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에 부쳐
여기 한 인물이 있다. 평생을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다. 계속 실패한다. 그 경험에서 통찰을 얻는다. 이를 자양분으로 프랑스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거대한 기획 <인간희극>을 쓴다. 그 이름은 오노레 드 발자크이다.
발자크의 삶을 소설처럼 읽는다. 7백 페이지에 이르는 상당한 두께의 <발자크 평전>. ‘츠바이크’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츠바이크 역시 평생을 글쓰기라는 분투 속에서 살아온 자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만큼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요즘, 평전을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누구의 삶을 7백 페이지나 걸쳐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을까.
발자크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시절 <잃어버린 환상>을 통해서였다. 당시 번역본을 구하기 어려워 열악한 환경(=형편없는 불어 실력)에서 불어 원문을 (고대 문자 탐독하듯) 읽어야 했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었다. 워낙 만만치 않은 분량이기도 했고 나의 지구력이 바닥을 드러낸 탓도 있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발자크'라는 작가가 깊게 각인된 시간이었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예리한 통찰력, 이를 글로 옮기려는 집요한 의지를 단번에 감지할 수 있는 경험이었달까. 츠바이크의 표현대로라면 “역사상 단 한 번뿐인 발자크식의 통각(統覺) 능력”(40p)이었다.
한동안 발자크,라는 이름을 잊고 살다가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책 <잃어버린 환상>과 조우했다. 발자크 평전을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준 셈이다. <발자크 평전>의 2장 제목은 책의 부제가 되어도 좋았을 것이다. ‘삶으로 쓰는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발자크는 일에 대한 과도한 정열과 엄청난 생산력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자기 소모로 유명한 작가이다. 자신을 나폴레옹에 견주며 “그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라고 다짐하기까지 했던 이 엄청난 야심가의 인생은 그 자체가 소설이다. (츠바이크가 그의 평전들 중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가장 공을 들인 것이 <발자크 평전>이라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를 추동했던 힘이 문학적 열망에만 있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늘 빚에 쫓겨 글을 썼다.) 어쨌든 ‘쓰는 작업’은 그의 평생의 일이요 노동이자 존재 방식이었다.
일을 하면서 나는 고통을 잊어요. 일은 나의 구원입니다. (256p)
노동, 끝없는 노동은 마지막 순간까지 발자크의 진짜 존재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노동을 사랑했다. 아니, 이런 노동을 하는 자신을 사랑했다. (261p)
그렇게 “일을 하다가 진짜 삶을 소홀히 할까 두려워” 하면서도 그는 계속 일했다. “반자연적인 자기 소모가 분명 자기 파괴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삶을 내 두뇌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요”라고 그의 영원한 벗 쥘마 카로에게 고백하면서도 말이다.
# 노동과 허영 - 이상주의자의 상상력 & 현실주의자의 리얼리즘
무엇이 그토록 발자크를 쉼 없이 일하도록 만들었는가? 순수한 ‘문학적 열정’만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 ‘위대한 작가 발자크’뿐만 아니라 ‘세속적 인간 발자크’의 면모까지 이해할 때 발자크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과도한 노동을 사랑하는 발자크의 천재적 재능은 물론 그의 대책 없는 허영심과 속물근성까지 흥미롭게 묘파하고 있다.
그는 소시민 태생이었으나 평생 귀족을 동경했고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을 ‘오노레 드 발자크’라고 슬쩍 고침으로써 귀족 행세를 했다. 분에 넘치는 낭비와 사치로 빈축을 샀고, 지나친 야심과 망상으로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했으며, 늘 빚에 쫓기는 자신을 구원해줄 여자(귀족 신분의 돈 많은 과부에다 자기를 이해해줄 이상적인 여성)를 찾아 헤맸다. 세속적인 허영심으로 경제적 파국과 절망에 시달려 자살까지 생각했던 이 어린애 같은 작가는 (다행스럽게도) 그 속에서 놀라운 영감을 피워 올린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의지력과 편집증적인 노동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남긴다. 이것만이 그가 20년도 채 안 되어서 <인간희극>을 만들어낸 기적을 설명해줄 수 있다.
노동자들과 노동을 하고 고리대금업자들과 싸우고 절망적인 경계심을 품고서 물품 공급자들과 거래를 해봄으로써 그는 자신의 동료들인 빅토르 위고, 라마르틴, 알프레드 드 뮈세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인 맥락과 모순들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이들 다른 작가들은 낭만적인 것, 고귀한 것, 위대한 것만을 추구하였던 반면, 발자크는 인간 속에 감추어진 작지만 잔인한 것, 천박하게 추악한 것, 감추어진 폭력을 보았고 묘사할 수가 있었다.
“젊은 이상주의자의 상상력”에 “현실주의자의 명료함”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가 뒷날 젊은 시절에 그토록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그를 통해서 직업의 문맥을 분명하게 알아보았기 때문에 자기 시대를 실질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노라고 말한 것은 분명 옳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위대한 대표작들, <잃어버린 환상>, <마법 가죽>, <루이 랑베르>, <세자르 비로토> 등 시민 세계와 중개소와 사업의 위대한 서사시들은 이 사업 시대에 체험된 실망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작품들이다. 그의 상상력이 현실과 녹아들고 뒤섞이게 된 이제야 발자크 소설의 저 놀라운 실제, 곧 리얼리즘과 상상력의 가장 완벽한 혼합체가 생겨날 수 있게 된다. (154p)
오로지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었던 어린 발자크는 위대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잠시 접은 채 경제적 자유를 위하여 닥치는 대로 글을 쓴다. 가명 뒤에 숨어서, 밀려드는 온갖 주문에 맞추어 싸구려 소설 공장을 가동시킨다. 소위 OEM 방식이다. 그렇게 세월과 재능을 낭비하다가 문득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그 악명 높은 (끝없이 수정되는) 공포의 교정쇄와 함께.
최초의 진정한 소설인 <마법 가죽>에서 발자크는 (…) 장래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상류층과 하류층, 빈곤과 부, 결핍과 낭비, 천재와 시민계급, 고독의 파리와 살롱의 파리, 돈의 힘과 그 무능력을 뒤섞어서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횡단면으로서의 소설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178p)
“위대한 관찰자”와 “날카로운 비판자”로서의 발자크가 자신만의 직업을 찾고 거대한 야망을 품는 순간이다.
10년 동안이나 헛되이 더듬고 찾은 다음 발자크는 이제 자신만의 직업을 찾아낸 것이다. 자기 시대의 역사가, 심리학자, 생리학자, 화가이며 의사가 되고, 파리, 프랑스, 세상이라는 이 거대한 유기체의 판관이며 작가가 된 것이다. 그가 맨 처음 찾아낸 것이 무서울 정도의 노동력이었다면 두 번째 찾아낸 것은 이 힘을 이용할 목적이다. 이 목적을 가지고 발자크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폭발적인 힘을 안고 자신 안에 뭉쳐 있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느꼈을 뿐이다. (179P)
“언제나 자기의 삶을 ‘소설 같은 삶(vie romance)’으로 만드는”(298p) 그는 깊은 상처를 받을 만한 연애 사건도 파국이 아닌 에피소드로 만든다. 끝을 알 수 없는 낙천주의와 대책 없는 공상으로 끊임없이 사건을 벌이면서도 그로 인해 다시 고통받는다. 고통 속에서도 영감은 다시 피어오르고 <인간희극>이라는 거대한 구상 속에서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은 계속된다.
외적인 상황이 절망적일 때 그의 속에 있는 예술가는 가장 강해지고, 외적인 곤궁은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집중력의 강화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최고의 영감들은 내게는 언제나 가장 깊은 두려움과 곤궁의 순간에 나타나곤 합니다.” (282p)
‘얼굴도 모르는 여인’(뒷날 그의 아내가 되는 한스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고 마지막까지 정열을 바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한 애정소설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순진함’ 때문이 아니라 ‘삶으로 쓰는 소설’을 만들어내고, 정열을 ‘꾸며내려는’ 확고한 의지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의 감정은 언제나 그의 의지에 고분고분 따랐다. 그에게 있어서 의지력은 나머지 다른 힘들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첫째가는 근원적 힘이었다. (342p)
어릴 때 꿈꾸었던 ‘나의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책’ 혹은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고, 생계에 관한 생각을 얹을 만큼 머리가 굵어진 10대 후반엔 출판사를 운영하거나 잡지사의 편집장이 되고 싶었다. 방송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를 생각해보기도 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상담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꼭 글이 아니어도 사진이나 영상 등 이미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인생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했으나, 뒤돌아보니 상당 부분 내가 해온 일은 글(글밥)이나 이미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 일도 해보고, 기업체에서 사보와 동영상 제작도 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고 사진을 찍었으며 기사 원고를 썼다. 홍보 마케팅 일을 할 때에는 허구한 날 날밤을 새우며 ‘소비 진작’ 전략을 짜고, ‘상업적 글’과 ‘상업적 비주얼’ 만들기에 골몰했다. 나날이 소진되어 가고 있다 느끼면서도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무언가를 읽거나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기’를 통해서. 처음엔 가끔, 다음엔 자주, 나중엔 시도 때도 없이. 그것이 꼭 직업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것, 박완서 선생이 말한 것처럼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리라는 것 등의 생각들이 차츰 힘을 얻어갔다.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일기든, 서평이든, 문화 잡평 혹은 기타 잡문이든 형식과 내용은 상관없었다. 그 안에 ‘나의 말’을 담고 있다면, ‘나 자신’을 읽어볼 요량으로 질박한 그릇 하나 마련하는 것이라면, 그릇의 형태나 크기, 색깔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읽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를 읽고 ‘나’를 쓰는 것. 나로부터 확장된 ‘세계’를 쓰는 것. 그것을 ‘직업’이 아닌 나만의 ‘일’로 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5년 넘도록 생계로서의 '직업'에만 매진해왔으니, 이제는 그 '밥벌이'(생계로서의 직업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을 알지 못한다)를 잠시 접고 나만의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멈춤'과 '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긴 휴직과 함께 해외생활이 시작되었고, 나는 다시 ‘읽는 일’에 집중했다. 10대와 20대에 그랬던 것처럼. 쓰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쓰고 있어도 쓰고 싶은 허기는 계속되었으니까.
최근 열흘 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생동하는 바깥 세계가 책보다 우선이었다. 모처럼 좋은 날씨가 이어진 탓도 있겠지만 내 안 어디선가 바깥으로 내모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 속에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현실 세계 속의 나이어야 하므로.
읽어야 한다는 혹은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 책 속으로 스며들고 싶을 땐 그렇게 하고, 책 바깥에서 내 삶의 감각을 굴리고 싶을 땐 또 그렇게 하고 싶다. 타인의 글이 필요할 때와 자신만의 글이 필요할 때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싶다.
롤랑 바르트가 말년에 몰두한 글쓰기 방식인 ‘현재의 소설’을 생각한다. 지금-여기를 살며 동시에 기록하는 방식이 어쩌면 내 삶의 소설적 진실일지도 모른다. 츠바이크의 필력을 빌어 현재성을 획득한 발자크의 삶은 그 자체가 ‘삶으로 쓴 소설’로 남았다.
그런 점에서 '삶'은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 ‘일’이 곧 ‘현재의 소설’이 될 수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작가(소설가)가 되는 셈이고.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 몸으로 쓰는 단 하나의 소설일 테니 말이다.
(2016.4)
나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며 하인이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열로 디오게네스의 삶을 살았다.
- 오노레 드 발자크, <마법 가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