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과 들판을 물들인 억새를 본 적이 있나요? 바람이 불 때마다 그 긴 몸을 휘청이며 춤추는 억새는 멀리서 보면 마치 은빛 파도 같습니다. 강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오히려 바람을 타고 유연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억새는 흔들림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식물입니다. 억새의 뿌리는 매우 깊게 뻗어 있어,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땅속 깊이 자리 잡은 뿌리가 억새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것이지요. 『장자』에서는 “대나무와 갈대는 뿌리가 깊어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억새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리되 부러지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억새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은 군락을 이루는 것입니다. 홀로 떨어져 있는 억새는 약해 보일 수 있지만, 서로 모여 있을 때는 강한 바람도 거뜬히 견뎌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삶에서의 연결과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때, 우리는 더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억새는 가을이 되면 은빛 꽃을 피웁니다. 한여름의 푸른빛에서 계절이 바뀌면 빛깔이 변하는 억새는, 마치 삶의 변화와 흐름을 그대로 담아내는 듯합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억새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서양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바람은 잎을 흔들며 우리가 지나온 길을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억새가 흔들리는 모습은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여정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합니다.
살다 보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바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억새처럼 한번 흔들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중심만 잘 잡고 있다면, 흔들리더라도 다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억새는 말합니다. 흔들리는 것조차 삶의 일부라고. 그래서 흔들림은 때로는 우리의 강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요.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며 속삭입니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흔들리더라도, 네 뿌리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가을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억새의 노래는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위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