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쳤다. 분명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튼 후 머리를 말리며 시원한 냉수 한잔 들이킬 때만 해도 하루 피로가 가신 듯했고 나름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비몽사몽 무심결에 전기세 걱정을 했는지, 아니면 정말 한기를 느꼈는지 취침 예약 전에 에어컨을 꺼 버렸나 보다. 새벽녘 아직 창문 너머로 낮은 어둠이 깔려 있는데 답답함과 다소 불쾌함에 잠이 깼다. 후텁지근하다. 열대야가 맞는구나. 다시 잠들기는 틀렸구나 싶어 아예 거실로 나왔고, 깬 김에 빈속에 커피를 부어 잠을 쫓았다. 책이라도 읽어야겠다. 이 여름 저녁부터 아침까지 반복되는 평범한 나의 일상이다.
나는 교사다. 박봉이라 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업이고, 사람을 ‘가르친다’는 어휘에 담긴 무게감 때문인지 다들 어느 정도의 존경과 부러움을 표하는 직업이다. 각자 학교마다 어느 조직에나 있는 내부 체계에 따른 고충은 있을 것이고 이는 매일 반복되는 과도한 업무와 함께 여느 직장과 다르지 않게 매일 부당하다 느끼는 점이 있어도 또 출근 준비를 하며 반 아이들을 하나둘 떠올려 보고 멋진 수업을 고민하는 게 일상인 난 교사다.
아침 출근 시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마다 참 희한하게 큰 숨을 쉬게 된다. 이는 내 나름의 다짐의 큰 숨이다. 언덕배기에 위치하여 사방 탁 트인 교정엔 막힘없는 바람이 한 자락 몸을 감싼다. 기분 좋은 바람이다. 역시나 오늘도 이른 출근에 가장 먼저 교무실 불을 켜고 커피포트 스위치를 켠다. 무엇이든 가장 먼저 한다는 것은 나름 뿌듯하고 기분 좋은 작은 성취감을 준다. 그래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출근 시간이지만 늘 일찍 오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내 자리를 세정 티슈로 닦고 노트북 전원을 켜고, 업무일지와 시간표를 확인한다.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안부 문자를 쭉 돌린 후, 수업 준비를 한다. 방학에 출근이라니.
우리 학교는 다들 교사의 특혜라며 부러워하는 여름 방학이 없다. 처음에 입사했을 당시는 제대로 몰랐고, 제대로 알고 난 후는 다소 억울했다. 마치 남들 다 먹는 맛난 빵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본 고등학교에 딸린 병설학교인 어머니 학교는 연간 3 학기제로 바쁘게 학사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러니 방학 없이 수업이 계속 이어진다. 늦깎이 공부에 대한 열망만으로 입학 후 2년을 바삐 공부하여 졸업장을 수여 받는 학제이다. 각반 어머니 학생들의 나이도 다양하여 이르면 40대부터 80대 고령까지 있다.
아직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처지라 일을 놓을 수 없어 출근 후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등교하는 어머니, 차마 가족들에게 학교 다니고 싶다는 늦은 희망을 말하지 못하여 나들이마냥 나서는 행색으로 오시는 어머니, 다들 사연 한가득 없는 학생이 없다. 계단조차 퇴행성 관절로 느릿느릿 또는 게걸음으로 난간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우나 표정들만큼은 그리 밝을 수 없다. 건네는 인사에 햇살이 가득하다.
어느새 어머니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 공부한 지도 5년이 훌쩍 지나 졸업시킨 어머니 학생도 많고, 당당하게 대학까지 진학한 어머니들도 있다. 어머니들과의 수업 관련 에피소드가 하나둘씩 쌓이면서 방학을 반납한 나의 삶에 대한 불만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청소년 학생들과의 수업과는 다른 그만의 매력과 보람을 주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10대들을 바르게 지도하며 교육하여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이며 백년지대계인지는 나의 평생 과제일 것이다. 갈수록 더 난제인 탓에 힘이 부치지만 가야할 길이다.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타학교 교사들도 학급수가 매년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수업 참여율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들은 지도 꽤 되었다. 그래도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으면 다행이고 팬데믹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을 할 수밖에 없을 때는 우선 학생들 수업 참여가 관건이었다. 일상 회복으로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제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긴 하루 일과를 소화해 내기가 버겁다. 그렇게 산만해지고 늘어진 아이들과 함께 일과를 보내다 보면 모 광고 속 “그래도 니가 선생인데?”라는 말을 듣는 그처럼, 나도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방역 규칙들과 그를 증명하는 서류들, 학사 일정에 따라 해야만 하는 활동들과 교수-학습량은 넘쳐난다. 여기서 학생 인권과 교권은 때론 상충하기도 하여 옛날 같지 않게 교사와 학생들을 소원하게 하기도 한다.
과연 ‘가르치는’ 그 노력만큼의 대우는 받고 있는지는 회의가 들 것이나, 그러함에도 수업 전문성과 교수 방법 개발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교사가 있을까. 늘 상상할 것이다. 본인의 수업에 두 눈 반짝이며 경청하며 예의 바르게 대답하고, 한 마디라도 놓칠까 필기하고, 수업 후 한 반이 다 같이 감사 인사 우렁차게 하며 박수까지 쳐 준다면, 현 공교육 교실에서는 기분 좋은 상상에 불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매일 이런 대접을 받는 복 받은 교사이다. 공교육의 현장에서 받은 상처를 다시 교육 현장에서 치유 받는다. 생각할수록 결자해지의 지혜이다.
“학교 오니까 이런 것도 배우네요. 요즘 사는 게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참 뿌듯하다. 교사라는 충만한 사명감이 행복하게 하는 순간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공기를 타고 우리를 감쌀 즈음, 온 나무들이 제각각 뽐낼 수 있는 가장 이쁜 색으로 갈아입는 가을이 깊어질 즈음, 우리 학교는 교내 백일장을 실시한다.
당일 시제를 발표한 후 주어진 시간 안에 제공하는 원고지를 작성한다. 어머니들은 몇십 년 만의 원고지 사용이라 실시 며칠 전부터 미리 사전 학습을 한다. 당연한 긴장을 하지만 기대의 눈빛들도 많다. 결과물의 질적인 차이는 있을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표현의 욕구를 지니고 있음을 매년 확인해온 바라 교사로선 상당히 기대되는 활동이다. 다양한 사연들을 품은 어머니 학교 학생들의 삶을 담아낸 이야기들은 진솔함을 넘어 가슴 아리는 감동을 준다. 긴 역사의 터널 속을 통과해 온 그네들은 모두가 겪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을 것이나 먹빛 어둠 속에서 견뎌야 하는 삶은 여인들에게 더 가혹했다. 이렇게나 아픔이 응축된 삶이 있을까 싶다가도 조금만 둘러보면 모두의 역사 속 우리 할머니 이야기이고 우리 어머니 이야기이고 형제자매 이야기이다. 다행 그 터널을 건너온 여인들이 늦게나마 이렇게 교실에서 만나 서로의 시린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벗들이 돼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분명 자식을 차별했던 부모에 대해 원망을 쏟을 수도 있을 사연이나 인고의 삶을 지나며 미움도 녹아 버렸는지 그래도 ‘어머니, 보고싶습니다.’라며 그리움을 담은 글, 뒤늦게나마 공부하도록 격려해 준 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글, 병마와 싸우고 있으나 이렇게 공부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글들은 어느 전문가들의 글보다 내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딸이라 교육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던 서글픈 어린 시절 남몰래 흘렸던 눈물의 보상이자 용기 있는 새 출발을 한 그녀들의 존경받는 교사임이 뿌듯하다. 학습 내용을 익히는 것보다는 교실이라는 장소에 앉아 그리도 소원하던 공부를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행복한 학생들이다. 그러니 배움의 태도가 얼마나 진지하고 바르겠는가. 그런 소원을 성취해준 교사를 얼마나 존중하겠는가. 늘 감사하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배운 내용이야 학교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잊어버린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시나 표정들은 그리 밝을 수가 없다. 가방을 메고 삼삼오오 재잘대며 하교하는 그녀들은 영락없는 17세 소녀들이다. 그 늙은 소녀들의 박수받는 교사로서 하루하루 같이 행복해지고 싶다. 그녀들의 행복 단초가 되어 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