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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07. 2021

계란 꽃

내 마음속 희망초

눈길 닿는 곳마다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었다. 가녀린 줄기 끝에 하얀 꽃잎을 접시처럼 가지런히 펴고 안으로 안으로 노란 희망을 품었다. 은은히 퍼지는 향기벌 나비의 날갯짓을 멈추게 하고 지나는 길손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국적인 향기로 거기 있음을 알리바람이 흔들어도 두려운 표정을 하지 않으며 뜨거운 태양에도 피하기보다는 맞서는 태도로 꿋꿋하고 기개 있게 꽃잎을 펼치 이 꽃이 개망초이다.


개망초의 어원에 대해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1910년, 경술국치가 있던 해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꽃이라서 망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백과사전에도 이 설이 채택되어 있음을 본다. 그리고 어느 곳에선 밭에 뿌리내리면 농사를 다 망친다 해서 망초가 되었다는 설도 있 제주에서 전해오는 망초의 전설에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던 망초라는 선녀와 개망초라는 선녀, 둘이 지상으로 유배를 오게 되면서 망초와 개망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설이 진짜인지는 스스로가 믿을만하다고 느끼는 설이 진짜라고 보면 될 듯하다.


망초와 개망초는 서로 다른 꽃이다. 계란 프라이 모양으로 한여름  길가나 들판 등 어느 곳이나 꽃을 피워 마음을 흔들고 시인들의 사랑을 끌어내는 꽃이 개망초이다.  망초라 해도 서러울 판에 같지 않은 상황에 붙여 아예 취급도 안 하려고 붙여주는 ''자를 하나 더 얻어 개망초가 되었으니 고개를 숙이고 숨어 필만도 하건만 오히려 서로 무리 지어 피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린 시절 개망초가 피는 한여름에는 소꿉놀이할 때 상차림이 푸짐했었다. 계란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그때 주인집 딸이 자기는 계란 프라이  먹는다고 자랑할 때면 난 개천으로 뛰어나갔다. 실개천 제방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계란 프라이 먹고 싶지? 하며 놀리던 그 계집애 얼굴을 꽃 봉오리마다 달고서 나를 놀리듯 흔들거리며 피어있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그  머리채라도 잡는 느낌으로 개망초꽃을 잡아 꺾으면 금세 한아름이 되었다. 계란을 한 아름 안은 표정으로 돌아와 바깥마당에 그 꽃으로 소꿉놀이 집의 경계를 만들어 안방, 윗방, 부엌, 마루, 마당까지 꿈에 그리던 집을 마련하고 알뜰하게 다듬은 사기그릇 조각들로 부엌살림을 만들었다.


모래는 밥이 되고 풀들은 반찬이 되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계란 프라이다. 사금파리 조각 중에서도 넓고 큰 것을 남겨 그곳에 계란 프라이를 담았다. 집의 경계를 만들고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개망초꽃을 짧게 따서 접시 위에 올리면 얼마든지 풍성하게 쌓을 수 있었다. 다 만들면 동생들을 불러 "냠냠"하며 먹는 시늉을 했는데, 형제가 많은 우리들은 주인집 딸을 따돌리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끼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그 애가 있어서 소꿉놀이가 더욱 즐거워진 우리는 얼룩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가득 피워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개망초, 그때는 그 꽃 이름이 개망초인 줄 몰랐다. 생김새가 계란 프라이를 닮았다고 나와 친구들은 계란 꽃이라고 불렀다. 훌쩍 자라 어른이 된 다음에야 개망초라는 것을 알았다. 개망초의 어원도 맨 처음 들은 것이 경술국치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라서 그리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그 설명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 꽃을 홀대했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여도 모른 체 했었다. 개망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내게 꽃이 가진 망조의 기운이 옮겨올까 봐 꺼려했었다. 그런 꽃이라서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개망초꽃은 이름처럼 망하지 않고 오히려 끈질기게 우리 산야 어느 곳이든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예전 모습 변함없이 더 넓게 더 많이 자라서 가녀린 고갯짓으로 동심으로 뒤돌아가게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 개망초에도 몸에 좋은 성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망초는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여 열을 내려주고 복통과 설사를 치료하며 위장염에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의 증세를 완화시켜주고, 잇몸의 염증과 구취, 치주염에도 효과가 있어 사용을 했고, 학질(말라리아)의 임상실험에서도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감기, 중이염, 결막염, 부종 등에도 약효를 보인다고 한다.


개망초는 새순일 때 채취해 데쳐서 무침으로 먹고, 말려서 두고 먹기도 하는데, 부드러운 식감이 양념과 어우러지면 어느 나물 못지않아 특히 정월대보름날 묵나물로 인기가 많다.


약으로 사용할 때는 뿌리를 포함한 전초를 한여름에 채취하여 말린 후 사용하면 된다. 개망초의 꽃은 그늘에서 잘 말린 후 차로 우려내 마시거나, 생것에 튀김가루를 입혀 튀김으로 해 먹기도 한다. 물론 잎, 줄기, 꽃을 채취하여 발효액을 담가 사용하기도 한다.


부작용으로는 보고된 것이 없으나, 약성 또한 강하지 않아 크게 쓰임 받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분의 개망초 꽃차를 얻어마신 적이 있는데 맛은 잘 모르겠어도 꽃잎이 물 위에 동그랗게 피어오르던 그 설렘은 나쁘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발효액으로 담가 맛을 느껴보고 꽃차도 직접 만들어 두었다가 좋은 분들이 오시면 함께 설렘을 느끼며 어린시절로 추억여행을 해보고 싶다.




소꿉놀이 밥상에서 귀한 계란 프라이가 되어 동심을 위로 했던 개망초 ,

어른이 되면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집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을 만큼  풍성했던 개망초꽃,

아무리 많이 꺾어도 누구도 혼내지 않았던 꽃, 

소꿉놀이에 화려한 음식이 되어 주인집 딸도 부럽게 만들었던 개망초, 계란꽃,


그 꽃무리를 바라보며 망하게 하는 망초(亡草)가 아니라 희망을 주는 망초(草)라고 살짝 바꾸어 마음에 담기로 했다. 내 마음속의 개망초는 희망 초가 되어 그때 그시절 개망초꽃으로 지었던 집을 지금은 소유하여 살고 있고 사금파리에 한가득 담아 계란프라이라 이름붙여 상을 차렸던 개망초꽃 대신 이쁜 접시에 진짜 계란프라이를 얼마든지 담아 상을 차릴수 있는 나의 세계를 만들어 주었으니 내게는 틀림없는 희망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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