:24 정도로 차이가 큰 편이다. 보통 1 CUC은 1 USD로 계산하면 쉬운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CUC를 주로 받는다. 물론 가진 돈이 MND 밖에 없다고 하면 환율에 맞춰 계산해준다. 도시 위주의 짧은 여행을 하는 관광객이라면 MND가 없어도 여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쿡 식당과 모네다 식당을 비교하면 차이가 엄청나다. 내가 여행할 당시 25~30 CUP로 피자를 2인이 먹을 수 있었는데 쿡으로 환전해 생각해보면 1쿡이다. 쿡을 받는 식당에서는 1쿡이면 맥주 한잔도 사 먹기 어렵다. 쿡을 주로 받는 쿡 식당에선 쿠바인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큰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게 맞다.
쿠바에서는 ATM을 찾기가 어렵다
쿠바는 자본주의의 흐름이 멈춘 곳이다. 보통 해외여행을 할 때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국제현금카드들을 이용해 ATM에서 해당 나라의 화폐를 인출해 쓸 수 있지만 쿠바에서는 ATM을 찾기가 어렵다. 어렵게 ATM을 찾더라도 VISA 카드 외에는 화폐 인출이 안된다.
VISA 카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미국의 금융회사의 카드인 경우 사용이 불가하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 지사를 가지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시티은행(CITI BANK) 카드는 사용이 불가하다.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이다.
쿠바를 여행하려면 유로나 캐나다달러를 들고 가라
보통의 나라는 미국 달러, 그러니까 US달러를 가지고 가면 해당 나라의 화폐로 환전이 가능한데 쿠바에서는 또다시 등장하는 정치적 관계를 사유로 미국 달러가 인정을 받지 못한다. 환전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US달러 환율도 좋지 않을뿐더러 유로(EUR)나 캐나다달러(CAD)보다 10%나 수수료를 더 뗀다.
내가 여행했을 당시에는 유로 환율을 가장 잘 쳐주었다.
쿠바에서는 인터넷을 할 수 없다?
모바일 단말기 및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제 여행에서 휴대단말기를 이용하는 일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지도 앱으로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구글링이나 네이버를 통해 현지 맛집을 찾아간다. 심지어 국내외 할 것 없이 어떤 여행지라도 현지인에게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더라도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쿠바에선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10여 년 전,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처럼 여행해야 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쿠바의 인터넷은 정해진 장소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 개인이 인터넷을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기에 정해진 장소에서 선불카드를 통해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한 광장이나 호텔 주위에는 노트북 혹은 모바일 단말기를 들고 쪼그려 앉아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쿠바에 머무는 동안 딱 한번 30분간의 인터넷 타임을 이용해보았는데 카톡 메시지는 들어오더라도 메시지 전송이 안될 정도로 인터넷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숙소 예약은 어떻게 해?
보통 어떤 여행지를 갈 때 숙박 예약 사이트를 통해 숙소 검색을 하는 건 이제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그게 안된다.
쿠바의 숙소는 크게 호텔과 까사(Casa)가 있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까사를 이용한다. 까사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다. 까사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민박집인 거다. 거주하는 집의 방을 여행자에게 내어준다. 호텔의 경우 호텔 사이트에서 온라인 예약을 할 수 있지만 까사의 경우 인터넷이 안되기에 온라인 예약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인터넷으로 예약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까사를 예약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있고, 까사 주인들은 대체로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어 이메일로 먼저 숙박을 예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접속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룸 컨디션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미리 예약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가도 되냐고? 보통 쿠바의 첫 도시로 들어가는 수도 아바나의 경우 수많은 건물들이 한 집 걸러 한 집이 까사였기 때문에 현지에서 방을 구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 물론 룸 컨디션이 훌륭하고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까사의 경우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센스가 필요하지만.
아바나에서 머물렀던 까사의 사진(위). 밤 늦은 시간,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엄청난 발품을 팔아 구했는데 이 집에 가기까지 모르긴 몰라도 20개정도의 까사에 들렀을거다.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쿠바인들이 도와줬다.
훌륭한 시설과 친절한 집주인 할머니가 계셨던 곳. 다만 영어는 전혀 안통했다.
뜨리니나드에서 묵었던 까사(위). 스페인 식민 시절의 영향으로 스페인풍의 건물이 많다고 한다. 아바나에서 만난 한국인의 추천으로 가게된 곳이었다. (위에 언급된 명함 속 집이다)
항공권 검색 사이트에서 쿠바행 항공권을 찾을 수가 없다
쿠바는 일본과 같은 섬나라이기에 육로로 입국이 불가하다. 당연히 쿠바를 가려면 항공권을 먼저 검색해야 하는데 세계적인 항공권 검색 사이트인 Kayak.com이나 Expedia에서 항공권 검색이 안된다. 이 역시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카약 닷컴이나 익스피디아는 미국 회사이기 쿠바로 들어가는 항공권이 검색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 Skyscanner 사이트를 통해 항공권을 검색하였다.
쿠바를 여행하는 미국인을 보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쿠바는 미국 여권을 가진 사람은 입국할 수 없는 나라였다. 뭐 정말? 이라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우리에겐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나라도 북한을 여행한 사람보다 일본을 여행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관계 개선으로 미국인의 쿠바 입국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 내가 만난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캐나다 혹은 유럽인들이었다.
쿠바에는 공산품이 귀하다
쿠바는 아직 타국과의 교역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공산품이 귀한 편이다.
돈이 있으면 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샴푸나 치약, 비누, 세제는 물론 비닐도 귀한 편이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어도 종이컵이나 비닐 대신 종이에 싸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탁을 맡기면 세탁물에서 세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 세계적인 체인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매장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가게에 가더라도 신발이나 옷의 종류는 물론 수량도 많지 않다.
현지에서 조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여행용품을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아바나에 있는 Puma 매장. 쿠바에만 판다는 쿠바에디션들이 있는데 진열장에 남아있는 물건이 별로 없다. 옆의 아디다스 매장도 같은 상황. 옷이 예뻐 사고 싶었지만 내 사이즈가 없었다. 언제 다시 입고될지는..
쿠바에선 흥정이 가능하다.
내가 여행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 중 깎는 것, 그러니까 흥정이 가장 잘 되었던 곳이 쿠바였다. 여행을 준비할 때 중남미는 교통도, 숙소도, 시장에서도 흥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으나 실제 여행을 할 때는 생각보다 흥정이 잘 안되더라.
하지만 쿠바는 흥정이 가능했다. 민박 형태의 까사도 흥정만 잘하면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곳을 구할 수 있으며 투어 상품이나 시외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쿠바에서 택시 또한 중요한 교통수단인데 흥정만 잘한다면 번듯한 투어상품보다 편히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짧은 기간을 여행했기에 내가 본 쿠바는 아주 단편적일 거다. 여러 가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쿠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데, 이 때문에 쿠바는 여행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곳이거나 빨리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되는 것 같다.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 질문은 여행을 다녀온 뒤, 아니 여행 중에도 꽤 많이 받은 질문이다.
여행지는 여행지마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나라 자체가 주는 매력이 가장 강한 곳은 바로 쿠바였다.
멈춰있던 쿠바의 시간에 변화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내가 만났던 쿠바인들은 정말 흥이 많고 친절했고 굉장히 낙천적이었다. 다른 중남미의 나라에서보다 동양인을 보기 힘든 곳인 쿠바에서 나는 누가 봐도 여행자다. 지나가는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한 달 바싹 배운 짧은 스페인어였지만 나의 스페인어에 웃어주고 칭찬해주던 밝은 쿠바인들이 쿠바를 매력 있는 곳으로 채워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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