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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co Oct 04. 2020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_동경에서

3.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집을 찾는 일을 까다로웠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집처럼 일본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고 말끔하지만은 않았다. 우리의 금액에 맞춘 집들은, 비교적 신축이면 아기자기하다 못해 너무 작았고, 조금 넓다 싶으면 내 나이를 훌쩍 넘은 오래된 맨션이었다. 맞다. 난 분명 레트로 한 것을 좋아한다. 일부러 레트로 한 가게도 찾아간다. '그럼, 오래된 맨션은 왜 거부하는가? 모순이지 않은가?' 싶지만 살려는 집의 레트로함은 그런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 그것이었다. 하루에 2,3개씩의 집을 보면서 점점 현실을 알게 되고 막연한 불안함에 일단 위클리 하우스라도 찾아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몇 가지 소개를 하자면 범위가 너무 넓으니 일단 살고 싶은 동네를 정했는데, 생각보단 우리가 가진돈으로는 원하는 물건을 찾기 어려운 동네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서울에서도 서초구 같은 곳에 집을 구하려 했었으니 말이다. 도쿄의 월세는 한국의 월세보다 비싸다. 그것을 감안하여 예산을 잡았는데도 우리가 잡은 예산으로서는 터무늬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부동산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집들은 무엇인가는 우리가 찾던 방향과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예를 들면 1) 롯폰기에서 봤던 집이 제일 충격적이었는데 언덕을 조금 올라간 곳에 외관부터 그럴싸한 맨션이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니 라운지가 있다. 어지간이 고급빌라라는 이야기다. 응? 이런 집이? 내심 기대하며 현관 자동문부터 현관키로 열고 들어가는 드라마 같은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엘리베이터로 가지 않는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1층에도 집이 있다. 앞에도 말했지만 여기는 언덕에 위치한 빌라이다. 1층이라니 1층이라니, 그래 뭐 내부는 하며 현관을 열고 들어간다. 천장도 꽤 높고 마감도 적당히 고급스럽고 깨끗했다. 근데 약간 어두운 것 같다. 불안하다.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여니. 딴! 하고 시멘트 벽이 마주한다. 그렇다. 1층이고 언덕이다. 언덕이기 때문에 1층에 생긴 공간, 한국이라면 반지하 같은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다. 시멘트 벽은 이 건물의 담장이였고 어마한 높이로 발코니 앞에 가로막혀 있었다. 허탈했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봐야 할 집들의 전초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의 조건을 이야기해보자면, 시부야를 중심으로 동남쪽과 아래쪽 동네 혹은 요요기, 철근콘크리트(지진에 대비해), 2층 이상, 화장실-욕실 별도(일본은 흔한 구조이나 오래된 집이나 작은집들에 가끔은 아닌 곳도 있다), 가능하면 대면식 주방, 50m2 이상(일본에서 제 일흔한 40m2-50m2 사이의 집도 물론 보았지만 조금 작은 감이 들었기 때문), 10년 이내 혹은 오래된 맨션이라면 최근 리모델링한 곳, 그 외적으로도 주변에 공원이 있고 상가 형성이 적당히 되어있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막히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연이 보이면 좋겠다 등등 지금 생각하면 우리 예산으로 위의 조건은 어마어마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기도 한 조건이지 않은가?


부동산은 그런 조건에 맞는 집을 열심히 찾아주었다. 

우리의 일과는 10시 무렵 호텔의 프런트에서 부동산 직원을 만나 출력된 매물들을 보며, 보고 싶은 집을 3,4개 정도로 추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예상대로 프린트된 조건만 봐도 맞지 않는 물건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끌고 다니지 않고 최대한 조건에 맞는 집들만 보여주는 건 좋았다. 오히려 다른 집들은 뭐가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부동산은 딱 우리 조건의 집들만 보여 주었다. 처음엔 여기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조정하는 가운데 문제들이 있었었다. 


첫째 날, 나카메구로를 희망했던 덕에 나카메구로와 다이칸야마에 있는 집을 보여 주었다. 2) 나카메구로의 집은 비교적 괜찮았다. 상가랑은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5층짜리 맨션에 2층, 외부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넓진 않지만 무난한 홀, 택배함도 갖추어져 있는 맨션이었다. 하지만 야칭이 약간 오버된다. 역시 그렇다. 3) 그다음 집의 위치는 다이칸야마 정확히 말하자면 오쿠 다이칸야마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가는 츠타야가 있는 다이칸 야마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괜찮아 보이는 가게들도 제법 있고 나쁘지 않아 보였다. 큰길에서 한길 들어가니 일본에서는 조금 넓은 단지형 맨션, 겉으로 봐도 세월의 흔적이 뿜뿜 느껴지는 레트로한 맨션이었다.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관리도 잘 돼있었다. 자전거 주차장과 드물게 맨션 부지에 주차공간도 있었다. 약간의 기대를 안고 3층으로 올라간 우리는 내부로 들어갔다. 와! 생각보다 더 레트로 한 내부, 그중에서도 주방은 압권이었다. 근대 보기 드문 레트로 한 주방. 나쁘지 않았다. 거실 창도 넓고 거실면으로 주차장이 있는 덕에 건물 간격이 넓어 빛도 잘 들고, 창밖으로 나무도 보인다. 하지만 욕실도 화장실도 다 너무 레트로 했다. 안방의 수납장도 너무나 레트로 한 일본식 벽장이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건물은 생각보다 더 오래된 느낌이었고, 나쁘진 않았으나 세월이 느껴짐이 감당이 안됐던 우리는 일단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둘째 날, 요요기 주변의 매물들을 보여 주었다. 요요기는 살기 좋아 보인다. 시부야도 가깝고 그 덕에 관광객들에게 인기도 있는 만큼 상가 형성이 잘되었다. 요요기 공원이라는 큰 공원도 있다. 그만큼 주거공간으로도 인기가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요요기도 월세가 싸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과 나의 일터와 생활권에서 요요기는 교통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건 나중의 이야기고, 집을 구할 당시에는 요요기는 굉장히 매력이 있었다. 전 총리도 살고 있는 동네라고 할 정도니...

4) 도로에 위치해 있는 집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빌라의 메인 입구도 홀도 무척 작았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있었다. 5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생각보다 공간이 너무 작았다. 40m2집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던 것이다. 5) 다음 집은 역에서 조금 떨어진다. 대신 신축 맨션, 맨션의 현관도 넓고 라운지며 체육시설까지 갖춰져 있으니 비교적 좋은 맨션이었다. 역에서 떨어지고 외진 것이 단점인 맨션. 내부도 그럭저럭 좋았다 45m2 하지만 아직 작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래도 그중 나아 보였는데, 이 집에서 우리는 '일본은 월세의 반은 라운지에 할애되는구나, 라운지 부분을 집으로 좀 주면 안 될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 밖에도 큰 도로에 위치한, 빨간 외벽에 오래되고 그로테스크한 건물과 발코니도 작고 집도 작은 하지만 햇볕은 잘 들던 집도 보았다. 우리는 기대만큼의 실망감을 안고 그날을 마무리했다.


셋째 날,

몇 번의 집들을 보고 난 후 '음 역시 집은 우리가 찾는 게 나으려나' 생각이 들었던 우리는 무단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집을 구 할 때처럼 직접 동네로 가보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카메구로는 시작해 유텐지와 그 아래쪽을 하루 종일 돌며 부동산을 가보았으나 이상하게 모두 같은 물건들 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날 우리가 한 행동이 효율성은 떨어지고, 몸은 지치며 동네 구경만은 실컷 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쓸모없음을 깨달은 우리는 무덥고 습하던 여름에 지쳐 호텔에 묶는 내내 호텔 로비에서 'suumo'와 'at home'라는 일본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부동산 사이트 위주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찾은 물건들 중 부동산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물건을 보여주기로 했다.

 6) 아오야마에 있던 한 맨션은 천장이 높고 51m 2 인덕에 발코니는 작았으나 집은 시원해 보였다. 게다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맨션의 입구도 제법 괜찮았었다. 그런고로, 반쯤 자포자기했던 우리는 대로변에 있어 시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그 맨션에 처음으로 모시코미를 넣었다. 모시코미 신청은 우리가 두 번째였고, 한발 늦은덕에 신청이 되지 않았음이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란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엔 절망적이었다. 7) 그날 부동산에서 보여준 맨션 하나는 요요기 근처에 있던 것이었는데 제법 고급스러운 디자이너 맨션이었으며 꼭대기층의 복층형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이 집은 월세가 저렴했는데 이는 얼마 전 아래층에서 치정사건이 일어나 누군가 죽어서였다고 했다. 부동산 사람은 괜찮겠냐고 물어봤지만 사실 그런 일은 아무렇지 않았다. 집만 괜찮고 가격만 저렴하다면, 하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 보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세련되었지만 복층으로 나누어진 덕에 거실이 거의 없는 형태가 되어 둘이 살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 일본의 집 구하기에 특징 중 하나가 매물들이 되도록 자세하고 솔직하게 소개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물건들 대부분은 모든 부동산에 공개가 되어있다. 가끔 건설사나 부동산 관리하의 전부 공개되지 않은 집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모두 공유되어있어 이 부동산 저 부동산 찾아다니면서 집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고 물건이라고 하여 사건이 있었던 물건은 세월이 흘러도 공개가 되어있어 월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2주라는 시간 동안 집은 구하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일본 맨션, 집을 구할 때 가구 배치를 위해했던 대략적 캐드 작업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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