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과 차를 타고 함께 교회에 가고 있었다.
교회에서 매주마다 예배가 끝나고 오후에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를 원하는 대로 가르쳐준다고 하니 참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로 이동하는 동안 13살 아들에게
“아들아 악기를 배워보면 어떨까?
마침 이렇게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엄마 생각엔 진짜 좋은 기회인 거 같아.
아빠가 기타를 잘 치니까 너도 기타를 배워 보는 게 어때?
싫으면 드럼은 어떨까? 드럼을 막 치면 스트레스도 많이 풀릴 거야.
악기를 무료로 이렇게 가르쳐 주는 데가 어딨니? 진짜 좋은 기회야.
사람이 악기 하나 정도는 능숙하게 다루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지?
엄마는 꼭 악기 하나 정도는 열심히 배워 뒀으면 좋겠어.
어때? 이번 주부터 시작해 볼래?”
그리고 아들이 답했다.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하지 그래?”
그리고 보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다시 고개를 처박는다.
으이구 이 사춘기…
처음엔 그저 사춘기 아이들의 흔한 반응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제대로 능숙하게 칠 줄 악기 하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은 나지 아들이 아니다.
어렸을 때 여느 한국 여자아이들처럼 피아노 학원을 몇 년간 다녔었다. 하지만 그렇게 즐겁거나 애정이 생기지는 않았고 그냥 엄마가 끊어줬기 때문에 다녔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고 선생님에게 여러 번 혼이 났지만 여전히 숙제로 내준 악보 연습은 해가지 않았고 피아노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자신 있게 칠 줄 아는 곡 이라고는 학교 종이 땡땡땡 밖에는 없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잘 치는 악기로 연주를 하면서 하모니를 이루는 즐거움을 누릴 때 옆에서 구경만 하는 게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나도 악기 하나 정도는 제대로 배워 둘 걸 하는 아쉬움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사실 좀 자신 있게 칠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것은 장구다. 대학교 사물놀이패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정말 열정적으로 장구를 배웠다. 학교 공부도 등한시하면서.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보다도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것은 장구였기 때문에 어디서 장구는 칠 줄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장구를 들고 다니면서 칠 기회는 별로 없다.
그래서 늘 악기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살았던 엄마이기에 아들을 보면서도
악기 하나 정도는 마스터해서 연주할 줄 알았으면,
내가 느끼는 아쉬움을 이 아이는 느끼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들의 말이 옳다.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하지 그래?
그게 그렇게 좋다고 느끼면 나나 하면 된다.
내 아이가 그런 아쉬움을 엄마처럼 느낄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강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악기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에는 악기를 배우라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아들의 삶은 그 아이의 삶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니까.
내가 느낀 아쉬움을 아이는 전혀 개의치 않을 수도 있으니 아들의 삶과 취향을 존중해 주기로 결정한다.
아들! 너의 삶을 존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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