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서 피 맛 표정 평안

목표

by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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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목은 타들어 간다. 입안에는 비릿한 쇳덩이 맛이 돈다. 폐는 한계를 외치고, 다리는 멈추자고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굴은 평온하다. 누가 보면 산책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싶을 만큼, 표정엔 힘이 없다. 아니, 힘을 빼는 법을 익혔다는 게 더 맞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달릴 때마다 매일 이를 악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고, 미간이 찌푸려지고,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힘을 줄수록 더 빨리 무너진다는 걸 몸이 먼저 배웠다. 내려놓아야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몸은 이미 한계를 알고 있고, 얼굴은 그 한계와 오래 친해진 사람처럼 담담했다. 오늘로 매일 10km 달리기 201일째다.


이제는 특별한 날이 아니다. 그냥 달리는 날이다. 비가 와도 달리는 날, 전날 늦게 자도 달리는 날, 몸이 무거워도 일단 신발을 신는 날인 셈이다. 201번째의 아침이 그렇게 지나갔다. 처음엔 100일이 목표였다. 100일을 넘겼을 때, 나는 슬며시 웃으며 다시 달렸다. 목표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닿으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닿는 순간 다음이 보인다. 100일이 지나자 200일이 보였고, 200일이 지나자 내일이 보였다. 이제는 숫자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200일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매일 아침 나를 문밖으로 밀어낸다. 그런데 오늘 달리다 문득 알아챘다. ‘목에는 피 맛, 표정은 평안’ 이 말 안에 목표가 숨어 있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딱 맞다. 목표란 피 맛이 나도록 달리는 일이고, 동시에 그 고통을 평안한 얼굴로 견디는 일이다. 기를 쓰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악을 쓰는 게 아니라, 버티다 보니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목표는 어쩌면 도달해야 할 지점이 아니라, 견디는 방식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목표를 거창하게 세우지 않는다. 오늘 하루, 신발 끈을 묶고 문을 나서는 것이 그게 전부다. 누군가는 “매일 달리면 질리지 않아?”라고 묻는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질린다. 나가기 싫은 날도 있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가볍게 챙겨 입고 05:40에 나갔다. 입구를 나서는 순간, 거센 바람과 함께 날씨가 너무 추웠다. 고민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껴입고 밖에 나가지 않고 06:00에 맞춰 헬스장으로 향했다. 달리기라고 해서 반드시 밖에서만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굳이 새벽부터 비몽사몽 한 채로 거센 바람을 맞을 필요는 없다. 몸이 조금 풀린 오전, 오후에는 어느 정도 바람을 맞으며 달려도 되지만 무리할 필요가 없다. 이불속에서 핑계를 찾는 날도 있다. 그런데도 나가는 건,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다. 달리고 난 뒤의 내가 좋아서다. 땀에 젖은 채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오늘도 해냈다는 그 작은 확인이 하루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201번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해낸 결과,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었다. 달리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어제의 실수, 오늘의 걱정, 내일의 불안 모두를 말이다. 발이 땅을 구를 때마다 머릿속이 조금씩 비워진다. 10km가 끝날 때쯤이면, 방금 전까지 크게 느껴지던 것들이 조금 작아져 있다. 달리기가 답을 주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를 견딜 만한 크기로 줄여준다. 목이 쓰리다. 피 맛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표정은 평안하다. 이 평안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내일도 달릴 것이다. 202일째가 될 것이다. 목에는 또 피 맛이 돌겠지만 표정 또한 평안할 것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오늘의 내가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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