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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Jul 12. 2020

유가의 일인자, 공자를 생각하며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유교 사상이 어느 정도 내 몸에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 그들보다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인간관계에서 예의를 중요시 여기고, 인자안인(仁者安仁)과 지자리인(知者利仁)을 거론했던 바와 같이 선하고 인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을 선호하는 걸로 보아 유교가 어느 정도 내 몸에 젖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코드는 유교다. 전부는 아니어도 나를 비롯한 한국인을 대표하기도 한다.


  중국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는 동양 철학 사상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한비, 묵자, 노자, 장자, 추연, 맹자, 순자, 공손룡, 손자, 공자 등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였다. 이들 중 하나였던 유교를 유가라고도 불렀다. 유가의 창시자는 공자(孔子, B. C.551-479)이다.


  유교는 처음에는 관심받지 못했지만 주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이 혼란한 시기가 되자 중국 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공자는 **유(儒)에 종사하던 가문 출신이었기에 예도와 절도가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었다. 그에 더하여 예법 속에 담겨 있는 도덕의 본질인 ***인(仁)과 예(禮)를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공자가 보기엔 당시 중국이 혼란했던 원인은 예의 부재였다.


 웃어른이 권위 있고 예법이 살아 있는 집에서는 큰 소리가 날 리 없다. 그러나 어른이 존경받지 못하고 법도가 사라진 집에서는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웃어른이 진정한 권위를 되찾고 사람들이 다시 예를 갖추게 된다면 세상의 질서는 회복될 것이다._안광복


  공자의 사상은 실력자들에게는 높이 대우받았지만 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현실감이 없었다.

공자에 대한 평가 중에서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해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 ‘권력자들의 장식품’, ‘문화 상품’이라는 평이다. 현대, 문화 행사나 자선 사업에서 인을 표하는 모습을 보고 독재자의 모습을 가리는(감추는) 것이라 평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을지언정 달라질 여지가 있지 않은가. 공자는 정치에 참여하여 사랑이 넘치는 질서 잡힌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내게는 중국 고대 문화의 전통을 가장 잘 대표하는 위대한 성인이 공자다. 공자는 성인이지만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이다. 평범한 삶을 살았기에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 삶은 그저 삶일 뿐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논어》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산길이다(김형찬, 2008). 좁고 굽은 산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정돈되지 않은 이 책은 인간미(정감)와 거부감(위압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논어>는 글이 간략하고 함축적이다. 그러면서도 구어체의 문투는 생생한 말에 풍부한 함의를 담고 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즉, 독자의 지적 수준에 따라서 독해가 달라진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그 체험을 위해 《논어》를 조금 옮겨 본다.


제6편 옹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구인들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겠는가? 어찌 이 도를 따르지 않는가?”

“군자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단속한다면, 또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로다!”


제15편 위령공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


제16편 계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한 벗이 셋이 있고 해로운 벗이 셋이 있다.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벗하고,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다. 위선적인 사람을 벗하고, 아첨 잘하는 사람을 벗하고, 말만 잘하는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


제17편 양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에 따라 서로 멀어지게 된다.”

“오직 최상급의 지혜로운 사람과 최하급의 어리석은 사람만은 바뀌지 않는다.”


  위와 같이 《논어》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 중국 사회와 그 당시 생활 모습, 사람들의 인성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잔소리하듯, 꼬집어 말하기도 하고 둘러말하기도 하여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깨우치기를 바랐던, 갈등과 다툼을 해결해야 했던, 당시 중국 사람들의 심각한 실정을 무릇 알 수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나를 비롯한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헤매는 모습이기도 하다.


  진정한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법, 윗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인을 쌓고 예를 세운다면 아랫사람은 이를 흔쾌히 따를 것이다. 곧 사회 지도층부터 나서서 정의롭게 살며 덕(德)으로 다스리고 사랑으로 감싼다면, 갈등과 다툼은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 되는(大同) 평온한 세상이 될 것이다._안광복



  조금의 체험이지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배우기를 즐겨했던 공자가 살아왔던 인생을 느껴 보았다.


(*백가쟁명 : 많은 학자나 논객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논쟁하는 일.

**유 : 지금은 선비를 일컫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제사나 예식을 담당하는 관리를 가리키는 말.

***인 : 옳고 그름을 따져서 사람을 사랑하고 자애롭지만 때로는 엄하게 꾸짖을 줄 아는 사람.

***예 :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위치와 주제를 잘 파악한다. “예의를 잘 지켜라.”라는 말속에 남아 있다.)




  흐흣, 현실로 돌아온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면(학급 임원마저도 마찬가지이니) 그들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


  강제적인 성향의 유방은 군주의 몫이 아니었다. 진나라의 폭력적인 통치에 숨죽여 살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상은 ‘황로(黃老) 사상’이었다. ‘청정무위(淸靜無爲)’, ‘Let it go!’,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말라.’이었다. 알아서 하겠다고. 언제나 그렇듯 백성들의 이념은 숲 속 이념일 뿐, 거대한 국가의 이념이 될 수는 없었다. 강제뿐만 아니라 의무도 없는 황로 사상은 현실과 맞지 않았다. 사람 나름이지만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 공자의 사상이 주목받게 된다. 공자는 폭력을 혐오했고, 사랑(인)과 분수에 맞는 처신(예)을 강조했다. 안광복은, 유가는 스스로 윗사람을 존경하고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게 하여 겁먹은 민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리하여 공자의 사상은 한 무제 때 국가 철학으로 주요한 역할을 한다. 공자의 유교는 한 무제 이후 중국 대부분의 왕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강점과 약점이 존재한다.


  유교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효율적인 ‘사회 안정 시스템’이었지만 그만큼 폐해도 많았다. 실무적인 능력보다 인품과 조화를 강조하는 관료적인 분위기, 돈을 천하게 여기고 실용적인 관심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관행 등도 모두 유교에서 나왔다._안광복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사상을, 어떤 가치를 가진 인물을 바랄까. 그렇다면 세상의 위대한 가치는 극소수에 의해 이루어질까, 다수에 의해 이루어질까.


  사상가이든 유명 인물이든 위인들의 이름은 평가로 이루어진다. 당대에 위인으로 인정받던 인물이, 후대에도 위인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후대에는 위인 목록에서 빠질 수도 있다. 반면, 당대에 위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인물이 후대에는 위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후대에 위인 목록에 남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이는 후손들의 조사와 재평가에 의해서다. 권력과 맹목적 지지가 사라진 상태에서 제대로 맘껏 이루어지는 조사와 재평가에 의해서다. 그때서야 한 인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때서야 제대로 된 가치를 알 수 있게 된다. 그 시대 기류가 어떠한지도 평가에 영향을 주겠지만 위인 목록을 관리하는 자는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일지라도 남다르다. 남다른 자가 업적을 칭송하여 기릴 수도 있고, 조작되거나 가려졌던 사실(거짓)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당시 억눌려 공개하지 못한 업적이나 진실을 선명하게 밝힐 수 있다.

  물론 젊은이들이나 뭇사람들은 현재, 지금 바로 위인은 위인으로 대접하고 악인은 악인으로 벌 받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국가나 사회, 개인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가능 여부가 달라지고 결정된다.


그 어느 나라든 쉽지 않은 일이다.




*자발적 복종 : 조작된 경력과 신분 세탁으로 군주를 신비화하기, 인민에게 아양을 떨면서 달콤한 말로 거짓된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저항 의지를 거세하기 위한 위락 시설과 오락 산업의 구축 등은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이 애용했던 기본 술수다. 독재자들은 “폭력”보다는 은밀한 “유혹”을 구사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인민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게 필수”라고 여기고 “생각하는 일조차도 모조리 금지”했다. ‘자발적 복종’은 그런 교육 아닌 교육과 노예 상태를 자연히 받아들인 습관적 산물이다._장정일, “자유는 천부적인 충동”/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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