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미로

by 은파

하린과 민준, 그리고 서현우는 조심스럽게 냉동 창고의 입구로 다가갔다. 거대한 철문 앞에 서자 하린은 더욱 강렬한 한기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추위가 아니었다. 마치 이 건물 자체가 공포와 절망을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들어가죠?"

서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민준은 주변을 살폈다.

"정문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입구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하린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녀는 주변의 감정을 모두 읽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강하게 느꼈다.

"이쪽이에요,"

하린이 갑자기 말했다.

"왼쪽 구석에 작은 문이 있어요. 누군가가 최근에 그곳을 사용했어요. 불안과 초조함이 느껴집니다."

민준과 서현우는 놀란 표정으로 하린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해요."

서현우가 감탄했다.

세 사람은 하린이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였다. 과연 그곳에는 작은 문이 있었고, 문 주변에는 누군가가 최근에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모두 조심해요,"

민준이 말했다.

"우리는 아직 김재호와 그의 조직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민준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덮쳤다. 하린은 그 순간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한기를 느꼈다.

"이 안에 사람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서현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린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반드시 살아있을 거예요. 우리는 박소연 씨를 반드시 찾아내야 해요."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거대한 미로와도 같았다. 여러 개의 통로와 문들이 얽혀있었고, 모든 것이 얼음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민준이 물었다.

하린은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녀는 이 거대한 공간 속에서 희미한 감정의 흔적들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쪽이에요,"

하린이 말했다.

"공포와 절망···.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느껴져요. 박소연 씨일 거예요."

세 사람은 하린이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걸어갈수록 주변의 온도는 더욱 낮아졌다. 서현우는 떨고 있었고, 하린과 민준도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여기예요."

하린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민준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서현우가 초조하게 물었다.

그때 하린의 눈에 문 옆의 작은 키패드가 들어왔다.

"비밀번호가 필요해요,"

하린이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때 서현우가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

"저···. 제가 알 것 같아요."

하린과 민준은 놀란 표정으로 서현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요?"

민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서현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재호···. 그는 항상 특별한 숫자에 집착했어요. 소연이의 생일이었죠."

서현우는 조심스럽게 키패드에 숫자를 입력했다. 순간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었어요?"

하린이 물었다.

서현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사실 김재호와 저는···."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그들을 덮쳤고, 그들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방 안은 완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얼음 기둥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 갇힌 사람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소연아!"

서현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세 사람은 즉시 얼음 기둥으로 달려갔다. 그 안에는 분명 박소연으로 보이는 여성이 갇혀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살아있나요?"

민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린은 조심스럽게 얼음에 손을 댔다. 그 순간 그녀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살아있어요,"

하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매우 약한 상태입니다. 어서 빨리 그녀를 여기서 구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서현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기 봐요! 조작 패널이 또 있어요!"

민준이 재빨리 패널로 다가갔다.

"이걸 어떻게 작동시키죠?"

그때 갑자기 방 안에 차가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리석군요. 당신들이 정말로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세 사람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김재호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여러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김재호···."

하린이 중얼거렸다.

김재호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있었다. 하린은 그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정하린 씨,"

김재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당신의 능력에 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정말로 흥미롭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당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하린은 잔뜩 긴장했다. 그녀는 김재호가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더욱 두려웠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하린이 물었다.

"박소연 씨를 왜 이렇게 가둬놓은 겁니까?"

김재호는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제게 매우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저에게 해를 끼치려 했을 때, 저는 그를 제거해야만 했죠. 하지만 소연이···. 그녀는 달랐어요. 부하들이 그녀를 제거했다고 했을 때 저는 많이 상심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도 기뻤어요. 제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꼭···."

"김재호 씨, 당신은 괴물이에요."

서현우가 분노에 차서 말했다.

김재호는 서현우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서현우, 넌 정말 실망스럽구나. 네가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하린은 놀라서 서현우를 바라보았다.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서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전에 말씀드린 대로 김재호의 조직원이었어요. 하지만 소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것이 변했어요."

"그래서 넌 배신을 선택했지,"

김재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거다."

김재호가 손짓하자 그의 부하들이 앞으로 나섰다. 하린, 민준, 그리고 서현우는 뒤로 물러섰다.

"우리를 죽일 건가요?"

하린이 도전적으로 물었다.

김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들은···. 제 새로운 실험 대상이 될 겁니다. 모두 영광으로 생각하세요."

그의 말에 하린은 등줄기에 한기를 느꼈다.

"도대체 무슨 실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민준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때 김재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는 실험입니다. 제가 평생 연구해 온 과제죠. 그리고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어요. 이제 당신들이 제 실험을 완성해 줄 것 같네요."

하린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김재호가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당신은 정말로 미쳤어요,"

하린이 계속 말했다.

"감정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에요. 그걸 제거하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김재호는 차갑게 비웃었다.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겁니다. 감정이 없는 너무도 완벽한 인간. 그리고 당신들이 그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될 겁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때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꼼짝 마! 경찰이다!"

윤지우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지우야!"

하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재호의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김재호는 여전히 차분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군요."

김재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천장에서 큰 소리가 났다. 모두가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얼음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모든 사람이 피하려고 움직였다.

하린은 본능적으로 박소연이 갇힌 얼음 기둥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어떻게든 소연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린 씨, 조심해요!"

민준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하린은 이미 얼음 기둥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얼음을 깨려고 했다.

그때 하린의 눈에 조작 패널이 들어왔다. 그녀는 재빨리 패널로 달려갔다.

"어떻게 하지···."

하린이 중얼거렸다.

그때 서현우가 그녀 옆에 나타났다.

"제가 할게요!"

서현우는 재빨리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순간 얼음 기둥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소연아!"

서현우가 외쳤다.

마침내 얼음 문이 완전히 열리고, 박소연이 쓰러졌다. 하린과 서현우가 재빨리 그녀를 받아냈다.

"소연아, 정신 차려!"

서현우가 소연의 얼굴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천천히 소연의 눈이 떠졌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우야···. 여긴 어디야?"

소연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이제 안전해.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서현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주변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김재호와 그의 부하들은 경찰들과 대치 중이었다.

"우리,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요,"

하린이 말했다.

민준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소연 씨를 데리고 먼저 나가세요. 저희가 김재호를 잡을게요."

하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소연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서현우와 함께 소연을 부축해 출구로 향했다.

그들이 막 문을 향해 갈 때, 갑자기 김재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연아! 넌 나에게 매우 특별한 아이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하지?"

소연은 그 말을 듣고 멈춰 섰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다.

"어서 가요, 소연 씨,"

하린이 부드럽게 말했다.

"저 사람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소연은 천천히 김재호를 향해 돌아섰다.

"당신···. 당신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에요. 내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에 불과해요. 당신은 괴물이에요."

김재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처음으로 하린은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분노, 배신감, 그리고···. 슬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김재호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넌 언젠가 내 진심을 알게 될 거야."

그 순간 경찰들이 김재호에게 달려들었다. 혼란 속에서 하린은 서현우와 함께 소연을 데리고 빠르게 밖으로 탈출했다.

밖에는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의료진들이 즉시 소연을 돌보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하린이 소연에게 물었다.

소연은 약하게 미소 지었다.

"네···. 고마워요.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큰 폭발음이 들렸다.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냉동 창고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민준 형사님!"

하린이 놀라서 소리쳤다.

하린은 본능적으로 건물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서현우가 그녀를 붙잡았다.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그때 연기 속에서 몇몇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민준과 다른 경찰들이 김재호를 끌고 나오고 있었다.

하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재호가 수갑을 찬 채 그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상한 빛이 어려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린은 갑자기 불안감을 느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하린이 중얼거렸다.

서현우가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김재호···. 그는 뭔가 더 큰 계획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민준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괜찮으세요?"

민준이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물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는 괜찮아요. 김재호는요?"

민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체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이 걱정돼요."

"뭐라고 했나요?"

서현우가 귀를 세우고 물었다.

민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가 말하길···.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어요."

하린은 등줄기에 극심한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우리···.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하린이 말했다.

"김재호의 실험, 그의 진짜 목적, 그리고 소연 씨에게 집착하는 이유···. 모든 게 아직 미스터리예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하지만 오늘 우리는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소연 씨를 구했고, 김재호를 체포했어요."

하린은 소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구급차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서현우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소연 씨가 깨어나면,"

하린이 말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물어볼 게 많아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 있을 거예요."

민준은 동의했다.

"그래요. 하지만 그전에 소연 씨가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고,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린은 두렵지 않았다. 그녀에겐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고, 그녀를 도와줄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낼 거야.'

하린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하린은 다시 한번 김재호가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미소 뒤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것. 그것이 하린의 새로운 임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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