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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지평선 너머

by 궤적소년

블랙홀에는 사건의 지평선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관측할 수 없으니까.


인식에도 지평선이 있다.

나는 내가 아는 것만 안다. 내가 본 것만 본다. 내가 경험한 것만 경험한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인식할 수 없으니까.


누군가와 대화하다 보면 깨닫는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지만,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같은 사건을 겪지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오해는 그렇게 생긴다.


나는 내 지평선 안에서 세상을 본다. 상대는 그들의 지평선 안에서 세상을 본다. 우리의 지평선이 겹치는 부분에서만 소통이 가능하다. 겹치지 않는 부분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해?" "이해가 안 돼." "내 입장에서는 그게 말이 안 돼."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상대의 생각이 내 지평선 너머에 있을 때. 내가 관측할 수 없는 곳에 있을 때.

어떤 날, 나는 깨달았다. 내 지평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을.


상대가 화를 낼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정도 일로 왜 그래?" 내 지평선 안에서는 작은 일이었으니까. 상대의 지평선 안에서는 큰 일이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상대가 슬퍼할 때, 나는 위로하지 못했다. "별일 아니야." 내 지평선 안에서는 별일이 아니었으니까. 상대의 지평선 안에서는 큰 상실이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내 지평선을 넓히려고 노력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경험했다. 지평선이 조금 넓어졌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 내 지평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너머를 볼 수 없다.

어떤 사람의 고통은 내 지평선 밖에 있다. 어떤 사람의 기쁨도 내 지평선 밖에 있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공감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우주에는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빨라서, 영원히 관측할 수 없는 곳.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평선 너머.

인식도 그렇다. 내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내 경험의 한계, 내 언어의 한계, 내 상상력의 한계. 그 너머는 알 수 없다.


그게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지평선 안에서 산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알 수 있다. 내 지평선 너머에도 세상이 있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겸손해지려 한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려 한다.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을 때, "틀렸어"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라고 말하려 한다.


우리는 각자의 지평선 안에서 산다. 완전히 같은 지평선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겹칠 수는 있다. 대화를 통해, 공감을 통해, 노력을 통해.


나는 내 지평선을 계속 넓히려 한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이해하려 한다. 그래도 여전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타인을 존중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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