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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s May 01. 2024

일탈

-멈춤



누구나 일탈을 꿈꿔본다. 매일 똑같이 펼쳐지는 일상에서 지루함은 죽순이 자라듯 쑥쑥 피어오른다. 아침에 눈을 떠 맞이하는 하루를 감사하다는 생각보다 어제의 하루와 같은 하루로 맞이하고 있다면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누군가는 살아보고 싶은 간절한 하루이기도 하다. 내가 아파하거나 피어나지 못해 좌절해 본 적이 없었다면 그 간절함은 공감하지 못한 채 사그라지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삶을 채워나간다. 나 또한 돌이켜보면 사회가 정한 틀 속에서 규범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타인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에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모든 이가 다른 사고로 행동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자유와 창의성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김새도 행동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빈약한 용기가, 타인의 시선이, 옥죄듯이 다가오고 있다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이들이 어린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녀는 육아에 지친 몸을 희석하기 위해 할 일을 모두 해치우고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집을 나섰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 되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자주 가던 그녀만의 아지트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캄캄함 사이로 화려한 조명이 펼쳐지는 공간, 바텐더들이 마주 앉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로 상대하고 있다. 그 틈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 여성이 블랙 러시안을 주문하고 있다. 은은한 커피 향과 보드카를 넣은 유리잔이 여성의 테이블 위에 놓였다. 주변에는 그녀만을 위한 음악이 BGM으로 깔리고 있었다. 완벽하다.


그녀는 항상 그렇게 세팅된 상태로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곤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복잡했던 생각들을 정리한다. 그 사이사이 입안을 한 모금의 칵테일로 적시며 순간을 음미한다. 그녀에게는 호사일 수도 있지만, 무료한 일상을 환기해 주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주었다.


육아에 지친 자신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그렇게 갖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일상의 일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무료함에 갇힌 채 노예로 머무는 삶을 펼치고 있다면 생각의 흐름은 멈춰버린다. 그 멈춤은 자신을 좀먹는 벌레가 되어 일상의 행복을 빼앗아 버린다.


그렇게 그녀에게 주어진 힘든 30대의 삶을 흔들리면서도 꼿꼿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자기만의 가치관을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서도 일상 속 일탈을 시도해 보길 바란다. 그 일탈은 벗어남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씨앗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녀의 일탈은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어제도 집을 나서 어딘가로 차를 몰고 잠시 쉼의 시간을 채우다 들어왔다. 처지는 육체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일탈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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