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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Jan 04. 2022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죽음학과 인간의 존엄

죽음을 얘기하는 목적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우리네 일상을 깨닫고 자신의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며 참 자아를 찾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또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나와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서 죽음을 전후한 상황을 좀 더 인간적이고 존엄하게 마주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죽음학은 인간성과 존엄성에 대한 배움이다. 연명치료 거부와 같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나을지에 대한 논의처럼 말이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뭘까?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혹독한 러시아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그려낸 작품이다. 수용소의 생활은 비인간적이고 인간의 존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다. 수용소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길 포기하고 산다. 그것은 환경의 탓이기도 하겠거니와 그런 환경이 아니더라고 세상에는 언제나 타인을 속이고 착취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영하 30도의 수용소라는 환경에서나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이라는 환경에서나 인간성을 지키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아니 지키지 않는 인간들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소설속의 주인공 슈호프는 비참하고 혹독한 수용소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지킨다. 


사진출처 : https://2011.bolshoi.ru/en/about/press/photo/denisovich/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일 "로고 테라피(의미치료)"의 선구자가 된 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하고 또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논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논의이고 이는 곧 삶의 대한 논의이다.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과 같이,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하는 인간성에 대한 논의가 곧 죽음학에서 다루는 이야기인 것이다. 죽음학은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해진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 


비참한 수용소에서 10년간 지내고 있는 주인공 슈호프의 "하루"는 왜 "행복"했을까? 당신의 하루는 어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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