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진실

by 은파

하린은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박소연이 입원한 지 3일째였다. 의사들은 소연의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했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하린은 매일 병실을 찾아 소연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는 소연이 깨어나면 물어볼 많은 질문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병실 문 앞에 도착한 하린은 잠시 머뭇거렸다. 문을 열기 전,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안에는 서현우가 경찰 입회하에 소연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서현우는 소연의 손을 꼭 잡고 있다가, 하린이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하린 씨."

서현우가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서현우 씨. 소연 씨는 좀 차도가 있나요?"

서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오늘 중으로 깨어날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하린은 소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연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하린은 소연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희미하게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서현우 씨,"

하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김재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당신이 그의 조직원이었다고 했잖아요."

서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저는 김재호의 양자였어요."

하린은 놀라서 서현우를 바라보았다.

"양자라고요?"

서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소연이가 저격당한 이후, 그는 저에게 양자로 삼겠다는 제안을 해왔어요. 그리고 저는 그 제안은 받아들였고요. 그건 모두 소연이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하지만요?"

하린이 물었다.

"김재호는 저도 그의 실험 대상으로 삼았어요,"

서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실험을 했어요. 저는 불완전하지만, 그의 첫 번째 성공 사례였죠."

하린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었군요."

서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감정은 대부분 억제되어 있어요. 하지만 소연이와 연락이 닿고 나서 모든 것이 변했어요. 소연이의 목소리를 들은 후부터 제 안의 얼어붙은 감정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하린은 서현우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 후회, 두려움···. 그리고 희망.

"그럼 김재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하린이 다시 물었다.

서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너무도 복잡한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차갑고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내면은 격렬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법을 터득했죠. 그리고 그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어 했어요."

"선물이라고요?"

하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서현우가 대답했다.

"김재호는 감정이 인간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감정 없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싶어 했죠. 그의 실험은 그 목표를 향한 것이었고요."

하린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소연 씨를 납치한 거군요."

서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연이는 김재호에게 특별했어요. 그는 소연이를 자신의 걸작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완벽하게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으로요."

그때 갑자기 침대에서 작은 신음이 들렸다. 하린과 서현우는 즉시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의 눈꺼풀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연아!"

서현우가 소리쳤다.

하린은 즉시 간호사를 부르러 나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소연은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소연이 희미한 목소리로 물었다.

"병원이야. 소연아,"

서현우가 대답했다.

"이제는 안전해. 그러니 걱정하지 마."

소연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하린에게서 멈췄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소연이 물었다.

하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박소연 씨. 저는 정하린이라고 해요.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입니다."

소연의 눈에 불안감이 스쳤다.

"경찰이요?"

"네.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하린이 재빨리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돕기 위해서 여기에 왔어요. 그리고 김재호는 이미 체포되었어요."

소연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하린은 그녀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했다. 안도감, 두려움, 그리고···. 슬픔?

"소연 씨,"

하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물어볼 게 많아요. 하지만 서두르지 않을게요. 충분히 회복하신 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소연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제가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하린이 대답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만 말해주시면 돼요."

그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소연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잠시 나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하린과 서현우는 병실을 나왔다. 복도에 선 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서현우 씨,"

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김재호의 실험···. 정확히 어떤 것이었나요?"

서현우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인간의 뇌를 조작해서 감정을 통제하려고 했어요. 극저온 기술을 이용해서 뇌의 특정 부위를 얼리는 거죠. 그러면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억제돼요."

하린은 충격을 받았다.

"그게 가능한가요?"

"네,"

서현우가 대답했다.

"저도 그 실험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아요.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억제되는 거죠. 그리고···. 부작용도 있어요."

"어떤 부작용인가요?"

하린이 물었다.

서현우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때때로 억제된 감정들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요. 그때는 감정을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돼요.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요."

하린은 서현우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겪었을 고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럼 소연 씨도···."

하린이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서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행히 소연이는 그 실험을 받지 않았어요. 김재호는 소연이를 위해 더 완벽한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소연이를 그 냉동 창고에 가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하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왜 하필 소연 씨였을까요?"

서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김재호는 소연이에 대해 특별한 집착을 보였어요. 마치 소연이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요."

하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소연과 김재호 사이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하린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이민준이었다.

"네, 형사님."

"정하린 씨, 큰일입니다,"

민준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들렸다.

"김재호가 탈출했어요."

하린은 충격을 받아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하린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 자세한 상황은 파악 중입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내부의 도움이 있었을 겁니다. 김재호의 조직이 아직 건재한 것 같아요."

하린은 서현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알겠습니다, 형사님,"

하린이 말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하린은 서현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럴 수가···,"

서현우가 중얼거렸다.

"김재호가 탈출했다니···."

"서현우 씨,"

하린이 말했다.

"당신은 여기 남아 다른 경찰들과 함께 소연 씨를 지켜주세요. 저는 경찰서로 가보겠습니다."

서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하린은 서둘러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가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김재호의 탈출···. 이것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린은 김재호가 어디로 갔을지,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하린으로서는 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모든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민준이 하린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준이 헐떡이며 말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김재호의 탈출뿐만 아니라, 그의 연구 자료들도 모두 사라졌어요."

하린은 깜짝 놀랐다.

"연구 자료라고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가 압수했던 김재호의 모든 연구 자료와 실험 기록들이 사라졌어요. 누군가가 그의 탈출과 동시에 그 자료들을 모두 가져간 것 같습니다."

하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 자료 중에 뭔가 중요한 내용이 있었나요?"

하린이 물었다.

민준은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김재호의 감정 제어 실험에 대한 모든 기록이요. 그리고···. 박소연에 대한 특별한 계획도 있었습니다."

하린의 눈이 커졌다.

"특별한 계획이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어요. 그 자료들이 사라지기 전에 모든 것을 분석하지 못했거든요."

하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재호가 소연에 대해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미스터리였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뭘까요?"

하린이 물었다.

민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김재호의 행방을 추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조직에 대해서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해요. 김재호 탈출과 관련된 내부 협력자가 있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소연 씨를 보호해야 해요. 김재호가 그녀를 노릴지도 모릅니다."

"맞아요,"

민준이 동의했다.

"병원에 연락해서 경비를 더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한 경찰관이 급하게 다가왔다.

"형사님! CCTV 영상에서 김재호로 추정되는 인물이 발견됐습니다!"

민준과 하린은 즉시 그 경찰관을 따라 CCTV 관제센터로 향했다. 화면에는 한 남자가 공항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분명 김재호예요,"

하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걸음걸이와 자세···. 틀림없어요. 김재호가 분명합니다."

민준은 즉시 무전을 쳤다.

"모든 공항 경비대에 연락 바람. 김재호를 보는 즉시 즉각 체포할 것."

하지만 그때 또 다른 경찰관이 뛰어 들어왔다.

"이 형사님! 조금 전에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행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승객 명단에 김재호의 가명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있었어요."

민준은 좌절감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늦었군요···."

하린은 창밖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김재호는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형사님,"

하린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국제 경찰에 수배 요청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그의 조직을 파헤쳐야 해요. 김재호의 실험이 어떤 것인지, 그가 왜 박소연 씨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 모든 것을 밝혀내야만 합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는 박소연 씨와 이야기를 더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들이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습니다,"

민준이 동의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박소연 씨의 상태가 아직 불안정할 수 있어요."

하린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섰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하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재호의 탈출, 사라진 연구 자료들,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소연의 비밀···.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하지만 하린은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다짐했다. 소연을 위해서, 그리고 김재호의 광기로부터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병원에 도착한 하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그녀는 소연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이 밝혀질 수도, 혹은 더 큰 미스터리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린은 천천히 소연의 병실로 향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이 사건,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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