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랑 이틀이지만 병원 생활은 언제나 지겹다. 이놈의 병원에서 주는 밥은 어느 나라든 한 결 같이 맛이 없구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외국인이 자국에서 강도를 당했으니 병원비는 나라에서 대신 지불해 준다는 것. 오호, 이건 또 좋은 제도일세. 암튼 그러거나 말거나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이유도 없고 있고 싶지도 않으니 이제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야겠다.
병원 직원에게 손짓발짓으로 겨우 부탁해서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잡았다. 가는 내내 세 사람 모두 아무런 말이 없다. 여행을 끝마치지 못한 아쉬움 반, 사고를 당했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이 반. 그래도 여행은 끝마치지 못했을지언정 여행의 목적은 얼추 달성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가 공항 직원에게 뭐라 뭐라 말하더니 엄지를 척하고 내민다.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나도 웃으면서 엄지를 내밀어 화답해 주었다. 잠시 후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내게 앉으란다. 아마도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하다고 말을 했나 보다. 거참, 고맙고도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아무런 불만도 없는데 기사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녹아든다. 한편으론 환자니까 일등석은 안 줄라나 하는 못된 생각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들어가라 이놈아.
탑승구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통화를 하자니 꼬치꼬치 캐물을까 봐 겁나서 메시지만 보냈다. 눈으로 보지 못하니 걱정만 잔뜩 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아니나 다를까.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아내에게서 ‘까톡’하고 답장이 날라 왔다. 배에 빵꾸가 났는데 비행기를 타도 괜찮은 거냐고. 아, 이 사람아, 그 정도는 아니라니까.
아내의 과도한 걱정에 내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나 보다. 작은 녀석이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한 마디 한다.
“엄마도 아빠가 얼마나 다쳤는지 못 봐서 그러는 거죠. 저희도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병원에서 봤을 때도 환자복 입은 모습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허, ‘니가 죽는다고 난리치고 몸에 상처까지 내는 모습을 보는 내 심정은 어땠겠니?’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갑자기 대견한 말을 해대는 녀석의 변화에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며칠 새에 부쩍 컸구나.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자랐으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사람이란 어려울 때 성장하는 존재이니 그저 먹은 것 없이 입맛만 다실뿐이다.
환자라고 일등석은 안 내줘도 나름 배려한다고 공간이 넓은 제일 앞자리를 내주었다. 덕분에 두 발 쭉 펴고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흡족하다. 자리에 앉아 긴 비행 여정이 지겹지 않기를 바라본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니 나름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있다고 제법 자리 정돈을 해낸다. 가방을 잘 정리하더니 이내 자리에 앉아 능숙하게 안전벨트를 매는 모습을 보자니 이제는 내가 뭔가를 해줄 것들이 별로 없겠구나 싶은 마음에 좌석으로 인해 흡족했던 마음이 다시 비워진다. 덩달아 마음 한 켠에 구멍이라도 난 듯 휑한 느낌이 든다.
그간의 상황들로 인해 쉬지 못했더니 많이 피곤했나 보다. 비행기에 올라 안전벨트까지 매고 나니 긴장이 풀리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그래. 어차피 긴 비행시간 동안 뭐 하냐. 잠이나 자자.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나를 깨우기 위해 흔드는 바람에 부스스 잠에서 깼다.
“여보, 어제 뭘 했길래 잠을 이리 늦게까지 자요? 그만 일어나요. 밥 먹어요.”
“???”
“뭘 그리 멀뚱멀뚱 쳐다봐요?”
“??????”
“왜요? 뭐 잊어버리거라도 있어요?”
“당신이 왜 여기에...”
“뭐래...”
“아니, 그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