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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Aug 06. 2024

가지가지 풍년

어릴 적  나는  입이  짧았다.

내가 싸간 도시락 반찬을 친구들이 먹어서  밥이  남으면 도시락 뚜껑을 덮고 먹지 않았다.

친구의 반찬을 먹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이십 대가 되어  동생들과 자취를 할 때  엄마는  콩나물까지 씻어서 주셨고  찌개거리에는 물만 부어서 끓일 수 있도록 양념을 해 주셨다.

지금으로 보면 즉석찌개거리의  원조이다.


삼십 대와 사십 대를 지나면서도  손질한 냉동 생선과  마늘 찧은 거를  친정엄마로부터  당연하게 받아오고  시댁에서 땀 흘려 농사지어 주신 야채는 냉장고에서 상해버리는 일도 많았다.

상한 야채를 버릴 때는 죄를 지은 것과 같은 마음이었지만

 먹거리를 버리지 않도록 미리미리 간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오십 대를 훌쩍 넘겨서야  조금 철이 나는가 보다.

며칠에 한 번씩 주말 농장에 갈 때마다  가지 수확이 제법이다.

매번 가지 반찬도 한계가 왔다.

텃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웃을 우연히 만난다면 선심을 쓰리라 생각하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데 어리숙한 내 머리에서 가지를 말려서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다 하고도 남을 생각을 이제라도 해내서  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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