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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28. 2024

순례자의 길을 中二高二랑?

프롤로그 / 어디 한 번 해보자꾸나

<中二高二>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주변 인물들의 모든 상상력과 위기 극복 능력을 단번에 깨부수고, 한 없이 큰 사랑과 무한한 인내력을 사정없이 쪽쪽 빨아대는 블랙홀의 흡입력을 구사하는 중2 고2.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다루기도 힘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모든 이들이 마주하고 버텨내야만 하는 사춘기의 절정.  이 시기를 무사히 버텨낸 모든 부모님들을 찬양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中二高一.  절정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그 누구도 감내할 수 없는 다양한 고통이 혼재된, 자연 상태 그대로 추출해 낸 100% 순수한 천연 독극물의 상태로 흑화 해버린 그러나 내가 반드시 사랑해야만 하는 두 녀석들의 현 위치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사자성어다.  지난 3년을 생각하면 정말 치가 떨리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려 오지만 아빠로서 차마 그런 내색을 드러낼 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고통을 그대로 함축한 시간이 앞으로 최하 2년이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2년도 장담할 수는 없다.  통계상 그런 것이니.  통계를 어찌 믿겠나.  당하는 이는 늘 확률 100% 일 뿐인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참으로 이쁘고 기특하고 애교도 많은 녀석들이었는데.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기억을 더듬으며 거슬러 올라가 보니 아마도 코로나로 인해 다들 힘들어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한창 뛰놀아야 할 시기에 코로나가 무서워 집에서만 있자니 고역이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고, 체육관에서 땀 흘리며 넘치는 체력을 소비할 수도 없었던 녀석들은 세상에 오직 둘만 존재하기라도 하듯 집에서 층간 소음만 만들어 냈다.  다행이라면 우리 집이 일층이라 층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녀석들은 지들끼리 방 안에서 놀다가도 느닷없이 방과 방 사이를 잇는 좁은 통로를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양팔과 양다리를 벽에 붙인 채 이동한다.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멀리까지 가나 내기라도 하듯이.  그러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내 죽는다고 울면서 바닥을 뒹군다.  한참을 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장난감을 꺼내 노는 아이들.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클레이로 뭔가를 조물딱거리며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큰 녀석이 답답함을 못 참겠는지 아니면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멀쩡하게 잘 놀고 있는 작은 녀석에서 달려가 이단 옆차기를 날려버린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 식의 봉변을 당한 작은 녀석은 뭐라 뭐라 항변해 보지만 그게 다다.  두 살 차이지만 워낙에 작게 태어난 둘째는 힘으로는 형에게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나름 보복한다는 수준이 앙증맞은 입술을 움직여 깐죽대는 것뿐이다.  그러다가 더 얻어터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그 후로도 계속되는 이유 없는 억압과 괴롭힘에 둘째는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첫째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변하니 자기도 살기 위해 덩달아 변하게 된 것이겠지.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자기를 보호해 주고 형을 혼낼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엄마도 큰 녀석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리려는 기미만 보여도 이미 지 엄마의 키를 훌쩍 넘겨버린 큰 녀석은 엄마의 두 손을 잡고는 "때리고 싶쥬.  죽이구 싶쥬.  근데 못 때리쥬.  못 죽이쥬.  열받쥬.  킹 받쥬." 하며 약 올리는 탓에 이제는 엄마도 포기 상태다.  오히려 작은 녀석의 깐죽거림이 형의 주먹을 부르겠다 싶어 잔소리를 해대니 작은 녀석은 견디어 내기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아빠인 내가 집에 있으면 맞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싶지만 자기 말을 안 들어주는 것 같고 역성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늘 속상하다.


    그런 둘째를 데리고 공원으로 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내가 아빠라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한창 반항기에 접어든 첫째를 어찌할 수 있는 대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 번은 멱살을 잡아봤다.  근데 안 들려진다.  에휴.  키 차이가 겨우 2cm.  이제는 들고 패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래도 내가 덩치가 더 크니 제압하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혹여 개싸움의 형국이 될까 남부끄러워 번번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늘 작은 녀석에게는 '니가 좀 참아야지 어쩌겠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는 게 다였다.  아빠만큼은 자기를 적극 이해해 주고 변호해 주고 형을 혼내줄 것을 기대했던 둘째는 마침내 자기만의 동굴로 숨어 버렸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더 기다려야 하나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만 보던 중 둘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자해에 가까운 행동들을 하는 것이 아닌가.  칼로 손목을 긋는 것이 아닌 열쇠로 손목 긋기, 머리나 주먹으로 벽을 쳐서 상처를 내는 정도라 자해라고 하기엔 끔찍한 수준은 아니지만 결코 귀여운 수준도 아니었다.  타일러도 보고 화를 내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자기편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돌이키기엔 너무도 어려웠다.  그래도 어떻게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나의 역할이자 의무인 것이고,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욱 그래야만 할 것이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만들어 낸 해결책은 '함께 여행하기'였다.  삼사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간의 기나긴 여행.  언제든지 포기하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반드시 일정을 마쳐야만 하는.  그것은 바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함께 걷는 것이다.  남자 셋이서 배낭 하나씩 둘러매고 800km를 걷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있을 것이고 진솔하게 대화할 자연스러운 기회도 있을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배낭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도 안된다면 뭐 별수 있겠나.  또 죄 없는 머리카락 쥐어뜯어가며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일단은 이 방법이 최선이자 최후의 방법이라고 믿고 떠나보자.


    나는 믿는다.  '여행은 관계 형성에 있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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