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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빛이 도달하는 시간

by 궤적소년

"미안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상대에게 닿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소리는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 약 340미터를 1초에 이동한다. 그러니 내 "미안해"는 1초도 안 돼서 상대의 귀에 도달한다. 소리로는.


감정으로는 훨씬 오래 걸린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과했다. 상대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소리로는 용서했다. 감정으로는 아직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때로는 몇 달이 지나서야 진짜 용서가 도달한다. 내 사과가 상대의 마음에 닿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해"도 그랬다.

나는 자주 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녁에 잠들기 전에. 상대도 "나도 사랑해"라고 답했다. 소리는 즉시 교환됐다. 감정은 아니었다.


어떤 날의 "사랑해"는 즉시 도달했다. 상대의 눈빛이 반짝였고, 표정이 밝아졌다. 내 사랑이 온전히 닿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날의 "사랑해"는 한참 걸렸다. 상대는 웃었지만, 그 웃음이 어딘가 공허했다. 내 사랑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감정에는 지연이 있다.

내가 느낀 감정과 상대가 받은 감정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빛의 속도로도 메울 수 없는 거리.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지만, 상대는 과거의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지만, 나는 과거의 상대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해는 그렇게 생긴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는데, 상대는 진심으로 받지 못한다. 상대는 진심으로 전했는데, 나는 진심으로 받지 못한다. 감정이 도달하는 시간이 다르니까. 우리는 같은 순간을 살지만, 다른 시간대를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내 감정이 상대에게 닿을 때까지. 상대의 감정이 내게 닿을 때까지. 소리처럼 즉시 도달하기를 기대하지 말고, 빛처럼 시간이 걸린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는 감정이 도달하지 못한다. 너무 멀어서, 혹은 너무 희미해서. 우주를 가로지르던 빛이 다른 별에 가로막혀 사라지듯, 감정도 도중에 사라질 수 있다. 그게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감정은 빛이다. 출발했다고 해서 반드시 도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출발은 할 수 있다. 나는 내 감정을 보낸다. 사랑을, 미안함을, 고마움을. 그것이 상대에게 닿을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계속 빛을 보낼 뿐이다. 언젠가,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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