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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古都의 가을

신라 경주

by goeunpa

경상북도 경주는 옛 신라新羅의 도읍입니다. 신라가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천도를 하지 않은 덕분에 신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도성으로 기능하였던 천년고도千年古都죠. 도시 전체가 문화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나는 곳곳 신라의 옛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어, 2000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1)

왼쪽부터) 경주 남산 일원, 경주 월성, 경주 대릉원 일원 (자료 국가유산청)
경주 황룡사지, 경주 명활성 (자료 국가유산청)

신라는 삼국시대 성립 이전 한반도 중부 이남에 존재했던 정치집단인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통칭 삼한三韓) 중 진한에서 출발했습니다. 마한은 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일대에 54개의 소국小國으로 구성되었으며, 지금의 경상도 일대에는 진한과 변한이 각각 12개 소국으로 존재했어요. 진한은 지금의 대구·경주 지역에 분포했고, 진한 12국의 맹주로 경주 일대에 위치했던 사로국斯盧國이 신라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경주평야를 보면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인공적인 성을 쌓지 않고도 방어에 용이한 천연 성곽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로국의 지리적 이점은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고, 내부적으로는 구성원 간의 결속을 더욱 단단히 다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쳐 사로국이 진한의 맹주가 되는 데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로국은 6개의 촌락, 즉 6촌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이를 사로6촌斯盧六村이라 하며, 이칭으로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합니다.*2) 사로6촌의 성격과 위치 비정 등에 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나 이들이 사로국의 근간을 이루고, 훗날 신라가 발전함에 따라 신라 중앙정치조직의 6부部로 개편되었다고 보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경주표암慶州瓢巖. 사로6촌 중 알천양산촌의 시조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 전합니다. (자료 국가유산청)

3세기 중후반부터 본격화된 사로국의 영토 팽창과 함께 경주 일대는 나라의 중심지로 기능하게 되었고, 지배층이 거주하던 이 지역은 신라의 왕경王京이 되었습니다. 신라의 발전과 함께 수도로서 경주의 발전도 거듭되었고, 특히 통일 이후에는 극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전성기 경주는 17만 8936호가 사는 대도시로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다고 전합니다. 또한 금을 입힌 주택이라는 뜻의 금입택金入宅 39채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귀족들의 호화로운 삶을 짐작게 합니다.


현재도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신라 때의 유물·유적이 밀집된 것만 보더라도 그 시대의 영화를 능히 짐작할 수 있어요. 경주는 땅만 파면 문화유산이라 개발이 힘들다는 얘기를 할 정도죠.


신라는 7세기에 한반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에도 수도를 여전히 경주로 했습니다. 이러한 수도의 편재성은 통일 이후 오히려 새로운 도약에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경주慶州’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에 처음 불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망국의 수도였지만 고려 삼경三京 중 하나인 동경東京으로 불리며 여전히 큰 지방도시의 모습을 유지했어요. 그러나 몽골 침입기에 큰 피해를 입으면서 황룡사 9층 목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어 도시가 황폐해지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경주 황룡사지黃龍寺,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황룡사 찰주본기는 통일신라 경문왕 때 황룡사의 구층목탑 중수 기록이 담긴 실물자료입니다. (자료 국가유산청)

조선에서도 경주는 4개의 속현을 거느린 영남 지역의 큰 고을로 여전히 그 면모를 유지했으나, 주변 대도시(부산, 대구 등)의 부상과 문화유산으로 인해 개발 제한을 받는 등의 이유로 점차 경상북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남게 되었고, 이제는 제주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관광도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경주 대릉원 일원 전경 (자료 국가유산청)

경주는 제가 사랑하는 도시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발길 닿는 곳곳 고대인들의 무덤과 흔적이 숨 쉬는 지척에서 덤덤히 살아가는 경주 시민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나 역시 얼마간이라도 이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몇 년 전 아주 오래간만에 경주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가을 햇볕 아래 한참을 대릉원 벤치에 앉아 고분을 바라봤어요.*3) 완벽히 관광지화되어 버린 경주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고분은 여전히 고요해 보였습니다. 혹 경주에 갈 계획을 세운다면 가을의 경주를 추천합니다. 천년고도의 가을은 썩 멋이 있습니다.




*1)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다섯 개 구역으로, 다양한 불교 유적이 분포하는 남산 지구, 신라 궁궐이 있었던 월성 지구, 신라 시대의 고분군인 대릉원 지구,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 지구, 신라 때의 산성이 위치한 산성 지구 등입니다. 1995년 등재된 '석굴암과 불국사'는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지 않아요.

*2) 『삼국사기三國史記』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조에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 등 6촌의 명칭이 전합니다.

*3) 사적 제512호 대릉원은 신라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 황남대총·천마총·미추왕릉 등 고분 23기가 모여 있습니다. 대릉원이란 명칭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大陵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에서 따온 것이에요. 사적 정식 명칭은 ‘경주 대릉원 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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