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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블랙홀

by 궤적소년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고 배웠다. 나는 그 말을 읽으며 내 우울을 떠올렸다.


우울이 오면 모든 게 무거워진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누군가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도.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우주 전체를 떠받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모든 동작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장 무서운 건, 그 안에서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힘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밖에 나가서 운동이라도 해".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블랙홀 안에서는 빛이 직진하지 않는다는 걸.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중력이 모든 것을 안쪽으로 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제자리에서 맴돈다. 아니, 제자리조차 지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의 중심에는 특이점이라는 게 있다. 모든 법칙이 무너지는 점. 나는 우울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 특이점을 본 적이 있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순간. 시간도 멈추고, 나라는 존재조차 의심스러워지는 곳.


거기서는 울지도, 화내지도 못한다. 그저 텅 빈 공간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간다.

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모르겠다. 하루였을 수도, 한 달이었을 수도, 어쩌면 더 길었을 수도 있다. 블랙홀 안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밖에서는 하루가 지나갔지만, 안에서는 영원처럼 느껴진다.

약을 먹었다. 상담을 받았다. 그래도 우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빨려 들어갔다. 블랙홀의 중력은 그렇게 강하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이 안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걸까.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니, 밖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블랙홀도 언젠가는 사라진다고 한다. 아주 천천히, 아주 미세하게. 내 우울도 그랬다. 어느 날 문득,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여전히 무거운 날들이 있다. 다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두려운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그 안에 완전히 갇혀 있지는 않다.


나는 가끔 블랙홀의 가장자리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그곳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울은 사라진 게 아니다. 단지 조금 멀어졌을 뿐이다. 언제든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블랙홀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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