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 치유자

by 은파

한국으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났다. 하린은 아파트 창가에 서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러시아에서의 사건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그녀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감정 읽는 프로파일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하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이민준이었다.

"네, 형사님."

"정하린 씨, 내일 기자회견 준비는 다 되셨나요?"

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준비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긴장돼요."

민준의 목소리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잘 해낼 거예요. 이번 기자회견으로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그런데 형사님,"

하린이 말을 이었다.

"박지훈과 서현우의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박지훈은 살인 혐의에 대해 재심결과 무죄 판결받았어요. 그의 자백이 강압에 의했다는 점, 그리고 실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가 모두 인정되었어요. 다만, 증거 은닉과 허위 진술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서현우는요?"

"서현우도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입니다. 하지만 김재호의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어요. 두 사람 모두 사회봉사명령도 받았습니다."

하린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은 거군요."

"맞아요,"

민준이 동의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김재호가 살해한 여성들에 대한 진실도 밝혀졌어요."

하린은 귀를 기울였다.

"어떤 진실인가요?"

"그 여성들은 모두 김재호의 초기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감정 제어 실험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실험이 실패하고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김재호는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해 그들을 살해한 겁니다."

하린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랬군요···. 그 여성들의 죽음이 결국 김재호의 실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던 거네요."

"네,"

민준이 계속 말했다.

"이제 그 피해자들의 가족들에게도 진실을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전화를 끊은 하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었던 살인 사건들의 진실이 투명하게 밝혀진 것이다. 그녀는 그 피해자들을 떠올리며 아픈 가슴을 달랬다.

다음 날 아침, 하린은 긴장된 마음으로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회견장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민준, 현우, 소연, 그리고 지우.

"하린아, 긴장 풀어,"

지우가 하린을 안아주며 말했다.

"넌 할 수 있어."

하린은 미소 지었다.

"고마워, 지우야."

소연이 다가와 하린의 손을 잡았다.

"정하린 씨, 당신 덕분에 저희가 진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 그 진실을 세상과 나눌 차례예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숨을 내쉬며 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하린은 천천히 연단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하린입니다,"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범죄 사건의 해결이 아닌, 인간의 감정과 과학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린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움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능력이 어떻게 김재호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습니다,"

하린이 계속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때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능력 덕분에 저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다운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린은 김재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가 어떻게 감정을 제거하는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실험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는지를 설명했다.

"김재호 박사는 감정이 인간의 약점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오히려 감정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감정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닙니다.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하린은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린은 잠시 멈추고 회견장을 둘러보았다. 모든 사람의 눈이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여러분께 이 사건의 또 다른 측면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하린이 말을 이었다.

"김재호 박사가 살해한 여성들···. 그들은 모두 그의 초기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김재호 박사가 그들을 살해한 것입니다."

회견장에 충격의 물결이 퍼졌다. 기자들은 더욱 열심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분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린이 계속했다.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감정 조작의 위험성을 깨달았고,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저는 제 능력을 더 나은 방향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하린이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범죄 수사뿐만 아니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치유를 돕고,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이해와 소통을 촉진하는 데 제 능력을 활용하고 싶습니다. 특히 김재호 박사의 실험으로 인해 고통받은 분들을 돕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하린은 동료들과 함께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정말 대단했어, 하린아,"

지우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용기 있게 모든 것을 공개했어요,"

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린 씨의 능력이 공개된 만큼, 앞으로 많은 관심과 논란이 있을 겁니다."

"걱정되시나요?"

서현우가 물었다.

하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물론 걱정도 돼요. 하지만 동시에 기대도 돼요. 이제 제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연이 미소 지었다.

"저도 하린 씨를 돕고 싶어요. 제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소연 씨,"

하린이 말했다.

"우리가 함께 일한다면, 정말 많은 걸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하린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읽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에게서 희망, 결의, 그리고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하린아,"

지우가 물었다.

"앞으로 네 능력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야?"

하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내 능력이 단순히 감정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쩌면 감정을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감정을 치유한다고요?"

민준이 관심 있게 물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러시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거예요. 제가 김재호의 얼어붙은 감정을 녹이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만약 제가 이 능력을 더 발전시킨다면,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이 얼어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거 정말 놀라운 생각이에요,"

소연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서현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서현우가 말했다.

"그냥 문득 생각났어요. 우리가 여기 이렇게 앉아서 세상을 변화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니···.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일이잖아요."

모두가 서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민준이 말했다.

"서현우 씨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서현우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사실···. 저도 제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어요. 저처럼 김재호의 실험으로 감정을 억제당했던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그들이 다시 감정을 되찾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요."

"그거 정말 훌륭한 생각이에요,"

하린이 말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하린은 문득 김재호를 떠올렸다. 그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그의 유산에 관해 생각했다.

"김재호 박사의 연구···.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하린이 물었다.

민준이 대답했다.

"대부분의 연구 자료는 폐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윤리적인 부분들, 특히 PTSD나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은 의학계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물론 엄격한 윤리 기준 하에서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그의 연구가 결국 사람들을 돕는 데 쓰이게 되는 거군요."

"그래요,"

소연이 말했다.

"비록 그는 잘못된 길로 갔지만, 결국 그의 연구는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아이러니하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자신들이 겪은 일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자,"

지우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이제 너무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고 비록 술은 아니지만, 찻잔으로라도 건배나 할까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요."

모두가 웃으며 동의했다. 그들은 각자의 음료를 들어 올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하린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민준이 덧붙였다.

다섯 사람은 활짝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 순간, 하린은 그들 모두에게서 강한 희망과 결의, 그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카페를 나와 각자의 길로 흩어지면서, 하린은 마지막으로 동료들의 감정을 읽었다. 하린은 그들 모두에게서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린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며, 그녀는 이제 정말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하린의 능력은 더 이상 부담이나 저주가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하린은 앞으로 그 능력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활용할지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집에 도착한 하린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난 몇 개월간의 여정을 돌이켜보았다. 박소연 사건으로 시작된 이 모든 일들이 그녀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낯선 번호였다.

"여보세요?"

하린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정하린 씨인가요?"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김미영 박사입니다. 오늘 기자회견을 보고 연락드렸어요."

하린은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정하린 씨의 능력에 대해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김 박사가 말했다.

"우리 센터에서 정하린 씨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싶어요. 당신의 능력이 정신 건강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하린은 잠시 말을 잃었다. 이것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반응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 박사님,"

하린이 겨우 말을 이었다.

"제 능력이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좋습니다,"

김 박사가 말했다.

"다음 주에 센터로 와주시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화를 끊은 하린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이것은 그녀가 꿈꾸던 기회였다. 자신의 독특한 능력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기회.

다음 날 아침, 하린은 일찍 일어나 공원으로 나갔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읽으며 걸었다.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상쾌함, 출근길 직장인들의 약간의 긴장감, 연인들의 따뜻한 애정···.

문득 하린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선물을 받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능력으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하린은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와의 연구, 소연과 함께 할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 서현우와 협력하여 김재호의 실험 피해자들을 돕는 일···. 그녀의 앞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 하린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 노인은 벤치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그의 감정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하린이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제가 옆에 앉아도 될까요?"

노인은 놀란 듯 하린을 바라보았다가 미소 지었다.

"그럼요, 앉으세요."

하린은 노인 옆에 앉았다. 하린은 노인의 감정을 더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외로움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향한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졌다.

"할아버지, 오늘 아침 산책 나오셨어요?"

하린이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매일 아침 이렇게 나와요. 하루의 시작을 자연과 함께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하린은 미소 지었다.

"저도 그래요. 자연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두 사람은 잠시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때 하린은 노인의 감정에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외로움이 조금씩 줄어들고, 대신 따뜻함과 감사함이 커지고 있었다.

"젊은이,"

노인이 갑자기 말했다.

"고마워요. 이렇게 와서 말을 걸어줘서."

하린은 놀라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해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해요."

노인은 미소 지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낯선 노인에게 관심 가져주는 젊은이가 드물어요. 당신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요."

하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할아버지,"

하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제가 커피 한 잔 사드릴까요?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그럼 정말 좋겠어요."

두 사람은 함께 일어나 근처 카페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하린은 노인의 감정이 점점 더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린은 노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의 아픔,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했던 시간, 자녀들의 성장을 지켜본 기쁨, 그리고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까지···. 하린은 노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야기를 마친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젊은이.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행복해요."

하린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가 더 감사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인생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린은 그녀의 능력이 단순히 범죄 해결이나 큰 문제를 다루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데에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한 하린은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희망과 결의로 가득 찼다. 김재호 사건을 통해 사람의 감정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범죄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하린은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에 관한 연구,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일···. 모두 큰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하린은 두렵지 않았다. 민준, 지우, 소연, 현우···. 그들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린이 중얼거렸다.

하린은 책상에 앉아 일기를 꺼냈다. 펜을 들고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내 능력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닌 축복이다. 이제 나는 이 능력으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한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린은 잠시 펜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오늘 만난 노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을 생각했다.

"나는 약속한다. 내 능력을 항상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이 세상이 조금씩 더 따뜻해질 때까지···."

하린은 일기를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마치 사람들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모두의 마음이 언젠가는 따뜻하게 녹아내리기를.'

하린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하린은 국립정신건강센터로 향했다. 김미영 박사와의 첫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센터에 도착한 하린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정하린 씨, 어서 오세요,"

김 박사가 하린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늘부터 우리의 연구가 시작됩니다. 준비되셨나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됐습니다. 제 능력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 정말 기대돼요."

김 박사는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우선 당신의 능력에 대한 기초적인 테스트부터 시작해볼까요?"

그들은 실험실로 향했다. 하린은 여러 가지 감정 상태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감정을 읽고 설명하는 테스트를 받았다. 그녀의 정확도는 놀라웠다.

"정말 놀랍습니다, 하린 씨,"

김 박사가 감탄했다.

"당신의 능력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해요."

하린은 겸손하게 미소 지었다.

"아직 배울 게 많아요. 이 능력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럼 이제 실제 환자와의 세션을 한번 해볼까요?"

김 박사가 제안했다.

하린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그녀의 능력을 실제 치료에 적용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환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이었다. 하린은 그녀의 감정을 읽으며 깊은 슬픔과 무력감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하린이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저는 정하린이라고 해요. 오늘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환자는 처음에는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하린의 따뜻한 태도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하린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세심하게 읽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세션이 끝난 후, 환자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해요. 오랜만에 누군가가 정말로 나를 이해한다고 느꼈어요."

하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능력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

"정말 대단해요, 하린 씨,"

김 박사가 말했다.

"당신의 능력은 환자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세션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러고 싶어요. 이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그날 저녁, 하린은 소연, 현우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정말 대단해, 하린 언니,"

소연이 말했다.

"언니 능력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니 정말 기뻐요."

서현우도 동의했다.

"네, 정말 놀랍습니다. 하린 씨의 능력이 있었다면, 제가 겪었던 고통도 훨씬 빨리 치유될 수 있었을 거예요."

하린은 미소 지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소연 씨도, 서현우 씨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고 있잖아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교환했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동료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연이 말했다.

"박지훈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하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맞아요. 오늘 박지훈 씨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도 김재호 박사의 실험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대요. 그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있다고 했어요."

"정말 다행이네요,"

서현우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 모두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변화가 모여서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거예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마음도 언젠가는 밝게 빛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믿었다.

집에 도착한 하린은 다시 한번 일기를 펼쳤다.

"오늘도 많은 것을 배웠다. 내 능력은 단순히 감정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힘이다. 앞으로도 이 능력을 더욱 발전시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기를···."

하린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불빛들 속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 수많은 감정들을 생각하며 하린은 미소 지었다.

'내일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하린은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하린은 기대감을 안고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하린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꿈속에서, 얼어붙었던 모든 감정이 따뜻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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