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진로고민
가게에 출근을 안 한지 이제 5개월이 다 되어 간다.
점심에 엄청 바쁘면 오전에라도 잠시 도와주러 갔다 오고 싶지만 우리 가게는 점심에 손님이 몰리는 가게가 아니라 나의 도움까지는 필요가 없어 계속 집에서 쉬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아직 삼십 대 후반,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시간이 여유로우니 파트타임 일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그래서 당근앱에서 '주변알바'라는 카테고리를 들어가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한참 페이지를 내려보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동안 해왔던 식당일 뿐, 자격증 없이도 지원 가능한 일은 등원도우미, 헤어나 뷰티 쪽 모델 지원 또는 강아지 산책이나 돌봄 같은 일들이었다.
등원 도우미의 경우는 시간이 안 맞았고 모델 지원도 알고 보면 할인된 금액으로 시술을 받는 일들이 허다했다. 강아지를 길러 본 적은 있지만 남의 강아지를 산책시켜 주고 돌보아 주는 일은 해보지 않아 자신도 없을뿐더러 지원자들이 많아 치열하였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일 뿐인가?'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 중식당에서 오전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길래 한참을 고민해보기도 하였다. '내가 다른 중식당에 가서 일을 해도 되나', '그 사장님이 내가 다른 중식당을 운영한다는 걸 알면 화내지 않을까' 고민 끝에 결국 지원을 못하였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뭘 배워야 하나?'
지하철을 타면 무심코 지나쳤던 자격증 학원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저 중에 나와 잘 맞는 일은 뭘까? 뭘 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전업주부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절친에게 전화를 하였다.
"나도 지금 당장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혹시 몰라서 공부하는 중이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나의 친구도 뚜렷한 계획이 있어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도 무언가 나아가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웠다.
나이가 40에 가까워지니 어른들을 돌보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이 되는 일들이 가치 있는 일임을 잘 알고 내가 잘할 수 있다면 나 또한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 도전해 보고 싶은 일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예전에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걸 깨닫지 못했었다.
생일이 빨라 19살에 대학에 들어갔던 나의 전공은 '실버케어'였다. 노인이 많아지고 그만큼 노인 관련 복지산업이 크게 곽광 받을 거라며 주변에서도 잘 들어갔다 하였다. 우리 과에는 20살뿐만 아니라 20대 중후반 언니들, 50대의 왕언니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하였다.
한참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하다 적성검사에서 사회복지 쪽이 나왔길래 수능 점수에 맞추어 들어간 전문대학이었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 주변 요양병원에 견학을 가고 박람회를 돌아다니면서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그것도 어르신들을 내가 정성스럽게 케어해 드릴 수 있을까? 그만큼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조금 더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때 실버케어학과를 계속 다니며 노인복지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고 자격증을 따서 그 길로 계속 갔다면 지금쯤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제빵에 관심이 많아 제과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제빵사로 일을 하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빵가게를 차렸을까?
다시 들어간 대학에서 호텔과 외식산업을 전공하며 외식업체 쪽이 아닌 호텔로 취업했다면 달라졌을까? 아니면 다니던 여행사에서 계속 일을 하였다면 지금쯤 후회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을까?
지나온 많은 날들을 되짚어 보았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일들에 도전해 보았다 그만두고 다시 도전해 보는 일들을 거치며 결국 어릴 적부터 원하던 글 쓰는 삶을 꿈꾸고 있지만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내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글을 쓰는 삶이라면 글 쓰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워야 하는 건지 무작정 쓰기만 하면 되는 건지, 글 쓰는 삶을 꿈꾸면서 또 다른 도전을 해봐도 되는 건지, 도전을 한다면 그건 어떤 것 일지 요새는 진로고민을 한참 하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갈 곳이 없어 경력과 관계없는 단순노동으로 빠진다는 뉴스를 볼 때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일을 하려고 찾아보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 기술 하나도 없는 내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참하고 속상하다.
친구가 하던 네일숍을 인수받고 네일 자격증을 따낸 언니부터 이유식배달 전문점을 창업한 언니, 블로거가 되어 여러 업체들을 홍보해 주는 일을 하게 된 언니까지. 그냥 평범했던 가정주부에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않을까?
나와 맞는,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오늘도 책을 읽어보고 길을 걷다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에 빠진다.
결국 고민 끝에 답을 찾기를. 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도 자신만의 길을 찾으시길.