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박지훈을 체포한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린아,"
윤지우의 목소리에 하린은 고개를 돌렸다.
"검찰에서 연락이 왔어. 박지훈의 기소가 결정됐대."
하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지우는 하린의 옆에 앉았다.
"괜찮아? 요즘 좀 힘들어 보이던데."
하린은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피로가 가득했다.
"응, 괜찮아. 그냥···. 모든 게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서."
"충분히 이해해,"
지우가 하린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번 사건은 정말 힘들었잖아. 특히 네 능력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느꼈을 테고."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능력은 때로는 축복이었지만, 때로는 저주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때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네 덕분에 사건이 잘 해결됐잖아,"
지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없었다면 이번 사건은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었을 거야."
하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가끔은 이 능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지우는 하린의 어깨를 다시 토닥였다.
"그 능력은 네 일부야, 하린아. 그리고 그 능력으로 너는 많은 사람을 도왔잖아. 그걸 절대 잊으면 안 돼."
그때 하린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이민준이었다.
"네, 형사님."
"정하린 씨, 지금 시간 되십니까? 잠시 뵙고 싶습니다."
하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민준은 경찰서 근처의 카페를 제안했다. 하린은 지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자 민준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하린을 보자 일어나 인사했다.
"정하린 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린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형사님?"
민준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박지훈 씨에 대한 재판이 곧 시작됩니다. 그리고 검찰에서 당신을 증인으로 세우고 싶어 해요."
하린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저를요? 하지만 왜···."
"당신의 능력 때문입니다,"
민준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박지훈 씨의 감정을 읽고, 그의 진술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더군요."
하린은 긴장한 듯 숨을 들이켰다. 하린은 그녀만의 능력이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정말 그런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한동안 하린은 고개를 숙이고 곱씹었다.
"걱정되시는 것 같군요, 하린 씨.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민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능력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만약 제가 실수한다면···."
민준은 하린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정하린 씨, 당신의 능력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도 큰 역할을 했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제가 보증합니다."
하린은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능력으로 인해 겪은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떠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도왔던 모든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당신이 증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곧 답변드리겠습니다."
카페를 나온 하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법정에 서서 그녀의 능력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하린은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면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사건을 통해 만났던 모든 사람의 감정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박소연의 슬픔과 두려움, 박지훈의 분노와 후회, 소연 부모님의 고통과 상실감···. 그리고 피해자들의 공포와 절망.
모든 감정이 그녀를 압도했지만, 하린은 이제 그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능력이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선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하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어 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형사님, 저 정하린입니다. 제가···. 증언할게요."
민준의 목소리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하린 씨. 당신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전화를 끊은 후 하린은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녀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하린은 검찰청으로 향했다. 그녀는 증언 준비를 위해 검사와 면담하기로 되어 있었다.
검찰청 건물에 들어서자, 하린의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고 안내된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강태우 검사가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정하린 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태우가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하린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강태우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했다. 긴장감,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의구심이 느껴졌다.
"정하린 씨,"
강태우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더군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능력이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강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민준 형사로부터 당신의 능력이 이번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물론 법정에서 당신의 능력을 '증거'로 채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증언은 배심원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거예요."
하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어떤 식으로 증언해야 할까요?"
강태우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당신이 박지훈을 만났을 때의 경험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의 감정 상태, 진술의 신빙성 등에 관해서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른 관계자들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증언해 주시고요."
하린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정하린 씨. 당신의 증언이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하린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녀는 감정을 읽는 능력이 정의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동시에 큰 부담감도 느꼈다.
몇 주 후, 재판 당일이 되었다. 하린은 긴장된 마음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법정 앞에 도착하자 이민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하린 씨, 긴장되시죠?"
민준이 따뜻한 눈빛으로 물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긴장됩니다."
민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법정 안으로 들어서자, 하린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증인석으로 향했다.
"증인 선서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판사가 말했다.
하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선서했다. 그리고 강태우 검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정하린 씨, 당신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능력에 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하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 저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제가 직접 경험할 수 있어요."
잠시 법정 안에 술렁임이 일었다. 판사가 방망이를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강태우가 계속해서 물었다.
"박지훈 씨를 만났을 때, 그의 감정 상태는 어땠습니까?"
하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박지훈 씨에게서는 깊은 후회와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해방감도 느껴졌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은 감정이었어요."
"그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믿습니다. 그의 감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불안이나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진실을 말함으로써 느끼는 해방감과 후회, 그리고 자책감으로 인한 슬픔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강태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피해자들의 가족들에 관해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감정 상태는 어떻습니까?"
하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재판장에 앉아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얼굴이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들에게서는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알게 된 후의 안도감도 있었습니다. 특히 박소연의 부모님께서는 복잡한 감정을 보이시고 있어요. 딸과 아들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충격과 슬픔, 그리고 그동안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에 관한 자책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법정 안은 조용했다. 모든 사람이 하린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할 수도 있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린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하게 답변했다.
"그건 평상시에는 잘되지 않습니다. 다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가끔 그런 힘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순간 법정은 술렁였지만, 판사는 재빨리 장내를 진정시켰다.
"마지막으로,"
강태우가 계속 말했다.
"이 사건을 통해 당신이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하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저는 감정의 복잡성과 인간관계의 깊이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그 아픔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용서와 화해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강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정하린 씨. 이상으로 제 질문을 모두 마칩니다."
이어서 변호사의 반대 신문이 시작되었다. 변호사는 하린의 능력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하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제 능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린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제 능력으로 저는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들은 모두 다른 증거들과 일치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의 반대 신문이 끝나고, 하린은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다. 박지훈은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의 자백과 반성의 정도를 고려해 감형되었다.
재판이 끝나고 하린은 법원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로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정하린 씨,"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린은 돌아보았다. 박소연의 부모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많이 힘드셨죠?"
하린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소연의 어머니가 하린의 손을 굳게 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소연이가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어요."
하린은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깊은 슬픔이 있었지만, 이제는 받아들임과 평화로움도 함께 있었다.
"소연 씨는 항상 부모님을 사랑했어요,"
하린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소연의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하린을 껴안았다. 하린은 그들의 슬픔과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하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을 하늘도 아는 듯했다.
'소연 씨,'
하린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요. 드디어 진실을 밝혀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그때 하린의 전화가 울렸다. 윤지우였다.
"하린아, 어때? 괜찮아?"
하린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괜찮아. 이제 정말 다 끝난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지우가 말했다.
"우리 만나서 저녁 먹을래? 다들 우리 하린이를 보고 싶어 해."
하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래, 좋아. 지금 갈게."
전화를 끊은 하린은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능력을 더 이상 저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그녀의 일부였고, 그녀는 그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건해졌다.
하린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 앞에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녀는 많은 걸 배웠고, 그 경험들은 앞으로도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구나.'
하린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