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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s May 14. 2024

나의 마지막 하루

-작별


햇살이 눈이 부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평온하다. 포근한 햇살의 따스함이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오는 그날의 아침이다. 커다란 그림자처럼 산등성이를 마주하고 서 있다. 풀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는 흙 내음과 함께 걸음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한다. 모든 일이 멈춰버린 주변의 공간 속은 고요하다. 심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온다. 초침 소리가 박자를 맞추며 심호흡하고 있다. 아직 살아 있다.


세상과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마치 풍요로운 자연의 만찬이 차려진 듯 주변의 풍성함이 마음을 더욱 초라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찾아오는 순간이 중첩되며 세상은 펼쳐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만난다. 고요 속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혼자만의 처절한 외침일까? 마지막 이승과의 몸부림일까?


그날 아침은 그렇게 한 발짝씩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다가온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하게 찾아오고 있다. 나도 태연한 마음으로 함께 걷는다. 새로운 하루를 낯설게 느끼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눈을 떴다. 나는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꿈을 꿨다. 생의 마지막 날이다. 흐트러진 이불과 내동댕이쳐진 슬리퍼, 지난밤 마시다 둔 물컵이 침대 머리맡 협탁 위에 놓여 있다. 아직 살아있다. 온몸의 감각을 느끼기 시작한다. 촉수를 일으켜 세운다. 몸을 일으키고 방에서 걸어 나온다. 주방으로 가 텁텁한 목 안을 추릴 물을 담고 들이켠다. 다시 살아 움직이며 호흡하고 있다. 순간순간 사라진 것들이 다시 살아나듯 깨어나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하루는 평범한 일상처럼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한 호흡의 차이이다. 그사이에 특별함은 없다. 매 순간 숨을 쉬듯이 그렇게 생과 사가 오간다. 그러니 특별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 차분히 나의 마지막을 기다린다. 어차피 우리는 그 길로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시간은 우리의 기억을 지운다. 그렇게 사라지는 기억들로 인해 현재에 머물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 순간, 내 주변 존재하는 것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항상 머물렀던 조그만 책상과 노트북, 매일 식사하던 부엌 모퉁이, 함께 걸었던 신발, 매일 밤 베고 자던 베개와도 낯설지 않은 이별을 하고 싶다. 매일 아침, 잠을 깨우러 와 준 햇살, 어느 날 찾아와 준 빗소리, 잔잔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준 음악, 주변의 수많은 함께 한 소소한 것들과 이별의 시간을 갖고 싶다. 특별함이 없는 일상이 펼쳐지듯 그렇게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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