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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Dec 27. 2021

앵무새에겐 죄가 없다

열여섯 번째 책 <앵무새 죽이기>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우리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로 인한 어려움도 있지만 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퍼진 무분별하게 혹은 무책임하게 자행되는 차별과 혐오에 더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몇몇 포털사이트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우한 폐렴'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얼마 전에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시작된 폭발적인 확진자 수의 증가로 '대구 폐렴'이라고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앵무새 죽이기'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 인종 차별 시대를 배경으로 그려낸 묵직한 소설입니다. 대단히 유명하고 오랫동안 사랑받은 소설이죠. 하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시대가 거듭되고 해가 지날수록, 우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어린아이, 진 루이스 핀치(스카웃)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스카웃의 아버지(애커티스 핀치)는 변호사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애커티스가 한 사건을 맡습니다. 톰 로빈슨이 메이엘라 유얼을 성폭행했다는 사건이죠.


애커티스는 그 사건에서 톰을 변호합니다. 애커티스가 톰을 변호하기로 한 날부터 스카웃과 스카웃 오빠는 놀림과 차별을 당합니다. 동네 주민들은 톰을 변호하는 애커티스도 혐오하죠.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뿌리 깊습니다. 톰 로빈슨이 흑인이고, 메이엘라 유얼은 백인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흑인을 변호하겠다는 애커티스의 행동에 동네에 사는 백인들이 분노한 것입니다. 그 어린 스카웃과 오빠에 대해서도요. 그러나 애커티스는 소신 있게 톰을 변호합니다. 유얼 가족을 압박해 결국 거짓말임을 톰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내죠. 하지만, 톰은 유죄를 선고받습니다. 심지어 배심원도, 판사도 모두가 죄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애커티스는 상고를 다짐하지만, 톰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탈옥을 시도하다가 총으로 사살을 당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톰의 무죄 입증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유얼 가족은 톰의 죽음에도 핀치 가족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복수를 꿈꾸죠. 어린 스카웃과 오빠를 노립니다. 참으로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의 행동입니다. 스카웃과 오빠는 죽음의 문턱에서 부 래들리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 부 래들리 역시, 죽은 톰처럼 차별과 혐오로 소외된 이웃이었죠.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174쪽)



앵무새는 아무 죄가 없는 새입니다.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 채소밭에서 뭘 훔쳐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죠. 그런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명백한 '죄'입니다. 얼마 전, 동양인이 유럽에서 무차별 폭행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불안에 떠는 동양인들을 보며, 참으로 참담한 기분이었습니다. 차별과 혐오는 절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배경으로 삼고 있는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시대가 책이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동양인, 대구/경북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시대로 반복되고 있죠.


우리는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요. 우한 폐렴, 대구 폐렴 그리고 동양인 혐오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국면에서 자행되는 혐오와 차별의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정말 가까운 곳에서 습관처럼 당연하게 허용되는 혐오와 차별의 모습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쏟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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